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이윤석이 있어 아름답다!

까칠부 2010. 10. 24. 21:31

무언가 짠하다. 그러나 불현듯 웃음이 나려 한다.

 

웃음이 나려 한다. 그러나 웃을 수 없는 어떤 뭉클함이 있다.

 

바로 이런 게 페이소스다. 바로 이것이 슬랩스틱이다.

 

고작해야 도배다. 그리 넓은 면적도 아니다. 좁은, 아마 한 평 정도 되는 공간을 도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 힘들다. 누가 보면 혼자서 경복궁 도배 도맡아 다 한 줄 알겠다.

 

그리 체력이 저질이다. 오죽하면 시험관이 물까지 챙겨주겠는가? 어느새 다리는 풀려 휘청이고,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해 드러누워 작업을 계속 하고... 하지만 열심이지 않은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땀이, 그의 집중하고 있는 눈빛이 그의 진심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웃기에는 그 땀이 너무나 값지다. 너무 빛난다. 남들보다 못한 체력으로, 고작 세 시간을 버티기 힘든 몸으로도,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그는 연예인이다. 그리고 대학교수다. 도배기능사야 있으나 없으나. 그러나 주어진 일이기에, 목표로 하는 일이기에 최선을 다한다. 손을 다쳐 첫 시험에서 실격당했을 때 그의 눈물은 그만큼 진했으리라.

 

보통사람과 다르기에 우스꽝스럽고, 그러나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조차 최선을 다하려 하기에 울컥 감히 웃지조차 못하겠고. 그러나 그렇다고 짓눌려 있거나 주눅들어 있지 않기에 또한 마음편하게 그것을 보며 웃을 수 있고. 슬랩스틱이란 - 원래의 코미디란 그러한 슬픔 가운데 웃음을 찾는 것이었다. 아픔 가운데 웃음을 찾는 것이었다.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낙천과 긍정이. 남들이 웃는 상황에서도 항상 진지할 수 있는 그런 진정이. 그래서 때로 웃음에는 찡한 감동이 곁들여 있는 것이다. 아니 감동 뒤에는 흐뭇한 웃음이 있다.

 

이윤석이 시험을 치르고 나와 학원 원장과 악수를 나눌 때, 그리고 남아공에 가서 인터넷으로 합격사실을 들었을 때 함께 터져 나온 웃음은 그러한 성취감과 공감의 웃음이었던 것이다. 그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리 어려운 처지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함께 보았었기에. 그래서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 것처럼. 그의 성취감이 곧 나의 성취감인 것처럼. 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가장 빛나고 가장 선량한 웃음이 아닐까?

 

확실히 오늘 남자의 자격은 거의 다큐멘터리였다. 윤형빈과 김국진의 합격여부를 확인하는 자리에서 오간 토크를 제외하고, 바로 그전까지 철저하게 다큐멘터리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마이크가 뭔 소용인가? 슬레이트마저 묵음으로 처리해야 하는 철저한 침묵 속에 단지 자격증을 따기 위한 최선의 노력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웃음을 위한 어떤 시도조차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진지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야 과연 예능일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았는가? 이윤석이 몸을 못가누고 있을 때. 김국진이 아차 실수로 다 그려 놓은 POP에 손자국을 냈을 때. 물감까지 번지고. 윤형빈도 결코 쉽지 않았다. 두 달 넘게 지나 학원을 찾은 그의 손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정작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웃음조차 잊고 있을 때 당연히 나 또한 웃음을 잊었다. 과연 합격할까? 합격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실수는 하지 않을까...

 

그저 웃기려고만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황에서도 웃기려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고. 그래도 합격자 발표가 나왔을 때 그렇게 기꺼운 웃음을 지을 수 있었을까? 그러지 않았으니까. 웃음을 잊은 대신 그래서 잊었던 웃음 만큼이나 더 큰 더 값진 웃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의 그 진정을 보았기에. 그 진정을 확인했기에.

 

물론 그렇다고 웃음을 아주 잊었는가? 윤형빈과 김국진의 합격여부를 확인하는 자리에서 이어진 토크는 어쩔 수 없이 남자의 자격이란 예능임을 보여준다. 그것도 동시간대 최고 시청율을 자랑하는 최고의 예능 가운데 하나다. 이경규와 김태원과 김국진과 김성민과 그리고 자격증을 따고 자신이 붙은 윤형빈과. 이윤석은 자기가 웃기는 것은 약할지 몰라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말과 말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역할은 탁월하다.

 

어느새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나뉘고, 그것이 OB와 YB가 되고, 자격증을 딴 이윤석, 김성민, 윤형빈의 공격에, 다시 김국진의 가세에, 시험에서 연거푸 떨어지며 기세를 잃은 이경규의 비굴함에.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뻔뻔한 마이페이스 김할머니 김태원.

 

"잘 풀렸으니 음악인이지..."

 

아마 해피선데이 메인작가가 말했을 것이다. 김태원은 타고났다. 예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꾸미지 않은 모습 자체가 예능이다.

 

"이번에는 끝까지 지켜보고 있을게."

 

그러나 채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당구칠 줄 아냐?"

 

김국진이 시험장에 들어가자마자 이윤석을 꼬시며 하는 말. 그리고 이윤석이 당구를 못 친다 하니,

 

"집에 가자!"

 

알공예를 하면서도 그리 쉬지 않고 수다를 떨어댄다. 일반인이다. 학원 강사도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 일반인과 더불어 끊임없이 허튼 소리든 뭐든 수다를 떨며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인다. 굳이 의식해서가 아니라 천성이다. 

 

"고난이 있고 역경이 있으면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

 

나도 혹했다. 진짜 그렇지 않을까. 진짜 그런 의도가 아닐까?

 

자격증시헙을 압박하는 제작진과 멤버들에 대해서 한국의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계산하고 했다면 너무나 뻔했을 테지만. 계산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한 느낌이다.

 

이윤석이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윤형빈이 인간극장을 찍었고, 김국진은 모노드라마를 찍었고, 그리고 김태원은 예능을 찍었고. 그리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는 철저한 예능이었다. 그러면서도 드라마였다. 서로의 캐릭터와 역할이 확연히 드러나는. 이제는 어느 한 개인이 치고 나가 웃기는 시기는 지났다. 웃기든 못 웃기든 그들은 남자의 자격이고 모든 것은 남자의 자격으로서다.

 

POP시험을 치르면서 보여준 김국진의 모노드라마는 김국진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가를 보여주었다 할 수 있겠다. 이 사람은 타고 났다. 애교가 많다. 애교 그 자체다.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작은 몸짓 하나에도, 어느샌가 눈길이 가고, 그 선량함에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란.

 

"똥싸고 앉았네!"

 

독설이라면 독설이지만 김국진이 하니 이 아니 귀여운가? 이경규를 잡는 역할이니 갈등이 있어야겠지. 디스가 있어야겠고 충돌이 있어야겠고.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거나 독하거나 한 느낌보다는 이경규조차도 귀엽다. 김국진과 함께 있으니 귀엽다. 이윤석의 다큐멘터리와 윤형빈의 인간극장과 더불어 김국진의 모노드라마와 김태원의 예능이 화룡점정의 마침표를 찍지 않았는가? 집중했고, 감동했고, 그리고 웃었다.

 

아무튼 윤형빈의 본명 "윤성호" 하나 가지고도 그렇게 끊이지 않고 떠들어댈 수 있는 것이 남자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사짜 아니냐고. 원래 본명이 윤형빈 아니냐고. 그리고 1년 넘게 했으면서 어떻게 본명도 모르느냐고. 언제 본명이나 불러준 적 있느냐고. 굳이 쥐어짜듯 짜내는 예능이 아니다. 일상에서 나올 수 있는 말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 그것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남자의 자격의 코드는 공감이다. 감동 이전에 어느새 그들 사이에 나도 함께 있는 듯한, 바로 나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공감이다. 그것이 지난 하모니 미션에서도 그토록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시청율 그 이상의 화제를 몰고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일 게다. 원래의 남자의 자격의 모습 그대로랄까?

 

모르겠다. 남자의 자격을 보고 자격증을 따겠다 나선 사람들이 몇이나 되려는지. 최소한 POP와 알공예는 알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뜨개질은 많이들 하더라도, 재빵사는 이탁규 대신 김탁구가 붐을 일으켰더라도. 도배사나 굴착기야 생계와 관계된 것이니까. 나도 얼마전 자격증을 하나 땄는데. 과연 남자의 자격의 영향이었을까? 물론 그런 것은 아니었디만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남자의 자격이었다. 하모니편이 너무 컸다. 월드컵에 이은 하모니. 물론 하모니편도 좋았지만 이런 게 남자의 자격이 아니었을까. 초심편에서 초심을 찾고 드디어 남자의 자격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다음주는 디지털이라 하니. 그런 일상의 이야기들이야 말로 남자의 자격이 갖는 강점이며 남자의 자격을 보는 이유일 것이다.

 

무려 8년만에 본 F1경기도 재미있었고, F1 덕분에 기다림도 잊은 채 느즈막이 보게 된 남자의 자격은 더 재미있었고. 그것이 진짜 아주 오랜만의 컴퓨터 모니터가 아니라 TV라서 더 좋았다. 이래저래 즐거웠던...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윤석인 것 같다. 가장 웃기지도 못하고 가장 잘나지도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자격의 미션이 그대로 녹아드는. 남자의 자격이 추구하는 바를 그대로 몸으로써 보여주는 것이 이윤석이 아닐까. 그것을 확인했다. 이윤석이 있어 남자의 자격은 남자의 자격일 수 있다. 체력이 다해 드러누운 이윤석의 땀에서, 집중하는 눈빛에서. 이윤석은 아름답다.

 

최고라 할 만하다. 남자의 자격치고 최고가 아닌게 얼마나 되겠냐만. 만족을 넘어선 만족이었다.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