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카라와 생계형 아이돌 - 루저의 시대...

까칠부 2010. 9. 15. 20:01

확실히 이미지로써 대중에 다가가는 존재인 아이돌에게 있어 가난이나 좌절이란 그리 달가운 단어가 아니다. 화려하고 멋지고 아름다웠어야 할 아이돌이 글쎄 생계형이라니...

 

그동안도 생계형이라 내세우지는 않더라도 이것저것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고 달려들던 아이돌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많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채 딱 그 수준에 머물다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그런 것이 아이돌이기에. 대중이 바라는 아이돌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기에.

 

그래서 사실 처음 생계형이라는 단어는 놀림거리로 쓰였다. 아이돌이 어디 그런 데까지 나오느냐. 그래서 나도 한승연을 알았다. 그때 별명이 한듣보여다. 지금도 부르는 사람이 있더만.

 

그런데 그렇게 무시당하며 우습게 여겨지던 카라가 락유 이후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밟아 정상에 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생계형은 더 이상 놀림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달리 생존형. 혹은 박규리가 말하는 성장형. 어떤 인간승리의 뿌듯함마저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참 어려운 시절이라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다. 그리고 힘들다. 고단한 삶을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간다. 그런데 허름한 숙소에 TV조차 없이, 전혀 연예인의 화려함이 느껴지지 않는 아이돌이란. 방송에 나와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도 마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연예인이란 꿈을 주는 존재다. 더불어 자신을 투사하는 존재다. 어려운 시절을 겪고 스타가 된 이에 대해 사람들이 감동하며 그를 지지할 수 있는 것은 그를 통해 자신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아마 카라의 경우도 코어한 고정팬은 그리 많지 않아도 그런 자신을 그들에 투사하려는 일반팬들은 많지 않을까. 어쩐지 공감하며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 막연하게. 팬덤 역시 결코 작은 편이 아니지만 대중적 인지도와 호감도에서 카라는 이미 상당한 위치에 이르러 있다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대중들 - 아이돌팬은 아니지만 어느새 공감을 느끼고 호감을 갖게 된 일반인들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다. 카라가 대박을 치고 난 이후 티아라를 비롯 많은 아이돌들이 대놓고 생계형 컨셉을 들고 나온 것은. 이전까지는 금기였다. 아무리 망했어도 아이돌은 아이돌이어야 했다. 아이돌다운 화려함과 신비감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궁상도 아이돌의 매력이 될 수 있다.

 

대국남아의 가람이던가? 식신원정대 나와서 제대로 밥도 주지 않는다며 투덜거린다. 시크릿은 청춘불패 첫회에서 은박지로 창을 막아 놓은 반지하방을 공개하고 있었다. 꽃다발에서도 사소한 생필품에 목숨을 거는 것이며, 아마 걸스데이였을 것이다. 국민돌이 되기 위해서 한탄강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왔다.

 

솔직히 조금은 슬픈 현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아이돌이라면 꿈을 주는 존재다. 대중이 요구하는 판타지일 터다. 그런데 그들이 자연스레 가난을 말하고, 어려움을 말하고, 궁상을 마다하지 않는 현실이란 것이.

 

그만큼 아이돌이 대중에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할 테지만 그런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이 늘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설마 그런 궁상을 동경하는 이는 없을 테니 동정이 아니라면 공감일 테지.

 

아이돌의 시대가 조금 더 오래 가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를 투사할 대상을 항상 찾는다. 자신의 욕망. 자신의 열등감. 자신의 불행. 자신의 좌절. 자신의 분노. 보다 화려한 비현실의 꿈과 더불어 조금은 질척한 현실의 공감을 아이돌에 바랄 때 그만큼 대중은 더 아이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비록 열성적인 팬은 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부디 성공했으면.

 

그 시작은 카라가 열었다기보다는 시대가 그렇게 시켰다는 쪽이 옳겠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양극화. 더구나 아이돌의 주수요층이랄 10대와 20대의 분노와 좌절이 심상치 않다. 원래의 아이돌 수요층이던 10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20대에서는 88만원세대라 하여 취업 등의 다양한 문제가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밝고 활달한 모습에, 어떤 일에든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자세에, 그리고 무엇보다 듣보라 부리던 우울한 시절을 딛고 한국 최고의 아이돌 바로 밑자리까지 올라온 성공스토리에.

 

대중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 대중문화란 그 시대의 무의식이다. 대중문화를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 그들이 어떤 것을 바라고 어떤 것을 꿈꾸는가. 그들이 놓인 현실인 무엇이고 그들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꽃다발을 보다가. 그리고 생계형을 아예 컨셉으로 잡은 아이돌들을 보면서.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들과.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로구나.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구나.

 

아무튼 덕분에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며 조금씩 꿈을 이루어가는 아이돌들에는 관심이 간다. 몸을 내던져가며, 굴욕을 견뎌가며,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슈퍼스타K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그리고 더불어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아이돌에 대해서는 안티가 생겨나고 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대형기획사에서, 제대로 지원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아이돌을 보면 느끼는 어떤 위화감이랄까?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돌이란 꿈을 주는 존재니까. 그것은 또한 모순이기도 할 것이다. 화려함을 꿈꾸면서도 그런 화려함을 증오하게 되는.

 

물론 그렇더라도 단지 증오만을 배설하려는 악플러란 쓰레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쪽이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증오를 배설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생계형 아이돌이라는 말이 더 이상 굴욕도 비웃음도 아니게 된 현실. 생계형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씁쓸하지만 재미있다 하겠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