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시나위 - 겨울비...

까칠부 2010. 7. 25. 00:29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 이 순간 부를까

우울한 하늘과 구름 1월의 이별노래

별들과 저 달빛속에도 사랑이 있을까

애타는 이내 마음과 멈춰진 이 시간들

사랑의 행복한 순간들 이제 다시 오지 않는가

내게 떠나간 멀리 떠나간 사랑의 여인아

 

겨울비 내린 저 길 위에는 회색빛 미소만

내 가슴속에 스미는 이 슬픔 무얼까

사랑의 행복한 순간들 이제 다시 오질 않는가

내게 떠나간 멀리 떠나간 사랑의 여인아

겨울비 처럼 슬픈 노래를 이 순간 부를까

우울한 하늘과 구름 1월의 이별노래

 

김종서의 겨울비와 같은 곡이다. 김종서 작곡, 신대철 작사, 노래를 부른 것도 김종서... 하지만 같은 노래이고 같은 가수여도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이승철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노래이듯 김종서가 부른 "겨울비"도 시나위의 "겨울비"와는 같으면서도 또 전혀 다르다.

 

뼈가 시린다. 시나위의 "겨울비"를 듣고 있으면 실제 그렇다. 어느 한겨울. 때아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며 아스팔트 위로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희뿌연 가로등과 지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눈물은 빗물에 섞여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얼어붙은 어깨는 비의 무게에 못이겨 쳐져 있다. 멀어지는 그림자는 그녀의 것인가.

 

비란 그렇게 외롭다. 비를 맞으면 그렇게 외로운 기억들이 떠오른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도 그렇다. 비처럼 음악처럼도 그렇다. 빗물은 눈물과 닮았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그리 턱끝에 맴돌던 눈물방울과 닮았다. 춥고 무겁고 축축하고... 비와 관련한 기억이 있어서가 아니다. 문득 비가 내리면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오르는 때문이다. 비가 내리기에. 비와 닮아 있기에.

 

하물며 겨울비야. 여름에 내리는 비도 어느새 뼈가 시려온다. 슬픔에 겨워 떨던 몸은 외로움에 떨고 추위에 떤다. 추워서 외롭고 외로워서 더 춥다. 겨울비는 마치 칼날과도 같다. 살갗을 헤집고 뼈를 후비고 저 깊은 영혼마저 마비시킨다. 시리고 아프고 마침내는 둔중하게 마비되어 버리는 겨울의 언 강물처럼.

 

김종서가 솔로로 나와서 부른 겨울비는 참 아름답다. 그리고 절제되어 정갈하다. 그에 비해 시나위의 겨울비는 거칠고 사납다. 들끓는 것 같다. 아스팔트 위로 부서져 오르는 빗방울처럼, 젖은 어깨 위로 하얗게 반사되는 빗방울처럼, 떨려 내려 떨어지는 어깨처럼. 신대철의 기타는 그렇게 거친 빗소리와 닮아 있다. 앞이 보이지 않도록 사납게 내리는 비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마치 두터운 벽처럼 쏟아붓는 비다. 눈이 되기에는 너무 무겁고 사나워 쏟아져 내릴 수밖에 없는 비다.

 

비극은 심화되고 아픔은 무감각해진다. 한결 가녀리게 치솟는 김종서의 목소리는 흐느낌처럼 먼 슬픔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기타리프 하나하나가 그렇게 슬프고 잔인하다. 빗소리처럼 무겁고 눅눅하다. 홀로 외로이 어느 카페에 앉아 넓은 유리 너머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나를 창 너머머로 지켜보는 것 같은.

 

그래서 나는 김종서의 "겨울비"보다는 시나위의 "겨울비"를 더 사랑한다. 메틀 특유의 거칠고 직설적인 감성이 살아있는, 그러면서도 절제된 슬픔의 가사가 어우러지는 시나위의 마지막 메탈앨범을. 특이하게도 김종서가 곡을 쓰고 신대철이 가사를 썼다. 시나위 4집은 그렇게 카리스마를 거치면서 한결 더 그 존재감이 커진 김종서가 카리스마로 이제까지 팀을 지배해 오던 신대철과 거의 대등한 지분으로 참여하여 완성한 앨범이기에. 그리고 그랬기에 시나위 4집은 메탈 시절의 시나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앨범 답게 탁월한 완성도를 보인다.

 

원래는 한겨울에 들어야 어울리는 노래일 터인데. 하지만 한여름이더라도 아픔이 있는 한 비란 겨울비와 같지 않을까.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이어야 했을 터인데도, 비가 내리지 않아도 슬픔이 있다면 어디에나 비는 내리는 것이기에. 음악이 있어도 비는 어느새 가득 내리고 있다. 음악이 있다면 그래서 아무때고 겨울이고 비는 내린다.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떠올릴 수 있는 심상이 있다면. 그런 기억들이.

 

어쩐지 문득 떠오른 노래. 그러나 음원을 구하려 해도 시나위 4집은 음원을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공식적으로는 아마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정식 뮤직비디오가 아닐 텐데도 동영상이 썩 곡의 분위기와 어울려 올려본다. 언제고 시나위의 4집을 정식으로 올려 볼 수 있기를. 비가 내릴 것 같다. 무척 사나운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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