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무한도전 - 골방잡담, 그 시답잖음에 대해서...

까칠부 2011. 2. 20. 00:46

내가 주장해 온 이론이다. 원래 리얼버라이어티의 리얼리티란 시답잖음일 것이다. 캐릭터가 있고 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 동안 축적되어 온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 속에 캐릭터도 있고 관계도 있는 것이다. 어느샌가 익숙해져버린 일상의 그런 것들이다. 말 그대로 하찮고 대단할 것 없는 작은 이야기들이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뭐라도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 하는가? 그렇게 재미있을 것도 없다. 심각할 것도 웃길 것도 없다. 자주 만나는 사이라면 더 그렇다. 별로 대단치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즐겁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다.

 

시작은 별 것 아니었다. 유재석, 정준하, 정형돈의 누가 더 못생겼나? 다시 말해 그 가운데 누가 가장 잘생겼는가? 거기에 어느새 나머지 멤버들까지 쓸려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심지어 PD 김태호마저 그 가운데 휩쓸리고 있었다. 무한도전 일곱멤버의 외모를 멤버들 자신이 순위를 매기면 어떻게 될까? 김태호PD는 과연 외계인 박명수와 겨루어 어느 정도 수준일까?

 

실제 여럿이 모이고 하면 곧잘 오가는 농담이다. 내가 더 낫네, 네가 더 못하네. 외모를 가지고 하기도 하고, 이성에게 인기 있는 것 가지고도 하며, 때로 무모하게 술을 가지고도 한다. 적당한 허풍과 아주 적당한 허세와 그리고 나름대로 짓궂은 독설들과, 하나의 게임이다. 무한도전도 게임이다. 각자가 써낸 순위와 그 이유들에서 자연스레 그것을 누가 썼는가 알 수 있는 것처럼. 뻔하게 숨기는 것 없이 악의없는 놀이다. 서로를 놀리는 그 모습까지도.

 

단지 외모품평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지루하지 않은가?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이야기와 함께 별 시시껍절한 게임들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박명수 같은 친구들이 어디에나 있다. 열심히 한 번 놀아보자고 여기저기 게임을 알아보고 구상해서 가져오는데, 그러나 전혀 호응이 없는 실패한 오락부장. 그런데 또 그런 것도 재미있다. 시청자 역시 그동안에 멤버들과 쌓여 온 시간이 있으니까. 정준하가 유독 세 번에 걸쳐 벌칙 고추냉이 초밥을 모두 먹은 것이 그리 재미있는 이유와 같다. 그것이 정준하다. 정준하니까 어울린다.

 

그 시간들이다. 멤버들만이 아니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길, 일곱 멤버들 사이에만의 관계가 아니다. 그동안 줄곧 그들의 모습을 지켜봐 온 시청자들과의 관계가 있다. 웃기면 웃긴대로, 웃기지 못하면 웃기지 못한대로, 재미있으면 재미있는대로, 재미없으면 재미없는대로, 그러나 그 자체로 우스보 재미있다. 그것이 캐릭터니까. 그러라는 관계니까. 그렇게 쌓여 온 시간이니까. 그들이 함께 모인 좁은 방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시청자 역시 스스럼없이 함께 어울리고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러나 사실 그렇게 재미있을 것이 없다. 고작해야 서로의 외모를 자기 관점에서 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점수로 계산에 다시 최종순위를 결정하고, 승자가 패자에게 벌치을 가하고. 하지만 다름아닌 그들이니까. 일곱 명 무한도전의 멤버들이니까. 벌칙을 받는 그 순간에마저 재미를 따지며 몸을 내던지는 그들이 있으니까.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즐겁다.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고 재미있다. 모여 있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 속에 흐뭇한 웃음을 짓는 누군가가 있다. 물론 무르익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예능감이야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만. 그러나 무한도전이기에 재미있다.

 

소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한도전이라고나 할까? 왁자하게 웃는 가운데도 정감이 흐르는 것은 무한도전과의 쌓여온 시간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리얼리티다. 그 시간이. 그 관계가. 시청자와 함께 하는 그 시공간의 공감이.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이것이 무한도전이라는 듯이.

 

홋카이도 횡단열차 안에서의 게임들은 깨알같이 재미있었다. 아바시리항에서 쇄빙선을 타고 보여준 오츠크해의 유빙도 장관이었다. HD는 이런 멋진 장면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먹을 것과 잠자리로 나뉜 두 개의 대조군 실험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무한도전스러운 시도였다. 한 켠에서는 눈으로 이글루를 만들고, 한 켠에서는 얼음을 깨고 얼음낚시를 하고, 의식주의 가장 중요한 식과 주의 경쟁. 그러나 마침내는 극한의 상황에서 두 팀이 하나로 화합하고 있다. 메시지가 있다. 여기에 길의 실연소식까지. 노홍철의 짓궂은 놀림도 위로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여행이라는 게 별다른 게 있는가. 좋은 사람들과의 함께 한 좋은 시간들일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즐거운 게임과 색다른 체험들. 실컷 떠들고 실컷 웃고 단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즐겁다. 아무리 빙어가 잘 잡혀도 여럿이 함께가 아니면 재미가 없다. 여행은 함께 떠나는 것이다. 그런 여행이었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