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 김태원 위암, 리얼리티와 도덕적 의무...

하기는 마라톤편에서도 그랬지. 차라리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갔어야지 왜 중간에서 멈추었느냐는 글이 메인에 편집되기도 했었다.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리얼리티를 요구하면서도 사람들은 어느새 출연자들에게 어떤 도덕적 의무에 의한 행동을 강요한다. 도라도 닦으라는 것일까?

 

남자의 자격만이 아니다.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일상적인 반응과 대응들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시청자를 배려해서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차라리 대본을 가지고 연기를 하라 하던가. 아니면 어디 도닦는 사람들 데려다 출연시키면 되겠다.

 

어이가 없다. 암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극초기라도 그렇게 가볍게 들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 그대로 전혀 상관없는 시청자들조차 충격을 받고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극초기라지만 암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공포는 전염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암이다.

 

몇 년을 함께 고락을 같이 했던 제작진들이다. 오죽하면 프로그램 접으려고까지 했다고 말할까? 아내야 말할 것 없고, 그 가족들도, 그리고 함께 남자의 자격을 만들어 왔던 동료들도, 초기라고 아무리 암이라는데 의연하라? 담담하라? 냉정하라? 윤형빈의 유암종 가지고도 그리 난리더라는 것을 못 본 모양이다.

 

내가 시골의사란 사람을 잘 모른다. 김태원이 남의 음악을 잘 듣지 않듯 나도 남의 글 잘 읽지 않는다. 나만 의사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지적 오만함을 느낄 수 있다. 김태원의 위암판정에, 그에 놀라고 당황하는 제작진과 멤버들에 도덕적 의무를 강제하는 다른 네티즌처럼.

 

바로 이런 게 암인 것이다. 이런 것이 비록 초기더라도 암을 대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반응인 것이다. 아무리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고 완치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당사자는 다른 것이다. 말기암환자의 투병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당연한 반응들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도 중요한 것이다. 결국은 암검진을 통해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고 좌절과 절망은 한 순간에 끝날 수 있었다. 쿨하게도 이현주씨도 김태원이 완치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하지 않던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는 것인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보여주려는 것은 그에 대한 리얼한 현실과 상황을 보여주려는 것이지 가식적인 어떤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의사라고 그런 건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 그것을 근거로 그런 감정들을 비난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어이가 없을 뿐이다. 화가 난다. 사이코패스가 다른 게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인간의 감정을 계량하고 고통을 계량하고 그것을 객관화하고 표준화하여 강제할 수 있다면 그게 사이코패스인 것이다. 개별적이면서도 서사적인 감정 자체를 무시하는 그 태도다. 이성일 테지만. 웃음도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