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했다. 왜 나는 이 도망자라는 드라마에 이리 몰입을 못 하는가.
나는 일단 뭐든 보면 깊이 이입해 보는 타입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매우 몰입도 있게 재미있게 본다.
그런데 이 도망자는 그게 안 된다. 계속해서 이입이 깨진다. 몰입이 흐트러진다. 이것은 드라마가 아닌 액션을 보는 드라마라 동의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왜?
어제오늘 보면서 깨달았다. 아니 그제어제던가? 진짜 호감가는 놈 없다.
물론 착하고 좋은 사람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악당이더라도 어딘가 설득력 있는 악당이라는 게 있다. 아, 이런 악당은 꽤 그럴싸하다. 개연성이라는 것이다. 극중의 인물과 시청자를 잇는.
그런데 이 "도망자"에는 그런 게 없다. 일단 주인공 지우부터가 성격이 재수다. 한 마디로 싸가지가 없다. 염치도 없고 도의도 없고 신의도 없고. 이제 와서 뭔가 그럴싸한 모습을 보이려 해도 인간으로서 바닥인 모습만을 보여줘 온 결과 그닥 설득력은 없지 않은가. 차라리 끝까지 악당이었으면 조금 설득력이 있었을까?
그제 진이 위험에 빠지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함께 잡히는 장면에서 내가 헛웃음을 흘리고 만 것은 그래서였다. 과연 그 장면에서 그래야 할 개연성은 있는가.
그나마 진의 캐릭터는 설득력이 있다. 그런 사람들 물론 많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들. 감정 앞에 이성이 멈춰버리는 사람들. 사실 그쪽이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기는 하다. 진과 같은 상황에서라면 그렇게 감정에 앞서 실수를 범하고 하는 게 사람이겠지. 그러나 이게 참 짜증난다는 게...
결국 진이 사고를 치고 지우가 수습을 한다. 뻔히 예상되는 사고를 진이 치고 난 다음에는 지우가 느닷없이 정의의 용사가 되어 그 사고를 수습하려 든다. 전형적인 구도인데, 이건 한 마디로 진이 지우에게 짐이 되어 버리는 구도다. 그리고 진이 지우에게 짐이 되는 순간 시청자에게도 짐이 된다. 말리는데도 적이 모여 있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진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가. 어제도 사로잡혀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섣부른 적개심만 내세우는 것은.
양회장이나 황교수나 악당치고 물렁한 것도 역시 한 가지다. 악당으로써의 단호함이나 잔인함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어떤 설득력있는 인간적 묘사도 없고. 그냥 딱 주인공에게 당하기 좋은 역할? 오브제다. 적당히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리고, 그러나 주인공이 빠져나올 여지를 만들고. 황교수를 보면서 예전 타임보칸 시리즈의 그 악당여자를 떠올린 건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아동물의 악당에 가까운 모습들이다.
그에 비하면 조역들의 캐릭터는 또 얼마나 살아 있는가. 역시나 비현실적이지만 그만큼 희화화되어 있으니까. 오히려 철저히 작위적임으로써 그들은 또다른 생명력을 갖는다. 작위와 현실의 경계에서 그 위치를 찾지 못하는 메인 캐릭터들과의 차이랄까? 또 연기력도 탁월하고. 특히 속물적이면서 음모의 말단을 맡고 있는 국장의 캐릭터는 소름끼치도록 섬뜩하다.
아마 이정진과 여형사와의 러브라인이 귀엽다 여기는 것은 드라마 가운데 그나마 가장 정상적이고 가장 현실적이고 그러면서도 가장 개연성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한국드라마는 러브라인에 강하다. 적당한 츤데레 캐릭터인 이정진과 오로지 일편단심인 여형사, 그들이 만들어가는 또 한 편의 시트콤.
아무튼 관건은 앞으로 지우와 진의 캐릭터가 어떻게 바뀌어갈 것이냐? 양회장과 황교수의 캐릭터 역시. 아무리 액션 보자는 드라마라고 캐릭터에 설득력이 없으면 액션도 재미가 없어지게 마련이니. 제발 조연들 만큼만 존재감있게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으면. 배우에 누린 것일까?
어쨌거나 TV를 통해 보여지는 이나영은 참 예쁘다. 원래 예쁜 건 알았지만 TV로 보는 것과 모니터로 보는 것이 다르다. 예전 처음 이나영을 보면서 감탄했던 그 느낌이라까?
개인적으로 이나영을 보면 항상 일본의 료를 떠올리게 된다. 많은 부분 비슷하다. 다만 조금 더 귀엽고 조금 더 수수하며 조금 더 청순하다. 차라리 료였다면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을 텐데. 이나영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겠지만 그것이 한계로 작용한 것 같다는 느낌은 있다. 지우 역시. 그것이 문제였을까?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포장해 보여주는 것이 장르물의 예의다. 장르적으로 보다 높은 완성도를 보이자면 그같은 마무리가 필요할 것이다. 그게 부족하다는 것이고.
기껏 TV 켜놓고서 계속 딴짓을 하게 된 다는 것은. 지루함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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