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음향사고나 재해가 없었다는 게 컸다. 기본 중의 기본인데 - 사실 MBC가요대제전도 그렇게 음향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왜 이리 고맙고 신기한 건지.
더구나 항상 음악중심을 보면서도 느꼈던 것 - MBC에서는 참 색에 대해 많이 배려하고 고민하는구나. 클럽 분위기로 꾸며진 무대에서 조명과 LED가 만들어가는 색감이 참 화사하면서도 넘치지 않게 화려하다. 마치 출연자 모두가 하나의 퍼즐조각이 되어 색색이 맞춰가는 느낌? 흑백TV시절을 지나온 입장에서 칼라란 이렇게 멋진 것이로구나. HD가 이렇게 고마운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일단 노는 분위기가 좋았고. 단지 SBS나 KBS에서와 같은 준비해 온 무대를 단지 보여준다는 차원을 넘어선 축제다운 흥겨움이 즐거웠다. 무대 자체도 클럽무대를 연상하도록 구성했고. 무대 바로 아래까지 다가와 밀칙하듯 열광하는 관객과 그 위를 노닐듯 누비며 춤과 노래를 들려주는 가수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 온 것과 그다지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단지 즐기기 위한 무대들. 차별화된 무대가 차별화된 즐거움으로 한 바탕 축제의 즐거움을 더한다.
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다. 역시 아이돌은 아이돌이라. 연륜의 차이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 나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란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 닦고 연마해야 하는 것들. 아이유와 루나가 자우림과 체리필터의 노래를 커버하는 것도 그랬고, 온유 역시 못하는 노래는 아니었는데도 역시 선배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는 데서 원곡을 부른 이들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새삼 깨닫게 했다.
하기는 요즘 아이돌이 노래 부르는 창법과 당시 원곡을 부르던 창법이 다르다. R&B부르다가 록을 부르려면 참 힘들다. 발라드에 어울리는 목소리와 창법이 있고 록에 어울리는 목소리와 창법이 있다. 록 가운데서도 하드록과 모던과 메탈이 또 다른 개성을 갖는다. 아이유도, 루나도, 온유도, 루나는 아직 잘 모르겠도 - F(x)자체를 모른다. - 아이유나 온유나 노래실력으로 기대하고 있는 아이돌이기도 하다. 아직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겠지. 윤하는 드디어 물이 올라 노래를 알아가는 느낌이다. 내가 윤하의 노래를 들으며 감탄하기도 처음인 듯. 항상 무언가 모자른 느낌이더만. 시간이 필요하다. 노래 역시 술처럼. 오랜 와인이 깊은 맛을 내듯.
그리고 하나 또 마음에 들었던 것이 단순히 나열하는 식의 구성이 아니었다는 것. 아마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그랬겠지만, 단순한 리믹스와 커버 무대에서, 가요대제전만을 위한 특별무대, 그리고 자신들만의 무대까지. 강약중강약. 단순한 커버와 리믹스에 질려할 때 쯤 구하라와 이기광 윤두준이 나와 춤을 추고, 빅토리아와 닉쿤이 멋진 댄스를 보여주고, 걸그룹들이 모여 장기자랑처럼 가볍게 춤과 노래를 커버하고, 그리고 이어진 자기무대들. 포미닛의 무대는 특히 그 가운데 백미였다. 이제 성인이 되어 버린 현아를 따라 보여지는 무대는 마치 시청자를 향한 도발인 듯 보였다. 이래도 나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겠는가. 유혹이며 매혹이었고 또한 두려움이었다. 배경의 붉은 불꽃의 이미지가 불의 여왕인 듯, 화염의 요정인 듯 뜨거운 격정을 보였다. 단연 최고. 이런 게 연말특집프로그램의 매력이겠지.
당연히 나야 카라를 중심으로 보았고. 점핑과, 중간의 구하라의 특별무대와 마지막 루팡. 점핑의 의상을 입고 루팡의 무대를 보여줄 줄 알았다. 딱 루팡의 의상이었기에. 그러나 루팡의 의상은 점핑의 의상이었고,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멋진 점핑의 의상이 되었다. 루팡의 의상은 전혀 생뚱맞게도 색색의 야광으로 칠해진 비닐의상. 철지난 클럽분위기가 - 그러나 또 전체적인 무대의 분위기 때문에 제법 어울릴 뻔 했는데. 점핑은 몰라도 루팡을 그렇게 편곡해 보여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소녀시대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말할 사람이 많고. 보아는 과연 보아로구나. 사내자식을은 나도 모른다. 이 좋은 새해의 첫날 새벽부터 남자들에 대해 쓸 정도로 내가 타락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요즘 아이돌들에 비해 신체적인 조건이 유리하다 할 수 없는데도 그 디테일한 선이. 춤은 사실 큰 동작보다 바로 그런 디테일에 느낌이 있는 거다. 아주 약간 힘을 더 주고 덜 주는 것. 더 넘치고 더 모자른 것. 간만에 제대로 신경쓰며 무대를 보았는데 역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만 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칭찬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역시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연말특집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가요프로그램만 세 개다. 과연 간격 없이 연말에 몰려 있는 특집프로그램에서, 그것도 모든 무대에 서면서, 한 사람의 아티스트가, 하나의 팀이 과연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새로이 안무를 연습하려 해도 여러날이 걸릴 터다. 새로 노래를 하나 연습하려 해도 그 또한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터다. KBS가요대축제에서 들려주었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SBS가요대전에서 들려주었던 김건모의 "핑계"처럼. 오늘도 체리필터와 자우림의 노래들에서. 이적의 노래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커버하자면 그냥 악보를 따서 부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들만의 무대를. 그래서 차라리 장기자랑식으로 가볍게 보여주던 막간의 무대가 좋았다는 거다. 힘을 빼고 커버한다기보다는 그냥 즐긴다.
소녀시대처럼 전혀 새로운 무대를 보여주지 못한 팀들도 있고. 새로운 무대를 보여주는데 상당히 허술한 팀들도 있고. 그나마 카라는 매번 새로운 무대를 보여주면서 완성도가 일정수준은 되었다는 것이 만족하는 이유다. 상당히 스케줄도 바빴을 텐데. 하지만 그래서 KBS가요대축제에서 모두 함께 부르던 서태지의 노래를 가사를 외우지 못해 또 한 소리 듣고 있었다. 차라리 하나의 프로그램에 집중해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또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3사가 모여서 합동으로 연예대상과 연기대상과 가요대상을 시상하기로 하고, 각각 하나씩 맡아 집중해 보여주면 어떨까. 심사도 3사가 같이, 시상도 3사가 같이, 기획이며 구상도 3사가 모여서, 다만 각자 방송을 맡은 방송사에서 이후의 연출이나 구성을 책임져야겠지. 알차게. 아니면 매해 돌아가며 방송을 내보내도 좋을 것이다. 올해는 KBS가 연기대상을, 내년에는 SBS가, 내후년은 MBC가. 기본적으로 시상식은 KBS가, 음악프로그램은 MBC가 훨씬 퀄리티있게 만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쉬움이 많았던 것은 더 나은 무대도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만한 재능이 있는 아티스트들이고, 아이돌이더라도 그만한 무대는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이다. 더 많은, 더 뛰어난, 더 훌륭한, 그리고 선배들에 대한 예우차원에서도 더 의미있게 짜임새있게. 단지 출연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이 될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야 뒤로 미루더라도 오늘의 MBC가요대제전은 훌륭하지 않았는가. 사실 내용이야 작년 쪽이 더 알차고 의미있었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제작진 이하 출연한 모두의 공적이라 할 것이다. 물론 워낙에 KBS와 SBS가 망쳐놓은 것도 있고 하겠지만.
씨스타도 매력적이고, 티아라며, 애프터스쿨이며, 다비치... 강민경은 진짜 보컬그룹이라는 게 아까울 정도다. 아이유야 말할 것도 없고, 서인영, 나르샤, 손담비... 남자? 내가 사내놈들까지 신경써야 하나? 알딸딸하던 것도 이제 어느 정도 깬 듯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시작하는 멋진 프로그램 아니었는가. 100%는 아니지만 최소한 60%는. 무엇보다 보는 내내 즐거웠으니까. 새로움과 색다름과 완성도 있는 모습들이.
내년도 기대한다. 오늘과 같은 색감있는 무대와 영상을. 항상 MBC를 보며 감탄하는 바이지만. 모두에게 새해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즐거웠다. 새해벽두를 맞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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