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잠든 머리맡에 가만히 앉아
이밤을 지키는 나는 나는 바람 바람이려오
그대 잠든 모습처럼 가만히 앉아
이밤을 지키는 나는 나는 어둠 어둠이려오
멀리서 멀리서 밝아오는 아침이
나의 노래 천국의 노래 삼켜버려요
날개짓 하면서 밝아오는 아침이
나의 노래 천국의 노래 흩어놓아요
산들산들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
이밤을 지키는 나는 나는 바람 바람이려오
멀리서 멀리서 밝아오는 아침이
나의 노래 천국의 노래 삼켜버려요
날개짓 하면서 밝아오는 아침이
나의 노래 천국의 노래 흩어놓아요
산들산들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
이밤을 지키는 나는 나는 바람 바람이려오
이밤을 지키는 나는 나는 어둠이려오
1981년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을 주도했던 허문도는 한 가지 어처구니 없는 행사를 기획한다. 원래는 KBS에 강제통합된 TBC에서 주최했던 "제 1회 전국 대학생 축제 경연대회"를 바탕으로 신군부의 집권과정에서의 국민적인 불만과 분노를 돌릴 수 있는 대규모 축제를 열기로 한 것이다. 바로 "국풍81"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사살됨으로써 오랜 독재가 종식되고 대한민국에는 비로소 민주화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 서울의 봄이라 불리운 그 짧은 행운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화에 대한 기대로 부풀게 했었다. 그러나 그해 12월 12일 12.12쿠데타를 통해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이듬해 5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그같은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불행한 장면 가운데 하나였던 서울역회군과 광주에서의 민주화투쟁은 그러한 신군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보여준다 할 수 있었다. 비록 1980년 9월 유신헌법에 의해 장충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전두환이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전두환과 신군부에 의핸 새로운 군사독재정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의 반동이었다.
당연히 신군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전두환정권 내내 신군부의 새로운 군사정권은 그 정통성의 문제로 항상 국민적 비판과 저항에 직면해야 했었고, 따라서 정권차원에서도 그에 대한 대책은 시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저 유명한 3S. 스포츠, 섹스, 스크린.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어느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데 그 내용 가운데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살짝 들어가 있었다. 그러자 당시 안기부에서 그 감독을 찾아가 제의를 했다. 그 장면을 빼 주면 심의를 할 때 보다 내용을 완화해 주겠다. 사회비판보다는 차라리 섹스가 낫다.
국풍81도 그런 일환으로 치러진 행사였다. 더구나 유신정권에서보다 더 강력한 언론에 대한 통제를 위해 언론사통폐합을 강행한 뒤였다. 그리고 원래는 언론사통폐합으로 지금의 KBS2가 되어버린 TBC에서 주관했던 행사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아주 여러가지로 썩은 내가 풀풀 풍기는 고약한 행사였다.
솔직히 국풍81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전국대사슴놀이와 조금은 혼동되기도 하는 것이, 넓은 운동장인가 광장인가에서 사람들이 모여 민속놀이도 하고 하는 것이었거든. 또 신군부에 의한 군사독재정권은 그렇게 민족이니 민속이니 좋아하던 시절이기도 했었다. 환단고기가 본격적으로 번역되어 보급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아마 전두환은 당시 김일성처럼 남한에서 민족의 영도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도 기억하는 하나가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신문지상과 방송에서 전두환의 일대기가 참으로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미화되어 보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의 출생부터 성장, 사관학교 입교와 이후 정권을 잡기까지의 과정이 거의 전기물처럼 보도되고 있었는데, 어린마음에 정말 대단하다 감탄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런 행사였던 만큼 의도한 것과는 달리 대학생의 참여는 상당히 저조한 편이었다. 허문도 자신이 서울대 동문들을 동원해 행사를 주도하고 있었음에도 그러나 정작 대학생의 참여는 거의 없이 단순히 정권홍보차원의 행사로 머물고 말았다. 물론 TV로 보기에는 꽤나 그럴싸하기는 했지만. 다만 그럼에도 한 가지 유의미한 결과를 낳았다면 축제의 일환으로 열렸던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으며 데뷔한 대형신인이랄까?
이용이었다. 80년대 전반 조용필과 전영록이 양분하고 있던 당시 한국 가요계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이들 슈퍼스타들과 경쟁하던 또 한 사람의 슈퍼스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었던 전성기의 조용필을 꺾고 가수왕에 올랐던 바로 그다. 비록 활동기간은 짧았고 그 끝도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그가 데뷔하고 활동하던 당시 그가 보여준 모습들은 당시 조용필과 전영록 이외에도 이용이 더 있었음을 알게 했다.
그의 데뷔곡이다. "바람이려오"는. 그가 국풍81의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며 들고 나왔던, 아마 자곡가가 한풀잎이던가. 흥겨운 듯 애잔한 멜로디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노래다. 더욱 이용의 안정된 발성과 독특한 맑은 우수가 느껴지는 비브라토가 있어 더욱 맛과 멋이 더해지고 있었다.
사실 노래 자체는 무척이나 무서운 노래다. 무섭도록 슬픈 노래이기도 하다. 스토커일까? 아니면 죽은 귀신일까? 결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에 대한 노래일 터이니.
생각해 보라. 자고 있다. 자고 있는데 자고 있는 사람의 머리맡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다른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과연 정상일까? 더구나 밝아오는 아침이 노래를 삼키고 흩어버린다니, "천국의 노래"라는 귀절이 심상치 않다.
모른다. 과연 몰래 숨어들어 그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지독한 스토커인지. 아니면 그를 사랑하여 미처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남은 누군가인지. 차마 들킬새라. 차마 알새라. 차라리 바람이려고. 차라리 바람이려고. 그를 지켜주는 바람일 뿐이라고. 아침을 두려워하며. 아침을 무서워하며. 이 밤을 지키는.
물론 스토커라 하면 전혀 아름답지 않는 내용일 터이니 차라리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라 여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왕에 아름다운 노래인데 굳이 아름답지 못하게 들을 필요가 있겠는가? 죽어서도 잊지 못하고 항상 그녀의 머리맡을 지키는 어떤 이의 영혼이라 하는 편이 노래에 어울리게 아름답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서 또 슬프다. 사랑하는 것이야 더 할 수 없는 축복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어 남겨진 미련이란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기만 할까?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바람처럼 그 존재를 알지조차 못하고. 그 무엇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은. 차라리 바람이려오라 외치는 그 말이 차마 상처입은 비명처럼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이고 상처이리라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더 이상 그녀를 위해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다. 그녀는 여전히 나와 상관없이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며 행복을 찾을 것이고, 무엇보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나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그녀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절망이고 좌절일까? 죽었으니 그조차 느끼지 못할까?
미련은 산 사람마저도 귀신으로 만든다. 죽은 이라면 당연히 귀신이 되어야 할터다. 그래서 귀신이기보다는 바람이기를. 아무런 감정도 없는 그저 스치고 감싸는 바람이기를. 에로스의 사랑도 여기까지 오면 아가페이리라. 숭고함일까? 아니면 미련함일까? 단지 미련일 뿐일까?
그러나 음악은 더없이 흥겹고 멜로디는 또한 아름답다. 우수어린 목소리의 떨림이 맑게 마치 바람처럼 선뜻하게 가슴으로 다가든다. 그 슬픔의 깊이야 어떠하든 음악은 이리 아름다우므로. 가사조차도 그래서 떠나지 못한 이의 안타까움보다는 사랑하는 그 자체의 축복으로만 들린다. 그래서 가사도 아름답다. 음악처럼. 그대로.
문득 떠올랐다. 10월 하면 떠오르는 "잊혀진 계절"과, "잊혀진 계절"과 더불어 떠오르는 "이용"과, "이용"과 함께 떠오르는 "바람이려오". 10월에서 11월로 넘어가는 사이 자연스럽게 문득 부는 바람처럼 떠오르고 부르고 듣게 되는 노래들이다. 사람이야 어떠하든. 사람이야 바람이 되어 사라져도. 바람처럼 남아 노래는 들려온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가수는 살아서도 음악을 남긴다. 단지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노래가 다만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일까? 그를 기억할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라 할 것이다. 노래가 그를 기억케 한다. 그의 이름을. 그의 목소리를. 여전히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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