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라디오스타 - 박완규의 입을 빌어서도 어록이...

까칠부 2011. 3. 24. 08:46

"완규야, 너 애기 있지? 네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지어주기도 전에 아이를 잃어버리는 심정을 알겠니? 나는 부활을 내 아이처럼 생각하는데 내가 낳은 아이를 책임지고 싶다. 망가져도 괜찮다. 부활을 위해서는 다 하겠다."

 

어제 라디오스타를 보면서 순간 찡하게 와닿은 부분이다.

 

사실 김태원이 예능에 얼굴을 비쳤을 때 사람들이 마냥 좋게만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부활인데. 부활의 리더 김태원인데. 낮추어 보는 것도 있었다.

 

"하다하다 안 되니까 예능이로구나..."

 

부활은 끝났다는 시각도 있었으므로. 그보다는 잊고 있었다. 부활도 시나위도 블랙홀도. 단지 먼저 잊고 먼저 외면하고 있었음에도 얼굴을 내비치는데 그것이 그리 어색하고 싫었던 것이다.

 

하물며 당사자들은 어땠을까? 어울리지 않는 예능에 나가서 이제까지의 카리스마를 벗어던지고 마냥 망가지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이번주 놀러와에서도 '국민할매'로만 불려지는 것 때문에 우울증까지 왔다 하지 않던가. 남자의 자격도 도저히 힘이 부쳐 그만두려 했다고도. 부활 멤버 가운데서도 오로지 채제민만이 찬성하고 있었다고 했다. 박완규도 방송에 나와 이야기한 대로라면 반대입장이었다. 그런데도 예능에 나와 음악이 아닌 것으로 웃음거리가 되어야 했던 것은.

 

그나마 그에 대한 구애됨이 없었으니까. 음악의 장르만큼이나 예능에 대해서도 터부가 없었다. 김태원이 인기를 모으게 된 이유다. 아직까지도 - 아니 오히려 갈수록 김태원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이 높아지는 이유다. 스스럼없다. 거리낌이 없다. 자연스럽다. 시청자와 거리를 두지 않음으로써 시청자 역시 김태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런 진솔함 속에 어느새 납득해 버린다.

 

"아, 이것도 음악만큼이나 멋지구나."

 

그리고 바로 그 예능을 통해 부활을 알리고, 음악을 알리고, 부활이라는 팀 자체를 모르던 사람들까지 부활의 음악을 찾아듣는다. 마지막콘서트로만 알려졌던 노래가 다시 회상3라고 불려지고, 부활의 음악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진다. 예능출연 초반까지 심심치 않게 보이던 부활11집이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품절목록에 올라 버렸다. 2009년초까지도 분명 재고를 보았었다. 부활의 신곡도 이전보다 분명 더 낫다 할 수 없음에도 순위권에 들고. 이번에는 박완규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으로 오랜만에 음원차트 1위까지 했었다. 바로 예능의 힘이다. 예능이 아니었다면.

 

하기는 부활 9집의 타이틀곡인 "아름다운 사실"만 하더라도 정작 음반과는 상관없이 히트하고 있기도 했었다. 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 티저에 삽입되었기 때문에. 노래는 컬러링 1위에 오를 만큼 좋았는데, 그러나 정작 음반으로는 들려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부활 10집과 11집, 부활 7집, 6집, 부활의 망한 앨범의 노래 가운데서도 들려주면 좋다는 사람들 많다. 단지 들을 기회가 없었다.

 

잦은 보컬의 교체로 인해 보컬만 기억하는 한국 대중들에게 기억되기조차 쉽지 않고, 더구나 보컬의 성대결절에, 기획사의 부도에, 그리고 음악시장의 변화 등 우여곡절들도 많았다. 과연 충분한 홍보 - 아니 부활의 노래가 대중에 노출될 기회가 보다 충분히 주어졌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지만 결코 타이틀곡에 뒤지지 않은 음반의 수록곡들도 아예 들려질 기회조차 없이 사장되고 있었으니.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묻혀버리는데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지금에 와서야 지난 이야기지만, 그러나 김태원이 예능출연을 결심하기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그것을 이끌어주었던 김구라의 표정이 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김구라가 얼마나 김태원을 좋아하고 존경하는지 그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사정들에 대해서도. 결코 쉽지 않았겠지.

 

김태원의 예능출연을 두고 안 좋은 소리들이 사라지게 된 것도 겨우 최근에 들어서다. 드라마 "락락락"에, 이번에 암수술에, 김태원이 말한대로 "위대한 탄생"을 통해 음악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한 것도 있어서. 그래도 역시...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만으로 인정받고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새 까맣게 잊고 지내던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라디오스타 자체는 무척 재미있었다. 간만에 MC들이 서로 물고뜯는 게 있었다. MC들이 서로 물어뜯으니 게스트들도 함께 휘말린다. 만만한 이정도 있고. 박완규가 의외의 솔직한 매력으로 적잖이 떡밥을 던져준 것도 있고. 선글라스를 쓴 김희철의 분전이 눈부시다. 아이유는 김구라 말마따나 때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닌가. 박완규 하나로도 꽤 나올 것 같은 상황이지만.

 

박완규도 참 아쉬운 게, 박완규가 부활 뛰쳐나간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드락 해보자는 거였다. 5집이 기대이하의 성적으로 끝나고 보다 말랑하게 가려는 김태원에 반발해 나가서는 조금 센 걸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이현석과 손잡고 꽤 센 걸로 내놓고 했었지. 그러나 한국시장에 그것은 무리한 시도였다. 차라리 조금 더 앨범 한두장 더 천년의 사랑 같은 말랑한 노래로 갔으면. 그러기에는 독설이미지 그대로 이 아저씨도 직구 스타일이라. 조금 더 타협하는 법을 알았다면 대중음악의 역사도 꽤 재미있어졌으리라. 무엇보다 초기의 초고음미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뭐 김경호의 예를 봐도 그게 오래가지는 않았겠지만.

 

간만이 정말 재미있었다. 더구나 다음주가 더 기대된다는 게 더 즐겁다. 다음주 박완규와 아이유, 이정이 보여줄 모습은. MC들의 모습에 기대도 커져서. 바로 재미있을 때의 라디오스타다. 사연도 있고 감동도 있고 웃음도 있고. MC의 자폭도 있고.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