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1급수 산천어...

까칠부 2010. 10. 31. 19:02

사실 나도 필요한 것들만 대충 기억해 쓰는 타입이라. 처음 쓰는 기능이면 무척 헤매는 편이다. 다만 차이라면 처음 쓰는 기능이라도 배우고 익히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

 

알고 모르고의 차이일 것이다. 그저 눈앞에 있는 것만을 외워 쓰는 것과, 그 원리를 알아 처음 보는 것이더라도 어느새 그것을 이해하고 쓸 수 있는 것. 맹이란 그런 것일 테지.

 

예상은 했다. 지난주 예고편을 보면서 이번에도 이렇게 흐르겠구나. 결국에 이번 미션은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의 OB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여러 미션에서도 그랬다. 자동차편에서도, 아내가 가출했다에서도, 그야말로 아저씨 세대라.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맹일 줄이야. 스마트폰 어플 하나 다운로드받는 것도, 디지털카메라로 셀카 찍는 것도,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음원사이트 회원가입에서까지.

 

도대체가 약관에 동의하는 것만 몇 분인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무지가 바로 미신을 만든다. 해병대편에서 딸 예림이에게 사진을 전송하며 빨리 전송되라고 손으로 훠이훠이하던 것처럼. 그런 말이 있지. 모니터를 닦으니 인터넷이 빨라진다.

 

모르니까. 그래서 당황스러우니까. 그리고 절박하니까. 차라리 미션이 아니었으면 그냥 없는 셈 치고 무시하고 말지. 그러나 미션이고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까 자연스레 막연한 어떤 당위에 매달리게 된다. 미신이다. 진심으로 동의하면 넘어가리라. 미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오죽하면 "아이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를 "아이디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로 잘못 읽고 다시 아이디를 만들고 있겠는가? 몇 번이나. 미지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간절함과 만나며 미신을 만든다. 미신은 오류이며 오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여튼 내내 웃고 말았다. 핸드폰 벨소리 하나 설정하는게 그리 어려운가. 하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가 그러니까. 아버지 세대가 그러니까. 아니더라도 또래 가운데서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으니까.

 

굳이 필요치 않으면 모를 수 있는 것이다. 굳이 디지털에 의지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자세히 알려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삶의 방식이 익숙한 세대들이다. MP3보다는 시디가 가깝고, 인터넷이나 이메일보다는 기존의 미디어나 편지가 더 가깝고, 터치방식이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는. 단지 필요치 않아 모르는 것을 가지고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경규의 말처럼 디지털의 침공이 아니라 이미 디지털이 점령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더 이상 많은 음악들이 시디라는 형태를 띄지 않게 되었다. 핸드폰을 사려 해도 도대체 뭐 이리 복잡하고 기능이 많은가. 간단한 기능만 요구하려 해도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시절이 되었다. 필요가 없다고 모른 체 넘어가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배우려 한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전혀 디지털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던 사람들도. 디지털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란 그래서 얼마나 찾아보기 힘든가. 어쩌면 멸종되어가는 또다른 천연기념물이 아닐까.

 

"물로 치면 1급수야."

"산천어야?"

 

1급수 산천어. 김국진. 하긴 이경규나 김태원이나 크게 더 나은 것은 없다. 어쩔 수 없이 김태원은 동갑 또래니까. 이경규는 나이가 더 많고. 트위터도 하고 한다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에 익숙지 못한 세대다.

 

어쩌면 YB가 그러하듯 그리 쉽고 간단할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나도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인데 그것이 도저히 되지 않는다. 답답하지만 그러려니 이해하니까. 이미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안쓰럽고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도와주고 싶고 그래서 너무나 쉬운 기능 한 가지를 알아내고 좋아하는 아저씨들이 그리 귀여울 수 없다. 비덩보다도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것이 바로 이 세 아저씨들이 겨우 찍은 셀카였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말했듯 주위에 많이 보는 모습들이다.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바로 주위에서, 아니면 한 다리 건너, 두 다리 건너, 어디엔가는 반드시 있을 모습들. 그래서 더 정겹고 더 웃음이 즐거운 모양이다. 아, 이렇게도 모를 수 있구나. 비웃음이라기보다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산천어의 해맑은 모습이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리라.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의 감수성이.

 

역시나 시작은 토크였다. 간만에 이정진이 함께 했고 서로 주고받는 짓궂지만 정겨운 이야기들이 있었다. 디지털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과 입장들. 많게는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그들만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세대차이이기도 하고. 넉살좋은 이야기들이 오랜만이나 왜 이리 즐거운지.

 

다만 미션의 특성상 OB에 편중될 수밖에 없는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겠다. 그리고 그동안도 비슷한 컨셉의 미션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에서도 식상한 점이 있었고. 그래도 재미있었지만 100% 만족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OB의 힘이었지만 YB의 아쉬움이었고 새로움의 부재였달까?

 

남자의 자격스러웠고 남자의 자격이었다. 오히려 오늘은 그런 점들이 조금은 마이너스가 되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고 재미있었지만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저씨들은 귀여웠고. 김국진, 김태원, 이경규...

 

어느새 벌써 두 달이면 평균나이 41.9세구나. 그냥 아저씨들. 대단한 스타연예인이라기보다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아저씨들. 디지털이어도 아저씨. 아저씨 만만세. 아저씨가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