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PD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듯하다. 청춘불패가 갔던 길을 답습하고 있달까? 착한 예능으로 조금 칭찬을 듣고 났더니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듯. 더구나 이건 청춘불패가 아니다.
물론 일요일 저녁은 가족시간대다. 중장년 이상의 어른도 많이 보고, 1박 2일과 경쟁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훈훈한 감동코드로 가는 것도 그래서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단, 이 프로그램이 영웅호걸만 아니었다면.
과연 누가 이 프로그램을 보겠는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서도 이름조차 못 알아듣는 어르신들일까? 그런 어르신들의 모습을 소비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와 비슷한 나이대들이다. 당연히 그 분들은 영웅호걸의 멤버들에 별 관심이 없다. 오늘도 나왔던 노사연에게나 관심이 있을까.
타겟을 잘못 잡고 있다. 누가 영웅호걸을 보겠는가. 아이유, 지연, 니콜. 서인영, 박가희, 나르샤도 연령대가 상당히 어리거나 젊다. 홍수아, 유인나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휘재는 그동안 MC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얼굴을 알린 덕에 어르신들이 좋아하겠다. 하지만 출연하는 드라마도 어르신들 취향이 아니고, 노래는 더욱 어르신들과 거리가 멀다. 아마 직접 노래를 불러도 그다지 취향은 아니지 않을까. 그러면 누가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무엇을 기대하며 보겠는가. 출연자들 자신부터가 전혀 생경한 어른들의 반응에 본래의 매력과 개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물론 토끼복장을 한 아이유는 귀엽다.
"가수지만 오늘은 토끼예요."
지쳐 쓰러진 모습마저도. 형광등 사러 심부름을 갔다가 문득 음식점 너머로 음식을 만들고 또 먹는 모습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니콜의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웠는가. 이진과 홍수아, 정가은이 만드는 시답잖은 장면들도 보기에 유쾌하기만 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3인승 자전거를 처음 타면서 박가희와 서인영이 보인 신경전 역시 - 여기에서 초반 누가 선배네 누가 언니네 가지고 신경전 벌이던 모습이 더해졌다면 한결 더 재미있어졌을텐데. 그래도 자기 이름 알리겠다면 어르신들 앞에서 "리듬속으로" 춤을 춰 보이고 "이년"소리를 듣던 서인영은 답지 않게 정겹다. 즐거웠다.
바로 그런 모습들이다. 바로 그런 모습들을 나는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영웅호걸의 주시청자들은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영웅호걸을 보는 사람들일 것이다. 화면속의 저 분들이 과연 그런 사람들에 포함될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저 분들에 대해 기꺼워라 반가워라 할까.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포장해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다지 가공되지 않은 흔히 평일 저젹시간대에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영웅호걸을 주로 보는 시청자들이 좋아할까. 아니면 오늘 나온 저 분들이 오늘의 분량을 좋아라 할까.
궁극적으로 영웅호걸이 타겟으로 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출연자 자신을 소비하는 대중들이다. 바로 이전까지 영웅호걸이 보여주던 그것. 시작하면 멤버들은 다양한 코스튬으로 새로운 매력은 선보이며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고, 왁자하게 떠드는 가운데 또래의 여성들이 모인 산뜻함과 발랄함이 있었다. 천연스런 유인나와 사기꾼 홍수아와 먹보 지연과 모태다혈 서인영, 서인영과 박가희와의 갈등관계라든가, 홍수아와 노사연의 톰과 제리, 박가희와 이진의 동갑내기, 또다른 막내 동갑내기 지연과 아이유. 주제에 눌리지 않고, 주위에 주눅들지 않으며 그렇게 그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감동도 좋지만 그보다는 그런 또래의 여성들이 보여줄 수 있는 판타지를 즐기기 위해서.
물론 시청율이 답보상태다. 아무래도 1박 2일과 맞상대하는 건 현재로서는 무척 버겁다. 변화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그나마 반응이 좋았던 인기투표나 굴러요퀴즈 같은 영웅호걸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들을 포기한 것은 아쉽다. 더구나 그것을 대신해 보이는 것이 이같은 감동코드라면. 굳이 이럴 것이면 아이돌은 왜 섭외한 것일까. 시간대도 치열한 일요일 저녁시간대에.
독하다 독하다 하지만 그 회의 과제를 마치고 인기투표를 해서 결과가 정해지고 벌칙이 주어지는 것은 프로그램을 보는 한 재미였다. 마지막에 자기가 몇 위가 되었는가에 따라 돌아가는 수단이 달라지니. 성공한 자의 희열과 실패한 자의 실망. 그리고 배신과 반전. 서로 한 데 뒹굴며 퀴즈를 풀던 굴러요 퀴즈는 어땠을까. 매회 인기투표를 해서 팀을 바꾸는 것도 그때그때 변화를 주어 흥미를 유발시켰다. 시작에서의 인기순위와 끝났을 때의 인기순위는 출연자 자신을 위해서나 시청자를 위해서나 훌륭한 보상이었다. 그런 가운데 영웅호걸만의 개성과 강점이 만들어지고 잇었던 것이었다. 시청율이 낮다고 그런 장점들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강점 안에서 발전시키기보다 이런 안전하고 무난한 길을 선택하고 마는가.
감동도 한두번이다. 한두번은 감동이지만 너어가면 그 순간부터는 지루함이고 짜증이다. 착한예능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일밤이 어떻게 몰락했는가를 보지 않았는가. 김영희표 착한예능은 단지 일밤에 잠깐의 희망고문만을 가했을 뿐이었다. 과연 그때 일밤을 살린다며 시작한 착한 예능 가운데 살아남은 것이 뭐가 있던가. 남자의 자격이 착한 예능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출연자의 나이또래에 어울리는 주제를 정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영웅호걸과 공감할 수 있는 시청자층이란 누구이며 그들이 바라는 감동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 보는 바로 거기에 있던가?
신년특집이기를 바란다. 다음부터는 아니라고. 철저히 예능으로써 승부하겠노라고. 영웅호걸들에 맞는 밝고 상쾌한 분위기로. 영웅호걸을 즐겨 보는 그들이 바라는 그런 유쾌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써. 무엇보다 오프닝의 코스튬은 부활시켰으면 좋겠다. 보는 즐거움이 줄어드니 프로그램의 재미도 덜한 느낌이다. 더불어 인기투표를 통해 팀을 정하는 것도 긴장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다시 부활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팀이 고정되면 또한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지난주 느꼈던 불안감이 이렇게 표면화되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그러나 레스토랑편 이후 어쩐지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 버린 느낌이라. 청춘불패가 어떻게 화제를 모았고 어떻게 그것이 독이 되어 작용했는가. 그나마 금요일 심야시간대와 일요일 저녁시간대의 차이에 대해서도. 과연 지금의 방식이 영웅호걸에 맞는가.
영웅호걸이라면 영웅호걸다워야 할 텐데, 그러나 지금의 영웅호걸의 모습은 - 최근 몇 주간의 모습들은 영웅호걸이라기보다는 단지 영웅호걸 멤버들이 나오는 흔한 버라이어티의 그것이다. 지금의 영웅호걸 멤버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영웅호걸만의 그것이 아니라 그냥 예능에 영웅호걸 멤버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감동코드 찍고. 어느샌가 영웅호걸만의 캐릭터며 관계는 그 속에 녹아 버렸다.
분명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웃음도 있었다. 적잖이 찡하게 감동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가. 나는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불현듯 알고 지내던 여자가 전혀 다른 여자였다고 하는 위화감이랄까. 불안했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순수하게 재미를 즐기지 못한 이유였다.
과연 처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의도가 무엇이었던가. 지금의 멤버를 섭외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답이 있을 테지만. 벌써부터 길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으면. 안쓰럽기까지 했다. 과연 영웅호걸이란 어떤 프로그램인가.
다시 말하지만 이건 분명 특집일 것이다. 신년이라 신년의 분위기에 맞게 훈훈하게 한 번 가 본 것 뿐이다. 그리 믿으련다. 단지 지난 몇 주는 우연이었다고. 길을 잃고 사라진 프로그램 가운데 이름을 올리지 않기를 바라므로. 나는 계속해서 영웅호걸을 보고 싶다. 즐겁게. 욕하려 보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재미있어서.
부디 이것이 영웅호걸의 변질이 아니기를. 벌써부터 예전을 그리워하는 경우는 없기를 바란다. 나아져야지 못해져서는 되겠는가. 기대를 아주 버리지는 않았다. 잠시 뿐이다. 다음주를. 다음다음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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