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한국 아이돌이 일본에서 먹히는 이유...

까칠부 2011. 1. 11. 19:10

아이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동경. 다른 하나는 친근함. 길들여짐이다. 아이돌을 기른다는 말도 일본 아이돌에서 처음 나왔다. 데뷔 이전부터 팬이 생겨서 아이돌이 성장해감에 따라 팬도 같이 성장해간다. 스맙도 아라시도 그렇게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경우다. 다만 친근함이 강조되다 보니 외모며 노래며 춤이며 다 적당히 익스큐즈. 어렸을 적부터 그런 것까지 알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문제였다. 원래부터가 친근함을 강조하다 보니 프로다운 엄밀함이 부족했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는 있는데 그다지 동경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서 어느샌가 아이돌이란 - 특히 여자아이돌이란 특정한 성별의 특정한 계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덕후. 아이돌 오타쿠다.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이 때로 그다지 좋은 의미로 다가가지 않는. 그런데 거기에 카라와 소녀시대가 나타난 것이다.

 

일단 카라는 상당히 고전적인 스타일의 아이돌로서 일본인들에 친근감이 있다. 게키단 히토리도 말했지만 예전 일본도 그런 아이돌들이 있었다. 많았고 인기도 있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친근감이라는 게 과도하게 - 더구나 오타쿠 취향이 강해지면서 아이돌의 형태도 많이 바뀌게 된 것이었다. 아직 아이돌이란 일본에서도 보편적이던 존재일 때의 흔적이 카라에는 있다. 그리고 더불어 일본에서는 없었던 프로의 냄새가 있다. 잘 단련되고 잘 가꾸어지고 잘 훈련된 엄격함과 치밀함이.

 

오히려 일본의 일반적인 아이돌과는 달리 여성팬들로부터 먼저 반응이 있었다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그동안의 아이돌이란 여성 입장에서 그다지 존경심이 생기지 않는 만만한 존재였다. 친근하다는 것은 만만하다는 것과 통한다. 그와 반대로 카라나 아이돌이나 그다지 만만한 느낌이 없다. 카라야 현지화로 친근함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 사실 그것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지금의 카라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적인 아이돌 스타일에, 프로다운 엄밀함, 그러면서도 대중에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소녀시대는 그보다는 더 프로다운 느낌이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안무와 태연이라는 탁월한 메인보컬에게서 나오는 안정된 라이브, 표준적인 미모도 뛰어나고 스타일도 발군으로 세련되다. 여성 입장에서도 소녀시대는 한 번 닮아보고 싶은 대상일 수 있다. 다만 대신 소녀시대는 아이돌로서의 친근함에서는 약간의 손해를 보고 있다. 그렇다고 소녀시대가 카라와 같아지 수는 없을 테니까. 같이 죽자는 소리다.

 

말하자면 말 그대로 갈라파고스다. 16세기 프랑스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과 닮았다 할 수 있다. 자기들끼리 툭탁거리며 전쟁놀음을 하는 사이 유럽에서 열강들과 피터지는 전쟁을 치르며 단련된 프랑스군 앞에 이탈리아군은 그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시장만을 생각하다 보니 일본의 특정한 시장에만 안주한 결과가 지금의 일본의 아이돌의 열화를 가져왔고 그에 대한 반동이 한국 아이돌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래도 신인이고 이제 막 데뷔한 입장이니 톱클래스의 아이돌과 비교하기란 무리다. 톱클래스의 아티스트와도 무리다. 그러나 아티스트와 아이돌의 경계에서 양쪽을 아우르는 두 그룹의 상승세는 일본에서도 바짝 긴장하고 주목할 수밖에 없는 부분일 것이다. 신인이란 앞으로도 인지도를 더 높이고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다는 뜻이니.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아이돌이란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스타란 우러르는 것이지 만만하게 마주하거나 내려다 보는 대상은 아니다. 보다 보편적인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그만한 동경할만한 부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일본 쇼비즈니스는 그것을 잊었고, 한국의 쇼비즈니스는 워낙에 아이돌을 뭣으로 여기는 덕분에 여기까지 성장했다.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문득 든 생각이다.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