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KBS가요대축제...

까칠부 2010. 12. 31. 01:03

그나마 연말특집이라고 가장 준비한 노력이 보인 무대였다. 다만 역시나 급조한 무대라는 건 어쩔 수 없달까.

 

과연 평소 그들이 즐기던 음악이었는가. 즐기던 춤이었고 즐기던 무대였는가. 어색하다. 마치 전혀 맞지 않은 기성복을 급히 입고 나온마냥.

 

시작부분에 걸그룹들이 해외의 팝을 커버한 것도 얼핏 보기에는 예뻤지만 정작 깊이는 없었고, 보이그룹 보컬들이 부른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향과 함께 재앙이라 할 만 했고, 양희은과 신승훈의 특별무대도...

 

그나마 가장 돋보이는 것이 씨스타의 효린과 아이유였다. 신승훈의 I Believe를 완벽히 자기식으로 소화해 부르는데 새삼 놀랐다. 신승훈이 굳이 자기 노래임에도 중간에 끼어들어 노래하지 않은 것은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아이유의 무대를 존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노래는 신승훈조차 한 발 양보할 가치가 있었다. 정말 앞으로가 기대된달까. 아직 나는 아이유에 대해 배가 고프다.

 

효린도 나름 자기 스타일의 노래였던 것 같고. 원래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듯 싶고, 목소리도 그에 최적화되었다. 다만 솔로였다면 어땠을까. 씨스타라는 팀 자체의 밸런스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래도 무난.

 

문제는 양희은과 신승훈, 이 두 대선배의 노래를 커버하겠다고 나온 다른 아이돌들. 양희은의 노래는 단지 잘 불러서 될 노래들이 아니다. 담백하면서도 그 맛을 살려 부르자면 탄탄한 기본기와 더불어 음악과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진지해야 한다. 그런데 진지했는가. 신승훈 역시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가장 독특한 창법을 구사하는 그의 음악을 커버하자면 그만한 이해가 있어야겠지. 기본기는 당연. 아이유와 여타 무대와의 차이가 그것을 보여준다. 역시나 특별무대라고 직전에야 급히 만든 무대라는 티가 난달까. 양희은과 함께 노래를 부른 슈프림팀도 솔직히 실망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들 무대에 대해서만큼은 훌륭히 소화하고 있었으니. 씨스타의 무대도 좋았고, 애프터스쿨의 기럭지와 퍼포먼스는 여전히 멋지고, 시크릿 역시 이제까지 보지 못한 특별함이 있었고, 포미닛도 자신들의 보여주지 못한 매력들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역시나 엉성한 부분들이 조금씩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자기 무대니까. 그것은 또 플러스. 어제의 SBS가요대전의 그 쫓기는 듯한 무대에 비하면 훨씬 풍성하고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난입한 DJ DOC. 마치 가요무대인 양, 열린음악회인 양, 아니면 전국노래자랑인 양, 단지 아이돌 장기자랑으로 끝날 뻔한 무대를 DJ DOC가 비로소 연말의 특별무대에 어울리는 축제마당으로 바꾸고 있었다. "나 이런 사람이야"에서 "런 투 유", 그리고 "DOC와 춤을" 무엇보다 무대를 즐길 줄 아는 DJ DOC의 무대매너가 중심을 잡아주며 비로소 아이돌 장기자랑이 아닌 한 판의 신명난 놀이판이 되고 있었다.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졸려서 자려고 하고 있었는데.

 

음향은 정말 재앙 수준이었고. 도대체 이런 음향에서 노래를 하라는 것일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는데 하다못해 육성조차 들리지 않는다. 마치 영화의 특수효과처럼. 뭐라도 대단한 이벤트나 퍼포먼스가 있을 줄 알았다. 그냥 음향사고. 차라리 어제의 SBS는 이렇게까지 어처구니 없지는 않았다. SBS가 단지 사고였다면 이건 재해. 역시 우리나라 가수들 실력 좋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 이런 음향에서도 꿋꿋이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한다.

 

차라리 앞으로는 이런 특별무대는 몇몇 진짜 주제를 가지고 제대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여서 준비해서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 단지 무대를 위해 급조한 노래와 춤이 아니라 평소에 그들이 진정으로 즐기던 노래와 춤들로. 아직도 의문에 남는 건, 도대체 그 노래들을 좋아서, 진정 부르고 따라 추던 춤이라서 무대에 올린 것이었을까.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던 것이었다면 급조한 무대라고 저리 허술하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나았던 점은 어제 SBS에서 쓸데없이 머릿수만 많이 출연하느라 정신사나웠던 것과는 달리 나름대로 출연팀을 제한함으로써 알찬 무대를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엄격하게 보자니 부족한 거지 준비기간까지 포함하면 잘 만들었다. 요즘 스케줄이 바쁜 소녀시대와 카라는 덕분에 노래 하나가 거의 끝. 더 바쁜 건 역시 소녀시대였을가? 오프닝에 커버댄스도 없었으니. 앞으로는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이제 남은 것은 MBC하나. 사실 연말 특집프로그램이라 해봐야 결국 볼만한 건 음악프로그램 뿐이다. 노래와 춤, 그리고 신명나는 무대. 물론 노래에는 이야기가 있고, 춤에는 드라마가 있고, 신명이란 흥겨운 웃음을 터이고. 굳이 연기대상이며 연예대상 볼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허술해서야. MBC는 그동안도 이런 무대에서는 강점을 보여왔으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그럭저럭보다는 조금 높은 점수의. 어쨌거나 연말에 어울리는 좋은 무대였다 하겠다. 조금 더 투자하고,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고, 조금 더 성의를 갑고, 조금 더 노력하고 준비해서.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재미있었다. 즐거운 무대였다. 연말은 이런 즐거움으로 늦은 밤을 보낸다. 시간이 참 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