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화씨 봬니까 지금 싹 다 보입니다. 뒤쪽에 쫙 앉아 계신 분들 모두 재연배우시죠?"
순간 머리를 쾅 하고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3년 전만 해도 일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때 그대들이 나오는 방송을 팬으로서 보았다. 그래서 3년 전에 집에서만 있을 때 굉장히 위로가 되었었다. 재미있어하고 큰 방송보다 더 그 방송을 자주 보았다. 그런 쪽으로 내게 힘이 되어 주셨던 분들이다. 내가 저분들을 기억하는 이유다."
내가 김태원이 나오는 예능은 항상 챙겨보는 이유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 아저씨 무척 사랑한다.
누가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재연배우란 그렇다. 나도 그런 프로그램 적잖이 보았지만 지금 와서 기억해 보라면 과연 기억해낼 수 있을까. 누구도 재연배우를 눈여겨 보지 않는다. 그저 스쳐지나듯 그 재연되는 상황에 집중해서 보지 재연배우까지 신경써가며 기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물론 외로웠을 것이다. 3년 전이면 벌써 기러기 아빠일 때다. 부활은 침체기로 소속사와 계약마저 만료되어 떠돌던 시기. 새로운 음반에 대한 기약도, 공연에 대한 계획도, 당시 부활의 공연을 본 사람들이라면 그때의 김태원의 연주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렇게까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설마했다. 설마 다 알아봤을까? 우연이 아니었음은 그때 대답했던 함께 나온 재연배우들의 대답이 증명해줄테지. 이 사람은 얼마나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인가. 아마 재연배우이기에 더욱 그들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연기를 진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안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의미를.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누군가에게 내가 의미있었다고 하는 뿌듯함을. 재미있었다고 했다.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기억해 주었다. 어쩌면 그다지 대단하게 기억되어지는 직업이 아니었기에 더 큰 의미가 아니었을까.
과연 그렇다고 감동까지 느꼈는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입장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내가 한 일의 가치를 알아주고, 더구나 자식 앞에서 그것을 이야기해주었을 때. 아마 그 마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할 것이다. 나는 별 것 아니었는데 그것이 그리 좋았다. 하다못해 블로그에 글 좋다는 댓글만 달려도 그리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하기는 음악인이나 연기자나 작가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자기만의 명작을 누군가 언급해 주었을 때 그리 좋아하곤 한다. 같은 심정 아니었을까.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그저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다. 수많은 늦둥이 예능인들이 있었다. 뒤늦게 예능에 뛰어들어 화제를 불러모으다 어느샌가 나타날 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예능인들이 그렇게 많았다. 하지만 김태원이 여전히 소비될 수 있는 것. 오히려 음악인으로서의 아우라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 아닐까.
허철화씨의 딸들에 들려주는 이야기도,
"왕이든 노숙자든 아빠는 그 순간이 (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가장 행복한 것이다."
"국민할매든 록커든 둘다 아빠라는 사실을 내 딸도 이제는 인정한다."
사실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화성인 바이러스 공중파 버전도 아니고. 아예 대놓고 이상한 사람이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가끔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또 짜증스러운 경우가 많아서. 뭐라 하지는 못하겠는데 지켜보기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오로지 게스트 보고 가끔 챙겨보는데 이런 대박이 있을 줄이야.
딸들에 보여주고 싶어서 원래의 직업을 가지고 재연배우를 겸하는 아버지도 멋있고, 그리고 김태원의 말 덕분에 재연배우라는 자체에 대해 생각을 달리해 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남을 기억해 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기억한다는 것. 시간이 흐르면 남는 것은 기억 뿐이다. 나를 증명하는 것도 기억 뿐이다.
어제 여러 프로그램을 보았지만 결국 저 한 마디가 남았다. 그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 깊이 있는 한 마디가. 부활의 가사는 그래서 그리 아름다운 모양이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진심으로.
단, 안녕하세요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MC가 너무 많다. MC끼리 나누는 대화도 너무 많다. "밤이면 밤마다"도 MC가 많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게스트의 말은 들어준다. 그런데 여기는 신동엽이나 이영자나 컬투나 워낙 말에 대한 욕심이 많다 보니. 가끔 보면 게스트가 뭐라 할 여지조차 없이 자기들끼리 떠들고 종결지어 버린다. 도대체 이건 뭘 보라는 건가?
토크버라이어티란 게스트를 보자는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는 고정멤버들을 보자는 것이지만 스튜디오버라이어티는 게스트가 주인공이다. 게스트 불러놓고 자기들끼리 노닥거린다. 게스트 보자고 보다가 오히려 화가 나서 다시는 보기 싫어질 수 있는 포맷이다. 내가 그러고 있었다.
MC를 줄이던가, 아니면 MC들의 말을 줄이던가, 이대로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게스트에 맞춰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센스도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해결에 있어서도 게스트의 분량을 조금 더 챙겨주고. 라디오에서도 그러고 있을 텐데?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가장 기대가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그다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프로그램이고. 차라리 "밤이면 밤마다"가 나을까? 유이의 리액션은 상당히 귀엽거든. 말은 없지만 뒤에서 일일이 리액션을 취하게 되는데, 미모야 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밤이면 밤마다"에 대해 쓰는 것도 우습지만.
다시 볼까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MC가 너무 많다. 말도 너무 많다. 게스트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다. 게스트를 느낄 수 없다. 반성할 부분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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