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나는 안티짓도 못한다.

까칠부 2009. 7. 18. 23:15

가끔 보면 항상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 부럽달까? 괜히 싫다며 욕하면서도 매번 챙겨보는 사람들...

 

솔직히 나로서는 무리다. 귀찮아서. 무지 귀찮거든.

 

생각해 보라. 싫은 가수다. 싫은 연예인이다. 싫은 노래고 프로그램이다. 그걸 욕하자고 앉아서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 짜증나는 거다. 세상에 할 짓이 얼마나 많은데.

 

인생이란 좋은 일 하면서 살아가기도 짧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일만 보며 살아가기도 버거운 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러 싫은 것을 찾아 듣고 보고 즐긴다?

 

하긴 그것도 보람이 없지는 않다. 싫은 것 꾹 참고 보면서 욕한다. 낮추고 트집잡고 비웃고 조롱하며 욕한다. 얼마나 쾌감인가? 세상에 그 대단하다는 사람들이 내 발밑에서 욕을 들어먹고 있는데.

 

물론 그것도 한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또한 즐기는 방식일 테고. 욕하면서 보고 듣고 하는 거 그거 꽤 재미가 솔찮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일 테다. 그러나 나더러 그러라면...?

 

안타깝게도 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서 망가지는 것조차 안쓰러워 못 보는 사람이라... 사실 코미디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어떤 대상을 비하하거나 과장해서 웃음의 소재로 삼는데, 그게 또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그런 것일 수도 있는 거다. 그것을 느끼는 거고. 그런데 싫은 뮤지션이나 연예인이나 방송을 찾고 앉아서 보라고?

 

그래서 내게 있어 싫다는 감정은 곧 무관심과 동의어가 된다. 아예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어느 유명한 가수의 경우 나는 그 사람이 앨범을 몇 장 냈는지도 얼마전에야 알았다. 그의 히트곡이 뭐가 있는지도 그러면서 처음으로 알았고. 그에 대한 불쾌감이 아예 그를 내 관심에서 지워버린 때문이었다.

 

거의가 그렇다. 뭣하러 싫은 것을 억지로 듣고 하면서 감정 상하는가? 감정만 상하는가? 감정 상하면 몸은 또 얼마나 축나겠는가? 시간낭비는 어떻고? 그냥 무시하는 거다. 걔는 원래 처음부터 없었던 거다...

 

한 마디로 내가 누군가를 두고 뭐라 욕이라도 하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리다. 그것도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관심이다. 그럴만은 하다는 인정이기도 하다. 그조차도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마는 거고.

 

아무튼 그래서 부럽다. 덕분에 나의 문화생활이란 참으로 협소하기 그지없는데,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뮤지션이나 영화나 만화나 작가나 음악이나 딱 정해져 있어서 그 범위를 넘어가기 힘들다. 싫으면 아예 듣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으니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전혀 뜻밖의 발견이나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그러나 어떤가? 욕하다가 어느날 얻어걸린 어떤 새로움이란. 그 놀라움이란. 그리고 그 호감이란. 그러나 또 그를 위해 참고 기다리기엔 내 성격이 너무 급하고 모난 터라.

 

그래서 부러우면서도 때로는 뭔짓을 하나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나와는 다른 바지런함과 그 오지랖이 부럽고, 그리고 그 쓸데없음에 한숨이 나오고. 물론 그 쓸데없음조차도 아무것도 않는 나보다는 낫지만.

 

고마워해야 하는 거다. 그래도 찾아보며 욕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이든 비난이든 해주는 사람들에게. 나같은 사람은 그조차도 않으니. 악플과 무플과 어느 쪽이 더 비참하느냐면 무플이 더 비참하니까.

 

그런 이유로 나는 안티라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떤 이유로 요즘 누군가를 무척 싫어하게 되었더니만, 무어라 비판하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것을 보라. 아예 관심이 사라지는데 뭔 안티?

 

싫다는 건 없는 것과 같다. 싫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의어다. 잔인한 말이지만 그렇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새삼 싫어한다느니 감정을 부여하는 것도 그렇고. 안티도 관심이더라는 말을 이해하고 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