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뉴욕포스트, 존박 2위한 것은 국적차별... 그럴만도 하겠다!

까칠부 2010. 10. 26. 20:02

뉴욕포스트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올라온 모양이다. 슈퍼스타K에서 존박이 우승 못한 것은 국적에 대한 차별 때문이었다고. 뭐 그렇게 여길만한 정황은 있다고 본다.

 

박재범 때도 그랬다. 타블로 때도 그랬다.

 

"외국인 놈이!"

"검은머리 외국인이!"

"군대도 안 가는 주제에!"

 

외국인이 한국 욕하는 것이 싫다. 외국인 주제에 한국 비판하는 것이 아니꼽다. 군대도 안 가는 주제에 의무도 않고 권리만 누리려는 게 배알꼴린다.

 

그래서 하는 말,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

 

당시 박재범의 마이스페이스가 그렇게 크게 문제를 키우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타블로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이 인터넷에 넘쳐나게 된 이유도 그것이었다. 아니 타블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조차,

 

"캐나디언!"

 

아마 뉴욕포스트 기자도 보았겠지. 작년 올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배타적인 국수주의를. 단순히 배척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는 증오를. 그러니 그리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사실 슈퍼스타K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런 글을 곧잘 보았다.

 

"외국인인데..."

"군대도 안 가는데..."

 

하여튼 그놈의 군대드립은... 그렇게 억울한가? 세상 모든 판단의 기준이 군대가 될 정도로? 우리나라는 군국주의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런 감정이 슈퍼스타K의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쳤는가? 아주 적은 차이라면 모르겠지만 거의 두 배 가까운 점수차이였다. 그만큼 허각의 노래실력이, 그리고 스타성이 심사위원으로부터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래봐야 그 차이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 사실이라는 것이다. 아주 미미하나마 영향이 있었을테고. 다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허각과 결승에서 겨룰 수 있었다는 자체가 대중이 존박의 역량과 가능성과 가치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과연 국적에 대한 차별이 일반화되었다면, 그래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면 존박이 결승까지 남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러나 그렇더라도 저런 주장들을 그저 헛소리라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것은 그런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들이 분명 우리 사회에는 있다. 그리고 작년 올해 그런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기도 했었다. 그것을 단지 일부일 뿐이라고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선은 작아도 선이고 악은 작아도 악이다. 악이 작다고 그것이 악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일이라.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라. 우리 안에서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라. 그래서 굳이 외면하고 감싸고 넘어간다면. 그러한 비판이 있었을 때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렇게 타블로 일로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언제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말했듯 존박에 대해서도 국적을 걸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뉴욕포스트의 주장이야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어도 그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 주목해 볼만 하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었는가? 어떤 배경에서 그런 말들이 나오게 되었는가. 그동안 보여왔던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과연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오해케 했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설사 그것이 터무니없는 오해일지라도 그 안에서 반성할 거리를 찾고, 바로잡을 것들을 찾고, 자기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그것이 오해일지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우리 사회에 그러한 빌미를 줄만한 부분은 없었는가? 그런 오해를 있게 할만한 여지는 없었는가? 이것으로써 우리를 발전시키고 바꾸어 나갈 계기로 삼을 수 없는가?

 

증오를 증오로써 느끼지 못하는 것이 증오를 키운다. 폭력을 폭력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폭력을 키운다. 악은 아무리 작은 것도 악이며 악 그 자체로 씨앗이 되어 자란다. 새삼 깨닫는 부분이다. 그동안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무엇이 증오를 키우고 폭력을 키우는가?

 

일부일 뿐이다. 상관없다. 다른 사람은 안 그러느냐? 뭔 상관이냐? 비판하지 마라. 남의 일이다. 혹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도 자유다. 권리다. 그런 무감각들이. 무신경함이. 무심함이.

 

아무튼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임에도 고개를 무심코 끄덕이고 마는 것은 그런 것들이 우리의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라. 겪어 왔었고 그것이 때로 크게 실체로 다가오기도 했었고. 존박 역시 마찬가지다.

 

전혀 오해에서 비롯된 기사임에도 단지 오해라고 윽박지르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보았던 것이다. 존박의 국적에 대한 증오를.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을 터다. 일부일지라도. 단순히 잘 못 쓴 기사다 욕하고 비난하고 말 일인가? 그것으로 과연 끝나는가?

 

뉴욕포스트가 한참 겉넘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 없는 사실이고, 그러나 그럴만한 빌미가 우리 내부에 있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일 테고. 그것을 무시하고 넘어갔을 때 변화는 없다.

 

고민할 부분일 것이다.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일 것이다. 저들의 오류는 오류더라도 우리 안의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것은 기회일 터다. 지혜로운 이라면. 지혜롭고자 한다면. 지혜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