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예술가와 마약...

까칠부 2009. 7. 8. 22:34

18세기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일깨웠다. 아니 인간의 이성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았다. 신화는 의심되었으며, 전설은 부정되었고, 환상은 무시되었다. 모든 예술작품조차도 이성에 의해 생산되고 향유되어야만 했었다. 그야말로 이성의 시대라 할 텐데...

 

그런데 여기에 일단의 예술가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재미없다!"

 

라는 것이었다. 모든 게 딱딱 맞아 떨어지니...

 

사실 예술이란 건 그 자체로 비일상이다. 평소와 같아서는 그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 남과 뭔가 남다를 때 그것은 예술이 된다. 모두가 옷을 벗고 있을 때 혼자 옷을 벗고 있어서야 별 의미가 없지만, 모두가 옷을 입고 있는데 혼자서 옷을 벗고 있으면 그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는 것처럼.  그런데 이성이란 모든 것이 한결같은 보편적인 일상성을 이야기한다.

 

남들과 같아서야 무슨 예술인가? 그래서 반기를 든 것이 콜리지나 드 킨시 같은 이탈리아의 시인들이었다. 그들은 보다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을 발견하고 회귀하려 했었는데, 그러면서 선택한 것이 당시 아직까지 중독성이 알려지지 않은 아편 등의 마약이었다.

 

간단히 그런 걸 떠올려 보면 된다. 특히 종교 가운데 그런 것이 많은데, 가끔 신문의 가십 등을 보면 어디서 누가 신성한 모습을 보았다느니 하는 기사가 심심할만 하면 올라온다. 과연 그것이 신성한 모습인가를 차치하고서라도 그것을 신성한 모습이라 여기게 한 - 그것을 신성한 모습으로 여기고 보게 만든 바로 그것이다. 세상의 사물을 철저히 자기 내면에 비추어 솔직하게 그 자체로써 받아들이는 그 원초적인 순수함.

 

"귀신은 믿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초능력은 믿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UFO는 믿는 사람만 볼 수 있다."

 

결국 같은 말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해 다른 선입견을 배제하고 보이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그 순수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는 것이 바로 모든 것을 의심하고 보는 이성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당시의 예술가들은 그러한 계몽주의적인 이성을 본연의 감성에서 분리해내는 수단으로 마약을 사용했었다. 마약을 하고 몽롱한 환각상태에서 보는 것이야 말로 인간을 보다 본연의 순수한 감성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신도 요정도 도깨비도 악마도 모든 것들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바로 그때부터다. 예술가들이 마약을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마약을 하고서 보게 되는 그 환상들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하긴 동아시아에서도 예술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기는 했다. 술과 담배... 담배도 사실 약간의 환각성분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역시 술... 제대로 필름끊길 때까지 마시면 세상과 내가 분리되고 세상과 세상이 분리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창작은 내면의 순수함에서 나온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그 순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현실에서 쉬운가? 살아가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을 알아가면서, 점차 순수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순수하려 해도 뭐가 순수인지도 모르게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느샌가 순수하게 좋아 창작하던 것이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돈이 될만한 것을 계산해가며 생산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그런 타락이 싫어서 커트 코베인은 인생의 정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치열한 예술적 혼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 순수로 돌아가기 위해 심지어 자기 자신을 해쳐가며 - 자기의 일부를 깎아내어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매일을 술로 보내다 알콜중독에 간질환에 술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하루 몇 갑씩 피던 담배로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심지어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하고...

 

해외 뮤지션들 가운데서도 약물중독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래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뮤지션이나 창작자들이 그러한 약물에 빠져들었다가 철저히 파멸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고. 하지 말라 해도 하게 되는 이유... 그 환각이 그들을 다른 세계로 인도하니까. 정상으로는 이를 수 없는. 아마 그 대표적인 예까 폭력이 없는 사회를 꿈꾸며 대마야 말로 인간의 폭력성을 녹여준다며 오히려 대마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전인권이 아니었을까. 그야말로 대마가 주는 환각에서 그가 꿈꾸던 세계를 보는 것이니.

 

물론 그렇더라도 마약은 강한 중독성이 있는 - 그리고 인간의 심신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 아주 지독한 약물이다. 한 인간을 망치고 끝내 목숨마저 빼앗을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분명 그러한 마약의 유통은 금지되어 마땅하다. 마약을 유통시키는 자들에 대해서는 처벌하고.

 

다만 하고 싶은 말은 마약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단죄되어야 할 죄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약이 유해한 약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해를 끼친다는 것은 사회전체에 있어 큰 해악이 될 수 없으니까. 단지 혼자서 마약을 한 탓에 혼자 그 후유증을 겪고 그로 인해 가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라면 그런 정도는 법으로 처벌하더라도 도덕적으로는 관용을 베풀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국가적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마약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입장에서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굳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약을 하고 혼자 피혜해지고 망가지는 것까지 도덕적으로 단죄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법과 도덕은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마약이 주는 환각효과라는 게 그렇게 대단하느냐면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19세기 초 낭만주의를 이끌었던 콜리지의 시 "늙은 선원의 노래"만 하더라도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이 왜 이리 많은가. 맥락없고, 뜬금없고, 밑도 끝도 없고, 실제 한국을 대표하는 한 뮤지션의 경우 대마를 한 경험에 대해 라디오에 나와 이렇게 회고하곤 했었다.

 

"대마를 하고 공연을 하면 그렇게 공연이 잘 될 수 없다. 다만 내 입장에서. 박자 멋대로, 멜로디 멋대로, 내가 지금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도 모르고 그냥 좋다. 듣는 입장에서는 그저 소음일 뿐이지만. 나중에 녹음한 것 듣고 소름이 돋더라."

 

물론 그는 그 이후 대마를 끊고 말았다. 음악 잘 하자고 하는 대마인데 음악을 망치는데 해서 뭣하나? 해외 뮤지션 가운데서도 그를 두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고. 다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반드시 나쁜 의도에서는 아니라는 점에서 도덕적인 문제로까지 여기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아무튼 또 마약사건이 터졌다. 솔직히 어떤 의도에서, 어떤 이유로, 마약을 하게 되었는가는 모르겠다. 동정의 여지가 있는지, 관용의 여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만 그건 있다. 그렇더라도 사실상 그들이 사회나 주위에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건 얼마 없다는 것. 차라리 술마시고 사고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한 십 몇 년 전에 한 연예인이 술마시고 차를 몰다가 사람을 치어 죽인 일이 있었지. 사람을 치어 죽이고서는 시체를 유기하다 그만 근처에서 잠이 들어 잡히게 되었었는데... 최소한 그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거다. 아직까지 방송에서 왕성하게 모습을 보이는 그보다는. 아닐까? 어찌되었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