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이장희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까칠부 2010. 12. 2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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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이장희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가사 출처 : Daum뮤직

이장희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70년대를 떠올린다. 70년대는 80년대와는 또 달랐다.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너무나 강고했고, 그에 저항하기에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청년들은 아직 조직화되지 못했다. 전쟁의 상흔을 겨우 딛고 가난을 벗어가고 있는 나라에서 또한 젊은이들은 가난을 이기기 위한 생업에 내몰려야 했다.

 

체념과 절망, 그리고 현실을 잊으려는 탐미적인 도피. 나른하면서도 몽환적인, 그리고 퇴폐적이기까지 한 이장희의 음악은 그런 70년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하다. 마치 마약에 취한 듯 - 그래. 어쩌면 이런 게 사이케델릭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장희도 대마초로 걸려들어가고 있었고. 좌절한 지식인이 술에 취해 여자의 품을 찾듯 그렇게 이장희의 음악도 탐미적인 아름다움에 매몰된다.

 

의식했을까? 그보다는 무의식이었을 것이다. 시대가 그러했으니. 이육사가 말한 강철무지개처럼 도무지 꺾일 줄 모르는 군사독재의 그림자 앞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 모든 권위 앞에, 무릎팍도사에서도 미국 땅을 밟고 이곳이 자기가 살 곳이라 바로 여겼다고 했다. 가족조차 그립지 않을 정도로.

 

사실 70년대 포크문화 전반이 그랬다. 저항이라는 자체가 불가능했던 당시의 포크음악들은 지나칠 정도로 개인적이고 사변적이며 탐미적이었다. 지금까지도 당시의 포크음악이 소비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아름다우니까. 시대를 잊을 정도로 아름다우니까. 그에 비하면 한대수의 음악은 아름다운 풍경화에 문득 새겨진 스크레치와 같았다. 거칠고 그 음울한 분위기는. 어쩌면 그와 가장 어울리는 것이 이장희의 음악일 것이다.

 

하긴 영화 "별들의 고향"도 그런 70년대의 시대적 정서를 담고 있었다. 지금 보면 도대체 저게 뭐하는가 싶다. 체념적이고 묘하게 관조적인 정서는 이장희의 주제가를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별들의 고향"이 10년 넘게 깨지지 않은 관객동원기록을 갖게 된 것도 괜한 게 아니었다. 이장희의 음악 역시.

 

아마 음악인은 음악을 따라간다고. 이장희의 음악인생도 그렇게 그의 음악을 닮아 무기력하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건 아니라는 한 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 죄를 지은 죄인이 되어 불명예스럽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자기 노래에 자기 이름조차 걸지 못하게.

 

그리고 그럼에도 권력조차 어쩌지 못한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도. 굳이 음악으로만 자기를 표현할 필요가 있나? 사업을 하고, 이민을 가고, 식당을 경영하고, 라디오코리아를 운영하고,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자기가 사랑하는 울릉도에서 삶을 정리하고 있다. 거칠 것 없이 자기 뜻대로 살았던 그의 삶은 어쩌면 그의 음악 그 자체이리라. 음악이 아니더라도 이장희는 어디까지나 이장희일 테니까.

 

불행했던 시대. 불행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시대. 왜 한국의 대중음악은 사랑타령 일색인가? 사랑이라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까? 시를 찾고, 음악을 찾고, 낭만을 찾고, 아름다움을 찾고, 참혹한 현실보다야 아름다운 것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너무나 아름다운.

 

물론 과연 그런 뜻에서 쓴 노래인가?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70년대가 문득 이장희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깊이 이입되어 들릴 뿐. 아침이슬도 아닌, 고래사냥도 아닌, 아니벌써도 아닌 바로 이 노래가. 그의 음악이. 그 시절을 관통하는 어떤 아릿함이. 내가 그 시절을 살았던 것은 더욱 아니지만.

 

무릎팍도사를 보는 내내 이 음악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이장희의 음악이 이것 하나만은 아닐테지만, 그러나 가장 이장희스러운 음악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사랑하는 이의 품을 찾는. 현실을 잊으려는 나약하면서도 순결한 젊음이. 외치고 싶은. 차마 외치지 못하는. 아름다움. 자유. 아마도.

 

 

덧, 앞으로 "오래된 음악들"은 이렇게 써야겠다. 동시에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 뭘 쓸까 고민하다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차라리 아무것도 없이 글만 쓰면 생각나는대로 쓰면 되는데,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생각이 그때마다 바뀐다. 계기가 있을 때 그때 맞춰 쓴다면.

 

그나저나 다음 상품권 나온게 3개월짜리였다. 젠장. 결국 20곡 넘는 걸 그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날린 셈. 그나마 블로그가 장사가 되었는데 얼마간 들어온 게 있으니 그것으로 올린다. 그나마 음악 올릴 돈은 나오니 그게 위안이다. 빚진 것 없다. 그나마도 음악으로 다 돌려주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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