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내 성향이야 대충은 알 테고.
하지만 이상하지? 화가 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냉정하고 이성적인 타입이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나처럼 기분에 휘둘리고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보고 있으니 그냥 웃음만 난다.
그렇지 않은가? 몇몇 찌질이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일본 드라마 재미있게 본다면 쪽바리라 달려들어 욕하는 인간들. 일본 음악 좋다고 하면 또 달려들어서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인간들.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혐한류 만화에 대해 일본인과 일본의 사회와 일본의 문화와 일본의 연예계를 폄하하고 조롱하고. 그런 글들이 대중에 소비되고.
같은 것이다. 그런 만화가 나왔으니 일본은 우리보다 못하다. 우리보다 뒤쳐진다. 이제는 우리가 더 낫다. 무시하고 폄하하고 조롱하고. 다르다 생각하는가?
도대체가 일본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게 우월감을 가질 일인가? 일본 쪽 기획사의 프로모션에 의해 일본에 진출해 활동하는데 마치 무슨 국가대표처럼. 일본에서 예능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무슨 국가대항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누가 이기네 지네. 국가의 자존심 어쩌고. 나라의 명예 어쩌고. 그것을 일본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불과 얼마 전이다. 나 역시 일본 만화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고, 드라마 좋아하고, 일본 문화는 저질이라. 일본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은 문화적인 침략이고 한국인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일이라. 그래서 꼭 어디서 이상한 것들만 가져다
"일본 문화란 이런 것이다."
단지 일본 만화 즐겨본다는 이유로 욕먹던 것이 진짜 불과 얼마전이라는 것이다. 아마 태국이나 필리핀 등 평소 우리가 무시하던 나라였는데 대중문화가 문득 우리 사회를 장악한 듯 보이면 우리도 그다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수준이라면. 지금 하는 대로라면 - 아니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마치 예비범죄자 대하듯 하고 있는 것이 많은 한국의 대중이니까. 일본 입장에서도 과거 한국이 그랬지.
차라리 어느 정도 논리나 근거가 있으면 화라도 낸다. 얼토당토 않으면 대놓고 화를 내고, 그래도 옳은 비판이다 싶으면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그러나 이렇게까지 황당한 내용이어서야 화를 내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 뭐 화낼 대상이 있어야 화를 내지. 어디 찌질이 하나가 자기 찌질이인 것 인정한 것 가지고 내가 화를 낼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것 보고 좋아하는 놈들도 똑같은 부류일 텐데. 어딜가나 찌질이는 있고, 우리나라 대중 가운데서도 찌질이는 차고 넘친다. 피해가 있다면 소속사에서 직간접적인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물으면 되겠지. 정히 화를 참지 못하겠으면 그 당사자들을 욕하거나.
하여튼 뭐 되도 않는 일본이 어쩌고, 일본인이 어쩌고, 일본 대중문화가 어쩌고... 결국에 또 그 잘난 애국주의를 불사른 것일까? 아니 정확히는 애국주의의 떡밥을 불사른 거겠지. 팬 입장에서 화가 나는 건 이해하겠는데 괜한 일본을 걸고 넘어지며 기회삼는 것은 우습기만 할 따름이다. 핑계거리 생긴 거겠지.
내가 금과옥조로 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넓고 병신은 더 많다."
일일이 화내다가는 끝이 없다. 화도 상대 봐가며 내는 것이다. 오버는 더욱.
과연 진정으로 그 당사자들이 피해입고 상처받을 것을 걱정해서 화를 내는 것일까? 그저 빌미가 있으니 애국심을 과시하려 기회삼아 감정을 드러내는 것 뿐일까? 그럴만한 일이기는 한 것인가?
가끔은 내가 너무 쿨한 게 아닐까. 하지만 알겠지. 나는 쿨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가치가 없는데는 화를 내지 않는다. 화도 그럴 가치가 있을 때 내는 것이다.
간만에 정말 웃으며 보았다. 그런 만화 그린 놈이나, 그것 좋다고 보는 놈들이나, 거기에 괜한 민족주의를 불사르는 놈들이나. 참 세상은 다이나믹하다.
재미있다.
덧, 굳이 번역까지 해서 퍼나르는 사람들은 그것 보고 재미있으라는 것일까? 아니면 함께 화내자는 것일까? 그런 만화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당사자들에게 명예훼손이 된다는 생각은 않는 것인가? 나는 그런 것 보는 자체만으로도 불쾌하던데. 화가 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보는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과연 퍼다 나르며 일본인 욕하는 것이 당사자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차라리 모른 체 하는 게 그들을 위하는 것일까? 생각이 필요할지도.
때로는 아예 모른 척 무시하는 것도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공식 대응이야 알아서 하도록.
현명함이 필요하다. 몰라서 좋은 일도 있다. 안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분노보다는 배려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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