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승승장구 - 이경규가 예능시청율 보증수표인 이유...

까칠부 2011. 1. 12. 18:12

이번에도 승승장구 시청율이 올랐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승승장구를 생각해 본다면. 아니 이 정도라도 화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게 어디인가.

 

뭐냐면 역시 이경규란 개그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MC다. 이경규가 자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 당시 이문세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서였다. 그리고 주병진과 함께 토크쇼화된 "일요일일요일밤에"를 이끌면서 "토크쇼의 시어머니라"는 별명까지 얻었었다. 연기를 전공해서 상황에 따른 리액션이 좋은데다 워낙 말 하나로 웃기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보니 언제 어떤 대사를 칠까 타이밍과 선택에 능하다.

 

한 마디로 난타전에 능하다. 합이 빠르고 반응이 민첩하다. 상대에 맞게 분위기에 맞게 던지고 받고 치는 것이 매우 능수능란하다. 이경규의 MC를 보더라도 상황을 정리하고 그런 것보다는 먼저 두드리고 뽑아내는 스타일이 강하다. 스스로 욱사마의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해서 먼저 건드리고 두드리고 반응을 보이면 그것을 리액션으로 살려낸다. 즉 진행한다기보다는 MC라는 지위를 이용해 말로써 출연자들과 치고받고 함으로써 분량을 뽑아내며, 진행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철저히 개그맨으로서 개그를 한다.

 

예능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프로그램을 제대로 살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아마 이경규가 아니더라도 다른 일류급MC들도 게스트로 나와서는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차이라면 일류급MC 가운데 이경규만큼 자주 게스트로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그다지 없다는 것이겠지. 더구나 이경규는 MC들 가운데서도 마음편히 건드릴 수 있는 약점이 많다.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이경규라는 거물을 흔들고 놀리고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약점들은 또 이경규 자신도 만들어낸다. 기왕에 이경규급이 예능에 나왔다면 자화자찬을 듣기보다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어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겠지.

 

아무튼 그래서다. 일단 이야기거리가 많다. 개그맨이라 입담이 좋아 웃길 줄 안다. 하지만 입담 좋은 다른 개그맨들과의 차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줄 안다. 즉 그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어 그 안에서 MC와 출연자들과 난타전을 벌이며 프로그램을 띄울 줄 안다. 이경규가 게스트로 출연하고 나면 시청율이 상승하는 것도 그래서다. 승승장구만 하더라도 정말 오랜만에 예능프로그램답게 활기가 돌았으니. 자기 자신마저도 먹잇감으로 내놓으며 난전을 유도하니 어지간히 가라앉았던 프로그램도 그 순간에는 살게 된다.

 

게스트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MC를 존중하면서도 프로그램을 자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기 페이스 안에서 MC나 고정패널, 혹은 게스트들과 적절히 치고받으면서 자기가 상황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면서도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틀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센스. 그것은 그만큼 예능을 오래 했고 각MC들의 성향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내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어제의 승승장구라 보면 된다. 한 순간에 MC들의 성향과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으니.

 

김승우가 적당히만 했으면, 나머지 MC들이 어지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어제도 이경규는 게스트로 남아 있었겠지. 다른 예능에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제 역할을 못함으로써 이경규는 스스로 승승장구라는 프로그램 자체를 삼켜버렸다. 때때로 이기광도 건드리고, 때때로 김성수도 건드리고, 승승장구라는 프로그램 자체를 건드리고, 이 프로그램의 문제가 무엇인가, 앞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나마 이경규와 같이 치고받고 할 수 있는 것은 이수근 하나였달까? 이경규가 이기광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아무 생각없이 던지고 역시 생각없이 받기 때문이다. 역시 난타전이 가능하다. 분량을 뽑을 수 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 그 이상까지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가능성은 보인다. 그러나 김성수는...

 

일단 말을 잘하니 재미있고, 건드려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그게 또 기대가 되고, 더구나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파악해 그것을 살리는 능력이 있다. MC들을 알고 게스트를 알고 그들을 살리는 방법을 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이경규가 강조하는 페이소스. 이경규의 그동안의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다. 웃기는 가운데 단순히 그저 웃고만 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웃음과 감탄과 감동을 적절히 프로그램 안에서 조율한다. 그냥 한 마디로 이경규라는 한 개인에 놀아난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김제동도 일단 나오면 기본적인 재미를 보장한다. 김제동 역시 MC로서 MC들과 게스트들과 치고받는데 상당히 능하다. 그에 비하면 탁재훈은 아직까지도 솔로이스트의 느낌이 강하고. 혼자 치는 건 잘하는데 함께 치고받고 할 때는 그 호흡이 흐트러지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역시 탁재훈 또한 게스트로서 보장된 게스트이기는 하다. 김구라도 역시. 이휘재나 유재석, 강호동은 잘 게스트로 나오지 않으니. 말만 잘하는 게스트와는 다른 MC들만의 차별화된 능력일 것이다. MC이다 보니 일단 입담이 되고. 차이라면 이경규는 개그맨이고 벌써 60년생이라는 것이겠지. 페이소스와 적절한 연기,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이경규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피식피식 웃음부터 흘리게 되는 이경규라는 이름.

 

리얼버라이어티에서 그동안 약점을 보였던 것도 그래서였다. 너무 프로그램을 장악하려 든다. 이경규라고 하는 존재감이 너무 강하다 보니 집단MC시스템의 리얼버라이어티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흐트리는 존재일 수 있다. 남자의 자격 초반에도 이경규라고 하는 존재는 너무 강해서 불안감까지 주고 있었다. 어쩌면 남자의 자격을 통해 힘을 빼고 한 발 물러서는 법을 안 것이 이경규가 지금 그 나이에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넌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항상 이경규가 출연하는 예능을 보고 있으면 웃는 가운데 또 한 편으로 늘 감탄하고 있다는 것. 놀라고 감동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는 깨닫고 얻어가고. 어른이라는 느낌? 짓궂지만 말 잘하고 재미있는 어딘가 경험 많은 어른의 이야기를 듣는듯한 즐거움이 있다.

 

승승장구가 이경규의 지적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김성수가 얼굴을 굳히기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승승장구를 살리려 수발을 들 수 있다면. 9.9%라는 애매한 시청율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이경규임에도 9.9%다. 누구의 탓일까.

 

역시 보아도 재미있었고, 기대하고 보아도 항상 기대치를 웃돌고, 그리고 이경규가 항상 말하는 페이소스가 있어 여운이 있고. 이래서 이경규가 나오는 예능은 항상 챙겨본다. 재미있다. 그 자체가 명품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