오래된 음악들

전인권 - 이등병의 편지...

까칠부 2010. 7. 22. 01:30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손 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에 편지 한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아마 "이등병의 편지"라 하면 김광석의 노래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 앨범은 1993년 발매된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1"이었다. 리메이크라는 뜻이다. "다시 부르기" 자체가 리메이크 앨범이었으니. 그러면 처음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 것은 누구였을까?

 

1990년이었다. 당시 쓸데없이 의욕만 넘치던 한겨레 신문사가 창간 2주년 기념으로 노래사업단을 만들어 김민기를 총감독으로 "겨레의 노래"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물론 타이틀은 1집이었지만 1집이 끝이었던 프로젝트였다. 연변과 일본의 구전가요를 모으고, 또 공모로 곡을 수집하고... 그 가운데 김현성이라는 이가 친구를 군대 보내고 썼다는 "이등병의 편지"가 김민기에 의해 전인권에게 전해졌다.

 

아무래도 전인권 자체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음악인이었고, 또 포크 음악인과도 교류가 깊다 보니 김민기와도 인연이 깊었던 모양이다. 아마 전인권 3집에서도 김민기의 곡을 전인권이 부르고 있었을 텐데, 이때도 김민기에 의해 떠밀리듯 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솔직히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전인권은 이 노래에 록의 강렬한 비트를 섞고 싶어했다. 아마 그랬다면 이 노래는 원곡과 전혀 다른 노래가 되었으리라. 들으면 알겠지만 참으로 처절하다. 밤새 기차를 달리며 어둑한 차창에 빡빡민 전혀 생경한 자기 얼굴을 비쳐보는 듯 심히 우울하다. 여기에 록 특유의 드럼비트와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더하졌다면 진짜 입영소 바로 앞에서 탈영하고 싶어졌으리라.

 

그에 비하면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무척 담담하다. 마치 훈련소 정문에서 그래도 걱정 말라고 어머니께 웃음을 지어 보이듯 철저히 절제되어 있다. 울음이 목까지 차올라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데도 그래도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환하게 손을 흔들던 훈련소에서의 그 모습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런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우울한 회상이라 할 수 있겠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에서의 비극이란 그렇게 철저히 타자화된 소외된 객체로서의 비극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다. 전혀 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의 일이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겪는 어떤 공황과도 닮아 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세상은 돌아가는 듯한.

 

실제 이 노래를 쓴 김현성은 이 노래를 쓴 동기에 대해 친구를 입영열차에 태워 떠나보내고 나서 느낀 어떤 감정에서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일이 아닌 거다. 최소한 앞으로 일어날 일이거나, 이미 지난 일이거나,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이거나. 그러면서 정작 군대 가는 자신은 노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 순간의 억울함이라거나 슬픔이라거나 분노와 같은 감정은 철저히 아름다움으로 왜곡되어 소외시키고 있다. 마치 슬픈 이별을 겪고 그것을 꿈에서 남의 일처럼 보게 된다면 그 기분이 이러할까?

 

그에 비한다면 전인권의 "이등병의 편지"에서의 비극은 보다 직접적이다. 슬프다. 화난다. 억울하다. 왜 나는 군대에 가야 하는가. 왜 나는 이 젊은 나이에, 이토록 수많은 관계와 기회와 가능성을 두고 군대로 끌려가야 하는가. 남겨진 이와 남겨두고 떠나는 이와 그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억울함. 분노. 슬픔. 그것이 전인권의 거친 목소리에 실려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전인권은 어쩔 수 없이 락커다. 김광석은 어쩔 수 없는 포크다. 포크란 시다. 포크의 뿌리는 음유시인이다. 철저히 타자화한 노래로써 보편적인 감성을 이끌어내는. 자기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로서 들리도록 하는. 락은 그보다는 보다 주관적이고 직관적이며 직접적인 감정이다. 자신의 이야기이며 자기의 이야기다. 포크는 그래서 1인칭이더라도 3인칭이고, 락은 3인칭이더라도 1인칭이다. 그같은 차이가 록의 전인권과 포크의 김광석을 통해 이같은 서로 다른 개성으로 완성된 것이 아닐까.

 

때로는 전인권의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처절함이 좋고, 때로는 김광석의 관조하는 듯한 타자화된 비극도 좋고, 그러나 입영열차를 타고 입대하는 입장이 아니고서는 역시 김광석이 더 가깝다. 이제 군대란 내 일이 아니다. 남의 일이며 시간이라는 간격을 둔 지나버린 나의 일일 뿐이다.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 않다.

 

어째서 당시 노태우 정권이 이 노래를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금지곡으로 정했는가. 김광석이었다면 아마 금지곡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전인권이었으니까. 그가 절규하듯 전하는 막 훈련소로 들어가는 그 처절함이 당시 위정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 때문이리라.

 

나는 군대 가기 싫다. 정말 군대 가기 싫다. 빠지고 싶다. 여전히 누리던 일상을 누리고 싶다. 그런데도 끌려간다. 군대로 강제에 의해. 국가권력에 의해.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저항할 수 없기에. 무력하게.

 

그렇지 않은가? 말이야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지나고 나니까 하는 말이다.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지금이니까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라며 등도 떠미는 것이다. 차라리 사고라도 나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끔찍한 시간들이 지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떠나온 일상들로.

 

그래서 애써 묻어두었던 감정들마저 저 노래는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서러워 흘리는줄도 모르고 촉촉히 젖어들던 그 눈물들을 전인권은 불러대고 있는 것이다. 과연 내가 군대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면 견뎌낼 수 있었을까? 아무도 없는 초소에서 별빛을 벗삼아 듣고 있었다면 이처럼 무사히 군생활을 끝낼 수 있었을까?

 

군사정권의 윗대가리들도 아주 생각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과연 내가 군대에 간 의미란 무엇인가. 내가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이란. 고민을 할 여지조차 없이 강제로 끌고 떠밀어 쳐박아 놓았던 군대란 내게 그런 곳이었으므로. 그나마 덕분에 별 탈 없이 군복무를 마칠 수 있었다 하겠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무릎팍도사에서 김남길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었다. 너무 예쁘다. 하긴 공익일까? 방송인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 실감을 못하고 있는지도. 그러나 막 훈련소 문을 통과하면서, 그리고 한참을 군기잡는다고 구르고 생소한 환경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면서, 그때도 그렇게 예쁘게 부를 수 있을까.

 

문득 잊고 지내던 전인권의 "이등병의 편지"를 떠올리게 된 이유다. 내 일이 아님에도 12시간 남고, 10시간 남고, 다시  8시간 남던 김남길의 입영시간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 무렵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던가. 그런 기억들이. 그 감정들이 아릿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역시 전인권의 목소리는 일품이다. 아마 다시는 전인권과 같은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수많은 감정들이 마치 후려치듯 뼛속 깊이 파고드는 것은. 그의 노래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듣는 것이었다. 몸으로 듣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깨달으며. 그는 최고다. 항상. 목소리가 갈라지고 찢어진 지금에조차도. 아니 그런 목소리이기에.

 

이 밤 그 시절의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그로부터 한참 뒤 내가 겪어야 했던 그 설레임과 그 설움과 그 두려움과 그 불안들을 떠올리며. 시간은 이렇게나 흘렀고 그 무렵의 감정이란 이렇게 남의 일이 되어 버렸다. 시간은 그 시절의 감정마저도 이렇게 두껍게 칠해버린다. 그때는 그랬었는데. 단지 추억일 뿐이란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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