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유현상 - 갈테면 가라지...

까칠부 2010. 7. 2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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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테면 가라지 New Version - 유현상

남자가 한번쯤 고독해 할때
따뜻한 가슴에 말이 필요하지
외로워하는 여자 마음을
내가 아직도 몰라 떠나간다고

어젯밤 우리 만난게 아냐
서로의 깊은 속을 왜 몰라
나 없이 며칠만 지냈어봐
생각이 달라질걸
그렇게 아픈 이별을 왜 원해

갈테면 가라지 날 두고 가라지
잊으라면 못 잊어 줄까봐
갈테면 가라지 마음대로 가라지
눈물은 왜 갈테면 가라지

어젯밤 우리 만난게 아냐
서로의 깊은 속을 왜 몰라
나 없이 며칠만 지냈어봐
생각이 달라질걸
그렇게 아픈 이별을 왜 원해

갈테면 가라지 날 두고 가라지
잊으라면 못 잊어 줄까봐
갈테면 가라지 마음대로 가라지
눈물은 왜 갈테면 가라지

갈테면 가라지 날 두고 가라지
잊으라면 못 잊어 줄까봐
갈테면 가라지 마음대로 가라지
눈물은 왜 갈테면 가라지

가사 출처 : Daum뮤직

 

작년 이제는 사라진 상상플러스에 김태원과 유현상, 김영호, 인순이가 출연했을 때 김영호가 자기가 트로트로 데뷔할 뻔 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리 말한 적이 있었다.

 

"트로트 꺾는 건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구요."

 

그러자 유현상의 대답,

 

"그건 타고나는 거야."

 

김영호가 한 방 날렸다.

 

"하지만 형님도 그리 잘 꺾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 기억에 트로트란 원래 그렇게 의도적으로 꺾는 것이 아니었다 기억된 이유다.

 

1970년대 말 트로트고고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와 이 새로운 장르를 들고 새로운 트로트 가수들이 대거 가요계에 데뷔했다. 최헌, 윤수일, 조용필, 최병걸...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밴드를 거쳤다는 것이었다. 밤무대에서 밴드음악을 체화한 이들이 들려주는 트로트는 분명 이전의 트로트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신이 났다. 트로트 특유의 구성짐이 고고의 리듬과 록 특유의 강렬한 전자음과 어우러지며 이제까지의 트로트와는 다른 또다른 독특한 흥겨움이 만들어졌다. 창법도 달랐다.

 

아무리 트로트로 방향을 틀었다고 해도 밴드보컬로 지내온 시간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밴드음악이란 몸으로 체화한 것이었다. 그들의 음악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밴드에 있었고 단지 현실적인 선택으로 트로트를 부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트로트고고는 기존의 트로트와는 다른 음악이었다.

 

트로트 특유의 과도한 바이브레이션과 콧소리가 사라졌다. 한결 간결해졌고 담백해졌으며 더 직설적이었다. 고음에서 후려치듯 내지르는 것도 이제가지는 없던 것이었다. 트로트이되 트로트같지 않은. 그러나 트로트인. 말하자면 뽕없는 뽕이랄까? 흔히 말하는 뽕끼가 한껏 절제된 그러나 뽕인 트로트였다.

 

유현상도 그들과 비슷한 세대였다. 유현상과 윤수일은 동갑이었다. 아마 유현상도 1985년 첫 솔로앨범을 내고 있었을 것이다. 제목이 아마 <사랑의 강>이었던가? 역시나 록과 트로트가 어우러진 당시의 트랜드를 충실히 쫓은 성인가요 앨범이었다. 하지만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거세게 불고 있던 메탈의 바람은 앨범 녹음을 위해 픽업한 기타리스트 김도균과의 만남과 어우러지며 그의 인생을 다시 메탈로 크게 바꾸어 놓게 된다. 백두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아다시피 백두산이라는 시도는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실패로 돌아가고, 최초의 아이돌 이지연에 대한 매니지먼트 역시 이지연이 미국으로 도망치며 좌절로 끝나고, 결국 유현상은 다시 먼 길을 돌아 성인가요라는 현실을 선택하게 된다. 아시아의 인어로 불리던 당대 최고의 스포츠스타 최윤희와의 결혼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남자로서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인터뷰에서도 직접 밝히기도 했었다. 트로트라고 하는 장르에 도전하고 싶었던 마음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렇게 트로트를 불러 아이들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킬 수 있었다고 만족해하는 모습도.

 

하긴 밴드출신으로 트로트로 돌아선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다. 아니 요즘에는 또 그런 이유로 클래식을 하다가 트로트로 돌아서기도 한다. 일단 안정적인 돈벌이가 되니까. 밤무대든 행사든 지금도 가장 크고 안정된 시장이 트로트 시장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락커로써 좌절한 그가 결혼까지 하고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란 달리 없었으리라.

 

물론 당시 나도 무척 배신감을 느꼈었다. 임재범이 "이 밤이 지나면"을 부르고 앉았고, 김종서는 "대답없는 너" 같은 가요나 부르고 있었고, 이승철은 그나마 부활시절의 노래들을 말랑한 가요로 부르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유현상의 트로트라...

 

이것으로 한국의 록은 끝이구나 하는 선언과도 같았다. 짧은 한국록의 전성기가 이것으로 완전히 끝장났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록이 완전히 한국 대중음악의 주변으로 밀려나려던 그때 그것은 마치 모욕처럼 그렇게 아프게 느껴졌다. 아마 많이들 그랬을 것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지금도 보면 유현상이 트로트를 하게 된 것에 대한 비난들이 적지 않다. 아예 유현상은 락커가 아니라 트로트가수라고. 원래 유현상은 록에 어울리지 않는 트로트에 어울리는 가수였다고. 백두산으로 대중에 알려지기까지 무려 10년 넘는 세월을 락커로써 무명시절을 보냈던 것까지 깡그리 잊은 채. 나도 그랬었다. 유현상은 처음부터 록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유현상이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고 아예 유현상을 미워했다는 감정조차 잊고 있을 때 그와 다시 화해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노래였다. 내가 오만했음을. 내가 무지했음을. 오해였었음을. 바로 이 노래를 통해서.

 

원곡은 브라스로 편곡되었다. 신디사이저와 드럼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관악기의 연주란 흥겨운 가운데서도 전통적인 트로트의 그것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6년 발표된 새로운 버전에서는 브라스 파트가 상당부분 일렉트릭 기타로 교체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트로트라기에는 이질적인 - 유현상의 말을 빌자면 미디움템포의 곡이었던 갈테면 가라지였다. 유현상의 목소리는 특히 사비에서 차라리 트로트보다는 록에 더 가까웠었다. 여기에 요란스럴 정도로 묵직한 드럼과 베이스 위에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마저 강해지고 있으니.

 

그래서 순간 떠오른 생각,

 

"아, 유현상은 천상 락커로구나."

 

어쩌면 그것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락과 트로트와의 만남의 완결점이라 할 수 있겠다. 트로트는 트로트인데 어쩐지 트로트답지 않은. 물론 결코 락은 아닐 터인데도 어쩐지 그런 느낌을 주는. 역시 편곡의 묘미겠지만 원래 버전에서도 그렇게 독특한 그루브와 드럼의 비트가 트로트같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성인가요? 그 말이 맞겠다. 성인가요. 윤수일의 "숲바다 섬마을"과는 또다른 유현상 나름의 성인가요에 대한 답일 것이다. 아마 백두산을 다시 결성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또 다른 그 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백두산으로 다시 돌아온 지금의 음악도 좋지만 문득 만일 아니었다면 지금쯤 어떤 답이 새로 나오게 되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명 유현상에게 트로트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만이 아닌 그럼에도 나름의 치열한 음악적 추구가 있었을 테니까.

 

아무튼 흥겨운 곡이다. 신난다기보다는 흥겹다. 호쾌하고. 후련하고. 그야말로 남자의 노래랄까. 트로트를 좋아하기도 해서, 그리고 록을 좋아해서, 듣는 순간 그대로 꽂혀버린 곡이다. 지금이야 유현상이 트로트를 불렀거나 말거나. 이만한 곡을 뽑아낼 수 있었다면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내가 이렇게 거만하다. 유현상은 나따위가 평가할 존재가 아닌데도. 가끔 방송에서 메탈과 함께 트로트를 들려줄 때는 그래서 그것도 그리 좋다. 확실히 유현상은 대단하다. 대단한 음악인이다. 락커다.

 

 

 

덧, 뭐 글 하나 쓰는데 이리 방해가 많으냐? 뭣 좀 끄적일만 하면 여기서 부르르... 조금 끄적이려 하면 이번에는 메신저... 방 밖에서도 부르고, 고양이는 보채고. 악전고투였다.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겨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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