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본이 싫다. 일본인이 혐오스럽다. 일본의 사회와 문화가 우습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일본에서 활동하며 성적을 내는 한국 걸그룹은 자랑스럽다.
한류란 말이 나오면서부터 항상 의문이던 것이다.
그렇게 이리 싫은데 한류는 어째서 좋은 것일까?
두 가지 솔직한 반응이 있다.
"일본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돌아와라!"
혹은,
"원숭이 주제에 그래도 좋은 건 아네."
차라리 전자는 솔직한데, 일본이 싫으니 일본에서 활동중인 한국 연예인들도 싫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원숭이 조련이다!"
한국 연예인과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것에 요상한 우월감을 느끼는 부류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보다 우월하다.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좋은 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일본 기획사의 컨텍을 받아, 일본 대중의 호응 속에, 일본 대중들이 좋아하고 소비하고 있음에도, 마치 일본과 싸우자는 것처럼. 일본에서 활동중인 연예인이란 국가대표 - 아니 한국문화의 일본침략 첨병이다. 일본에 한국 대중문화의 우수함을 알리라. 한국과 한국문화의 위대함을 알리라.
그래서 지난번 기무치 사건도 난 것이다. 야키니쿠 가지고도 그리 난리였던 것이다.
"어딜 감히!"
일본에서 일본 대중을 상대로 연예계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일본에 문화를 전수하는 것이며, 일본에 한국을 알리는 것이며, 나아가 일본에 한국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 현지사정에 맞게 활동하는 것이 좋게 보일 리 있나.
한류라 해도 많은 드라마와 만화들이 일본에서 원작을 가지고 오고, 솔직히 아직도 영화나 드라마는 몰라도 음악수준 자체만 놓고 한국이 더 낫다고 하기는 힘들다. 아니 KPOP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한국에서 불리니까 KPOP이지 미국과 더불어 한국 대중문화에 가장 깊은 영향을 준 게 바로 일본이다. 과연 일본이 아니고서 한국 대중문화의 오늘이 있었을까?
한때 - 아니 지금도 한국의 대중 가운데는 일본의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이 있고, 그리고 지금은 일본에서도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대중이 나타났고,
솔직히 나도 한류가 기쁘기는 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우리의 대중문화도 벌써 여기까지 발전했고 인정받고 있다."
마치 이승엽이 일본에서 홈런을 치면 열광하는 것과 같다. 박찬호가 미국에서 승수를 쌓을 때 환호하는 것과 같다. 일단 저들이 우리보다는 수준이 높다. 이제까지는 그랬다. 그랬기 때문에 그런 빅마켓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왜 한류인가? 예전에는 일본에 진출해도 성공가능성이 낮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가지 않은 적이 더 많다. 조용필처럼 한국에서 더 이상 할 게 없으니까 일본에 가는 것도 아니고, 국내에서도 앨범 몇 백만 장씩 팔고, 국내활동만으로도 추분한 수입을 올리는데? 그런데 지금은 너도나도 일본으로... 일본 시장이 몇 십 배나 크니까. 국내 시장은 그만큼 작고. 당장 카라만 해도 컬스토크 단 하나의 앨범판매가 그동안 한국에서 팔아치운 앨범 전체를 넘어선다. 아마 카라가 벌어들인 돈도 그동안 한국에서 벌어들인 것보다 일본이 더 클 걸?
한국 시장이 더 크다면 일본처럼 우리도 굳이 일본까지 갈 필요가 없겠지. 아니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다고 이리 언론을 장식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베트남이나 타이에서 한류가 붐을 이룬다고 이렇게 쉴 새 없이 기사가 터지고 할까? 가끔 기획보도로나 다룰 뿐이다. 일본의 한류가 아니고서도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한류가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질까?
어차피 더 큰 시장이고 하니 돈 벌러 - 그것도 일본 쇼비즈니스의 요구에 의해, 더구나 일본 대중의 선택에 의해 인기를 누리면서도,
"일본놈들은 못 믿겠어."
"일보 문화는 열등해."
"일본은 웃겨."
장담하건데 만일 한류에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아니, 원래 반한류라는 자체가 외국문화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외에도 한국인들의 근거없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도 한 몫 한다. 자기들이 좋아서 음악을 듣고 영화도 보고 연예인에 열광도 하고 하는 것인데 그게 대체 뭐라고.
어차피 개인대 개인이다. 카라와 일본인 게키단 히토리. 혹은 일본인 히루마 아루마. 일본인 나까무라. 일본인 하야시. 일본인으로서 한국인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일본인이기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인을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니다. 한 개인으로서 음악이 좋고 아티스트가 좋다. 국적은 그 다음 문제. 당장 내가 일본 드라마를 보고, 일본 음악을 듣고, 만화를 읽고,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말하지만 차라리 일본이 싫으니까 일본에서 활동중인 연예인도 싫다, 일관성이라도 있다. 끝까지 싫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일본은 싫은데 일본에서 활동중인 연예인은 자랑스럽다. 아니 그것까지도 좋다. 그런데 뭔 되도 않는 일본에 대한 우월감에 비하하는 의식까지. 그렇게 잘났을까?
물론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풀지 못한 문제들이 아직도 여럿 남아 있다. 그것 때문에 양국과 국민 사이의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그것, 이건 이것. 국가와 국가, 국민과 국민 사이의 집단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대중문화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개인은 단지 개인으로 인정하면 된다.
일본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붐을 이루니 그런 찌질한 만화나 그리는 인간이나. 2ch등에서 한국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혐한넷우익들. 그리고 그 한 편에서 같지도 않은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드러내며 한류의 성공을 자기 자신의 대단함으로 착각하는 인사들까지. 과거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해 그랬듯 한류야 말로 일본에 대한 문화침략이다. 그러면 일본인은 문화침략에 대해 어떻게 대할까?
한류의 가능성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지아와 페이에게 있다. 닉쿤에게 있다.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에 도전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에 있다. 한국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도 하고 오디션도 보고 데뷔도 하는 아시아인들. 세계인들. 한류가 보다 보편적으로 오래 가려면 그런 인류 보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그들에 비해 우리가 우월하다가 아니라, 단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저들도 좋아한다. 우리는 같다. 아시아가. 세계가. 일본과 한국 역시. 그래야 세계인도 마음을 열지 않겠는가.
뭔 일만 터지면 일본, 일본... 혹은 중국, 중국... 일본이니까. 그리고 중국이니까. 한국이니까. 그때그때 전혀 달라지는 개별논리들. 그러고서도 한류라... 우습지도 않지.
어차피 일본인이야 한국인이 아니다. 일본인 뜯어고쳐봐야 그것이 우리 사회나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얼마 없다. 그러나 한국인은 아니지. 나 역시 최소한 당당하고 멋있는 한국인을 바라니까. 이래봬도 나 또한 민족주의자다. 일본인이야 어떻든. 가장 큰 희열은 바로 보편에 있다. 한국과 한국인과 한국사회, 한국의 문화에 보편이 있다. 아마 거기서 생각이 갈리는 모양이다만.
차라리 솔직해지라. 아니면 최소한 모순은 접고. 일본이 그렇게 우습고 실으면 한류도 우습고 하찮은 거다. 한류에 열광하는 자신의 무의식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한류라는 자체에 대해서도. 왜 한류란 것에 자신은 그리 관심이 많고 심지어 집착까지 하는가.
분명히 말하지만 한류가 당신을 대단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한류란 보편이다. 대중문화란 보편이다. 잠시 한류로부터 관심을 끊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위로는 현실이 아니다. 자위는 망상에 불과하다.
어느샌가 대중문화에까지 스며드는 애국주의의 광풍이란 것이. 가장 한심하고 못난 주제들이 마지막에 기대는 곳이 바로 애국주의라는 것이다. 바보일수록 거대담론에 빠져 산다. 혐한류보다는 그들이 더 부끄럽다.
웃긴다. 정말이지... 저런 이들이 전부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긴다. 일부겠지. 그렇게 믿으련다.
'문화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혹은 죄가 아니다 - 정선희와 현명하신 여론판사들! (0) | 2011.01.18 |
---|---|
피곤한 아이유 - 이건 학대다! (0) | 2011.01.18 |
이번 일본의 혐한류 - 한국 걸그룹 비방 만화에 대해... (0) | 2011.01.14 |
글쓰기의 함정 - 전지적 글쓰기... (0) | 2011.01.11 |
김성민 탄원서 - 연예인차별일까...? (0) | 2011.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