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부활 - 가능성...

까칠부 2010. 12. 2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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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 부활

어느 순간부터 하늘이 세상에 내리는 비인지
눈이 부시어 두눈 감은 채 잠든 사이로
버스가 오지 않는 오래된 거리 정거장에
낡은 radio 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낯선 이들의 시선들
우연한 이 비처럼 그리운 이름
그리운 비가오네 그 누가 지나쳐 갈 아스팔트위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내가 더 기다려야만 하나
비가 오네 그누가 지나쳐 갈 아스팔트위로
너무나 많은 시간들을 나는 기다리나
내가 알 수 없을 순간 너는 날 스쳐가겠지만
늙은 radio 예보에 없던 그 비가 내리네

가사 출처 : Daum뮤직

 

참 김태원스런 아름다운 가사다.

 

"어느 순간부터 하늘이 세상에 내리는 비인지"

 

얼핏 듣고 있으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암호인지. 하늘이 어떻고 비가 어떻고.

 

하지만 다음 귀절을 듣고 있으면 불현듯 이미지가 그려진다. 모호한 듯 분명한 어떤 그림이.

 

"눈이 부시어 두눈 감은 채 잠든 사이로"

 

이어지는,

 

"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네"

 

사실 이 노래의 주제다. 예보에 없던 비가 내린다. 그리고 눈이 부시어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다. 비는 여기서 햇살과 도치된다.

 

다시 말해 세상에 내리는 비란 눈부신 여름햇살이다. 그리고 내리는 비는 소나기일 테고. 그러면 왜 햇살을 비라 표현했을까? 제목에 나와 있지 않은가? 가능성이라고.

 

"우연한 이 비처럼 그리운 이름"
"그리운 비가오네 그 누가 지나쳐 갈 아스팔트위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내가 더 기다려야만 하나"

"내가 알 수 없을 순간 너는 날 스쳐가겠지만"

 

여기서 낡은 라디오와 버스정거장은 중요한 메타포로 쓰인다. 버스정거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현재의 공간이다. 그리고 라디오는 소통을, 낡았다는 것을 과거를 뜻한다. 과거의 기억이 라디오를 통해 현재와 이어진다. 버스정거장은 그 우연이 가능성으로 나와 마주하는 공간일 것이다.

 

"우연한 이 비처럼 그리운 이름"

 

말 그대로 그리움. 그리고 화자는 그 그리운 이를 예보에도 없이 내리는 비처럼 우연히 마주치기를 바란다. 아니 비가 예보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레 내리듯 어디선가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스쳐지나가리라고.

 

그래서 "세상에 내리는 비인지"와 "차창밖으로 스쳐가는 낯선 이들의 시선들"은 댓구를 이룬다. "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네"와 "내가 알 수 없는 순간 너는 스쳐가겠지만"도 댓구를 이룬다. 햇살처럼 낯선이들의 시선들은 가능성이다. 햇살에 비가 있듯 그 시선 속에 그리운 그 이름이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예보에도 없던 비처럼 그렇게 갑작스럽게 그렇게 우연스럽게 자신을 스쳐지날 것이다.

 

그래서다. 눈부시도록 따가운 햇살이 비가 되는 것은. 그립기 때문에. 만나고 싶기 때문에. 우연이더라도. 모른 채 스쳐지나가더라도. 갑작스레 내리는 비처럼. 눈을 감은 채. 그리고 꿈꾼다. 꿈결처럼 우연한 만남을. 아마도 우연한 비처럼 수많은 낯선 시선이 스쳐가는 버스정거장에서. 갑작스런 비처럼 그렇게.

 

지극히 김태원스런 정서랄까? 나는 김태원의 가사를 읽다 보면 묘한 감흥에 빠진다. 80년대 이전, 70년대 이전, 언어가 주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하던 시인들처럼.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지는 그의 가사들은 시간과 공간을 교차하며 내면의 깊은 서정을 전한다. 이제는 상처마저도 아련한 아릿함으로.

 

그리고 음악은 무척이나 흥겹다. 내가 부활의 6집을 좋아하는 이유. 김기연의 시원스런 목소리가 좋다. 그의 목소리는 가능성 그대로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여름의 소나기같다. 아프도록 때리는 소나기처럼, 그 소나기가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드럼. 드럼이 채제민인가는 나중에 알았다. 가능성도 그렇지만 타이틀곡 "너에게로"에서도 채제민의 드럼은 마치 심장박동처럼 무겁게 감정을 짓누른다. 두근거림처럼 아련하게 노래를 받친다. 그리고 그 위로 노니는 경쾌하면서도 비만큼이나 담백한 기타. 마치 빗소리인 양 맑고 투명하기까지 하다. 부활의 앨범 가운데서도 5집 만큼이나 독특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앨범. 기타솔로가 강조된 마지막 앨범이기도 할 것이다. 중간의 간주는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리운 무엇이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팀은 거의 없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부활조차도 이제는 하지 않는 음악이기에.

 

정동하의 버전도 물론 좋다. 정동하의 목소리에는 타고난 아련함이 있다. 마치 아스팔트에 부서진 빗방울들이 부옇게 안개를 이루는 것처럼. 하지만 역시 쨍쨍 따갑던 햇살이 느닷없는 빗줄기로 바뀌는 그 정서는 김기연이 더 어울리지 않은가. 김기연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거세게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말갛게 햇살이 비치고 있는 것 같다. 비가 해이고 해가 비이고.

 

어쩌면 지금 들어도 무척이나 신나고 좋은 매우 대중적인 노래다. 하지만 "가능성"과 "너에게로"를 듣고 있으면 마치 3집의 "소나기"와 "사랑할수록"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쉽고 직관적이고 대중적이지만 그러나 김태원이 바라는 스케일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가. 김태원이 추구하는 음악은 상당히 클래식에 가까운 스케일 있는 음악이다. 대곡스타일을 좋아한다. 그에 비하면 "가능성"은 소품에 가까울 듯. 그러나 그런 점이 보다 직관적으로 사람의 감성을 울릴 수 있는 것일 테지.

 

그러고 보면 이 6집은 나와 인연이 특별하다. 아마 그때도 여름이었을 것이다. 베란다 창을 열고 여름볕에 잠들어 있는데 문득 잠결에 들려오는 노래가 있었다. 텅빈 공장에 시커멓게 길쭉한 사내가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고 있는 그 뮤직비디오는 6집의 "너에게로".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이후 여기저기 묻고 돌아다녀도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이 "너에게로"라는 것을 알고 "가능성"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고. "가능성"은 김태원의 음악 가운데 가장 대중음악스러운 베스트에 든다. 어쩌면 요즘 나왔으면 더 인기였을지도.

 

비가 오는 날이면 듣고 싶어진다. 특히 무겁게 내리깔린 구름 사이로 비처럼 햇살이 비칠 때면. 어둑하게 젖은 아스팔트가 그렇게 어울린다. 김기연은 지금 춘천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한다는 것 같은데. 보컬이 성대결절로 활동을 못하게 되는 바람에 그대로 묻혀버린 앨범이다. 부활로서도 참 비운이었지.

 

참고로 부활은 바로 이 6집을 경계로 다시 한 번 김태원만 남기고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물갈이가 된다. 최근 인터뷰를 보자니 김태원과 키보드였던 최승찬의 대립이 김기연의 성대결절로 활동이 조기에 중단되면서 폭발, 정준교가 최승찬의 손을 들어 함께 탈퇴하면서 전부터 인연이 있던 채제민까지 함께 나가 주니퍼라는 팀을 꾸린 때문이었다고 한다. 완전히 고립무원 혼자 남은 상태에서 이리저리 오디션을 보고 해서 모은 멤버가 서재혁, 엄수한, 8집까지 녹음하고 탈퇴한 김관진. 부활이라는 팀도 참 파란만장하다. 대하드라마로 만들어도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 듯.

 

문득 듣고 싶었다. 원래는 벨소리로 하고 싶었는데 벨소리는 정동하 버전밖에 안 되더라. 비도 오지 않는데. 그리고 겨울인데. 하지만 음악이 좋은데 시간이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눈을 감고 한여름의 무거운 햇살을 떠올리고 들으면 그 뿐. 좋다. 항상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노래 가운데 하나다. 멋진 음악이다.

 

어쨌거나 곡쓰기도 곡쓰기지만 김태원의 가사는 항상 감탄케 하는 무언가가 있다. 요즘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어떤 올드하면서도 그리운 무엇이. 깊은 밤 불현듯 떠오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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