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리얼버라이어티와 시답잖음 - 관계에 대해서...

까칠부 2011. 1. 11. 07:52

남자의 자격 "카메라편"에서 김국진은 김태원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이런 말을 한다.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별다른 재미있는 얘기가 없어도 막 그냥 웃게 된다, 그지?"

 

어느 순간부터 느껴오던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란 무엇인가?

 

아마 각자 자기만의 답이 있을 것이다. 열심히 자기를 내던져 망가지는 것이다. 특히 "열심히"에 방점을 찍는 사람들은 과거의 무한도전을 떠올리기 때문이 아닐까. 확실히 무한도전은 열심히 도전하는 프로그램이었지.

 

하지만 지난주 내가 무한도전을 보면서 바닥을 굴렀던 것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무언가 거창한 미션에 도전하고, 남다른 열성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서가 아니었다. 별다른 특별한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단하지도 않았다. 단지 열심히 사고 쓰고 먹고 그리고 계산하는 것이 전부였다. 정준하에게 계산하게 하기. 그러나 그것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웃었는가. 무한도전을 보면서 그렇게 웃어보기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고 보면 작년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미션인 "죄와 길"도 "세븐 특집"도 그다지 대단한 게 있어서 웃겼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길과 유재석의 재판정에서의 신경전이. 그 과정에서 오가는 무한도전 안에서 생산되는 이야기가 웃겼던 것이었다. 과연 "세븐 특집"에서도 무한도전의 그동안의 캐릭터와 관계를 몰랐다면 그 장면장면들이 그렇게까지 웃기고 했을까?

 

때로 보면 이게 뭐 웃긴가 싶은 게 있다. 이게 그렇게 재미있어 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같이 따라 웃는다. 그동안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길들여진 때문이다. 각자의 캐릭터에 대한 기대가 있고, 관계에 대한 기대가 있고, 어떻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멤버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있다.

 

김희철도 "뒤끝공제"에 나와 말했었다.

 

"재미있든 없든 반드시 봐줘야 한다는 게 있다."

 

의무감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의리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 그것은 "어린왕자"에 나오는 "길들여짐"이다. 무한도전에 길들여진 것이다. 그리고 길들여졌을 때 무한도전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수용으로 이루어진다. 한 마디로 웃게 된다는 뜻이다.

 

남자의 자격도 그렇다. 도대체 가만히 툇마루에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뭐가 그리 웃긴가? "아내가 사라졌다" 편에서도 이경규와 김국진 김태원이 그저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으로 분량을 채운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크게 웃었다. 재미있다. 왜? 남자의 자격이기 때문에.

 

어린 조카가 있다. 조카가 나에게 "삼촌"이라 부른다. 과연 그것이 웃겨서 웃을까? "삼촌"이라는 말이 얼마나 대단한 의외성이나 재치가 있어서 나는 웃고 있는 것일까? 역시나 길들여짐이다. 조카라는 자체로 이미 나는 그 아이에게 길들여졌고 그래서 단지 그 아이라는 하나만으로 나는 웃게 되는 것이다.

 

내가 리얼버라이어티에서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것도 그래서다. 관계란 출연자 서로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시청자와의 관계이기도 하다. 청춘불패에서 주연이 김신영에게 민폐캐릭터로 다가갈 때 당연히 시청자도 주연에게서 민폐캐릭터를 기대한다. 김신영이 주연과 아옹다옹할 때 시청자 역시 그와 하나가 되어 서로 아옹다옹한다. 주연이 되기도 하고 김신영이 되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쌓이며 기대가 만들어지고, 기대가 쌓여지며 서로간에 관계가 만들어진다. 길들여지는 것이다. 단지 주연과 김신영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지게 되는. 물론 청춘불패는 거기까지 가는데 실패했었다.

 

"영웅호걸"에서도 어쩐지 노홍철과 홍수아가 모이면 뭐라도 음모를 꾸밀 것 같다. 노홍철과 유인나가 모여도 무언가 사기를 치지는 않을까. 아이유와 지연이 함께 있으면 또래끼리의 정겨운 디스와 어우러짐이 있을 것이다. 노사연 잡는 홍수아나 홍수아 잡는 노사연이나. 언니이지만 후배인 박가희와 동생이지만 언니인 모태다혈 서인영. 이휘재의 찌질함은 모두의 공격대상인 동시에 시청자의 공격대상이 되고.

 

1박 2일은 어떨까. 그냥 보면 된다. 그냥 재미있으면 재미있는대로, 재미없으면 재미없는대로, 내가 그런다. 김종민이야 웃기든 말든. 김종민이야 뭐라 말하든 말든. 그러나 팬 된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다. 기대가 있기에 실망이 있고, 신뢰가 있기에 배신감이 있다. 그냥 잠깐 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분노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증오를 내비치지도 않는다. 그들 자신이 이미 프로그램의 한 부분인 것이다. 이제 남은 다섯 멤버에 스태프와 더해 시청자 자신이 한 멤버가 되어 그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시청자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1박 2일은 오늘도 버라이어티 정신을 외칠 수 있는 것이고.

 

과연 그런 길들여짐이 사라졌을 때 리얼버라이어티란 어떤 형태일까? 그냥 뜨거운 형제들 보면 된다. 천하무적야구단이 초반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렇게 주저앉아버렸는가? 기존의 멤버가 나가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시청자와의 유대가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오빠밴드 역시 기대가 높았지만 제작진의 성급함이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신해 버렸다. 뜨거운 형제들은 어떨까? 과연 뜨거운 형제들은 시청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물론 이미 뜨거운 형제들과의 관계가 있기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 것이겠지만 그에 실패한 사람들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오고 말았다.

 

단지 나는 이런 캐릭터다. 이렇게 플레이하고 이렇게 웃길 것이다. 그런 건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란 관계의 누적이다. 관계란 시간의 누적이다. 그래서 가끔 잘 보지 않던 리얼버라이어티를 보자면 진입장벽을 느낄 때가 있다. 그들만이 아는 웃음코드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관계에서 나오는 특별함이 더욱 시청자로 하여금 프로그램에 밀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간을 들일수록. 시간이 쌓일수록. 그러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시청자는 프로그램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그동안 키워놓은 캐릭터가 아까워서라도 접지 못하고 계속하는 MMORPG와도 같다.

 

그렇게 관계가 완성되고 나면 남는 것은 그저 시답잖은 농담 뿐이다. 농담도 아니다. 그냥 가만히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더라. 웃음은 나지 않는데 보고만 있어도 즐거우니 웃음이 나더라. 괜하게 웃길 필요도 없고, 괜하게 무리할 필요도 없고, 평소 보이는 모습 그대로만 보이는 것만으로도. 마치 가족처럼 프로그램 밖에서도 프로그램 안에서의 형성된 관계가 이어진다. 국민할매는 국민할매로, 노찌롱은 노찌롱으로, 박명수는 박명수로. 남들은 질리네 뭐네 해도 그게 좋은 것을. 이미 그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체로써 시청자들에 다가온다.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아는 - 나와 "관계"를 맺은 누군가다.

 

방송인데 그렇다고 어떻게 고정시청자들만을 대상으로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이전에 이미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란 지금까지의 방식에 동의하고 있는 시청자인 것이다. 말 한 마디 없이도, 하는 것 없이도, 그저 뒹굴뒹굴거리는 것만으로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에도 깔깔거리며 웃으며. 그런 시청자들이 결국 시청율에서도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당장 청춘불패만 해도 바로 그래서 그 시청율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리 열혈시청자들로부터도 욕을 먹으면서도 금요일 심야시간대에 10%남짓의 시청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결국은 길들여짐이다. 중독이다.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어느샌가 그 시간이 되면 당연히 보고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모든 프로그램이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코드가 맞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그렇다. 그래서 더 찾아보고 욕도 하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가끔은 당장의 시청율에 급급해 안에서 쌓아나가기보다는 벌써부터 소모하기부터 하려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래서 안쓰럽다. 안에서 쌓아나가며 밖에서 시청자와 연결해가야 할 텐데 당장의 관심을 끌고자 다 불살라 버리고.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이, 더 이상 신뢰할 것도 없이.

 

웃기지 않고도 웃길 수 있음을 안다. 모두가 아는 바다. 왜 리얼버라이어티가 지금 대세인가. 그만큼 외롭다는 것이고 메말라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고독하고 메말라 있다. 위로받고 싶어도 현실에서의 자기 캐릭터와 관계는 그것을 억누르게 한다. 온라인에서의 가상커뮤니티가 발달하는 것도 가상의 공간에서는 또한 얼마든지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 의식이 만들어가는 거짓말은 무의식의 진실이기도 하다.

 

리얼버라이어티가 말하는 리얼리티 역시 바로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개연성이란 현실과 현실을 잇는 것이지만, 동시에 현실과 허구도 잇는 것이다. TV너머에 존재하는 허구와 TV이쪽에 있는 현실. 그 경계에서. 그 경계를 이루는 것이 곧 리얼리티이며 그래서 리얼버라이어티인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프로그램 외적인 모습들까지 곧잘 끌어들이며 적극 활용하는 것도 그래서다.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바깥까지 발을 걸치고, 그것은 시청자가 방송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프로그램과 만나도록 한다. 그것이 관계고 길들여짐이다. 리얼리티이고 리얼버라이어티인 것이고.

 

리얼버라이어티의 성패여부.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단지 그 자체로써 만족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의 - 한 사람이 아닌 특정한 다수의 멤버들이다. 프로그램과 서로간의 관계를 맺고 공유하는 프로그램 밖의 멤버들. 그것이야 말로 리얼리티의 완성일 테니까.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얼마나 열심히 망가지는가? 얼마나 열심히 제대로 미션을 수행하는가? 그보다는 얼마나 시청자와 관계를 만들어가는가? 다만 그 과정에서 시청자와 호흡을 맞출 필요는 있겠지. 길들여짐이란 바로 그 걸음을 맞춰가는 것일 테니까. 내가 생각하는 리얼버라이어티일 것이다. 시답잖음.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로 웃고, 별 것 아닌 것으로도 즐겁고, 내가 프로그램 안에 있는 것인가, 프로그램이 내 안에 있는 것인가, 허구는 현실이 되고 현힐은 허구가 된다. 그 경계를 허물 때. 그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도 가능한 관계다. 하찮고 같잖고 우습고 시시껄렁하고 시답잖은. 대단치 않은.

 

내가 사랑하는 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바로 내가 내린 답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