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에 대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7위를 떨어뜨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떨어뜨린다는 말 자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졸업은 어떨까? 더구나 지금의 시스템에서 1위를 한다고 특별히 좋아지는 건 없다. 단지 7명의 쟁쟁한 가수 가운데 1위를 했다는 명예 정도?
물론 그것도 좋다. 명예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고귀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인간의 본질은 명예와 닿아 있다. 명예란 자기가 추구하는 본질에 충실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과 같은 것이다. 누구보다 훌륭하며 누구보다 탁월하다. 보편적인 인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명예라고 하는 보상은 모호하며 실체가 없다. 특히 지켜보는 제 3자 입장에서 그렇게 와닿는 것이 아니다. 지난 <나는 가수다> 파동에서도 김건모의 재도전여부를 두고 그렇게 관심이 뜨거웠던 것도 어쩌면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위를 해도 특별히 와닿는 것이 없으니 보다 직접적으로 와닿는 탈락이라는 결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탈락하는가. 그래서 오히려 7위에 더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서 탈락이 아닌 재도전이라는 결곽 나왔으니 배신감과 심지어 분노마저 느낄 밖에.
더구나 가수를 평가하여 탈락시킨다는 자체가 갖는 문제가 있다. 지난주 정엽도 물론 투표 결과는 7위였지만 정엽의 무대가 가장 좋았다고 판단한 평가단도 역시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자 가운데서도 정엽의 무대가 가장 좋았다고 - 최소한 7위는 아닐 것이라 여긴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7위를 하고 탈락하여 다시는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치 계량하려는 것 같다. 누가 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고,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가? 더 많은 음반을 팔았으면 더 훌륭한 음악인가? 순위프로그램에서 더 높은 순위를 차지했으면 그가 더 훌륭한 가수가 되는 것인가? 순위프로그램에 한 번 이름을 올려보지 못했다면 가치가 없는 것인가? 7위가 되어 떨어진다는 것은 징벌과도 같다. 그리고 그것은 가수는 물론 그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대중에 대한 징벌이기도 하다. 과연 좋아하는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그는 징벌을 받아야 하고 무대를 빼앗겨야 하는가?
그에 비해 1위를 하고 <나는 가수다>를 졸업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과거 순위프로그램에서도 몇 주 연속 1위를 하면 골든컵을 받고 차트에서 사라지는 제도가 있었다. 원래는 조용필이 무려 10주 연속 1위를 하면서 한 가수가 너무 독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겨 생겨난 제도였는데, 그러나 이후 골든컵을 받고 차트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가수들에게 크나큰 영광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단 1주 차이라도 골든컵을 받고 못 받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나는 가수다>에서 한 번, 혹은 몇 차례 이상 1위를 하여 자격이 주어지면 그는 최고의 영예를 가지고 당당히 무대에서 퇴장한다.
물론 보상은 주어진다. 1위를 한 가수에게는 음원을 발매할 권한이 주어진다. 오로지 1위에게만 음원을 발매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그것은 2주에 한 번씩 시청율이 높은 예능프로그램의 화제성에 기대어 기성가수의 음원이 차트를 휩쓸며 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지금과 같은 체제 아래서는 2주에 한 번씩 기존의 가수들은 <나는 가수다>가 내놓는 그것도 리메이크 음악에 밀려 음원의 매출과 곡의 홍보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지 않는 가수들을 주변으로 밀어내는 동시에 음원시장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에 비해 2주에 한 번 1위를 한 단 한 사람만 음원을 발표하게 된다면 음반시장의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화제가 집중되면서 보상차원에서의 보다 높은 성적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주어지는 보상으로 자기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동료나 선후배 가수를 자기 다음 출연자로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장 영광된 자리에서 그 자신에게 다음 출연자를 직접 선택하여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제작진이 임의로 섭외해서 출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출연한 가수들에 의해 추천받아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더 극적이지 않을까? 서사가 있다. 첫주는 추천하고 추천받은 가수가 함께 무대를 준비하는 이벤트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작진보다는 가수들 자신이 만들어가는 프로그램. 어쩌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즉 무대에서 쫓겨나는 게 아니다. 무대가 가장 뒤쳐져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좋고 훌륭하기에 영광스럽게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음원발매라는 경제적 보상과 새로운 멤버의 추천이라는 막강한 권한과 그리고 누구보다 훌륭한 무대를 만들었다는 영광을 안고. 투표에 참가한 평가단이나 시청자 역시 그런 영광된 1위를 뽑았다고 하는 뿌듯함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7위로 탈락하는 가수를 보는 안타까움이 아닌 최고의 자리에 올라 물러나는 이를 보는 자랑스러움이다.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경쟁이란 가장 못하는 한 사람을 떨구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잘 하는 한 사람을 뽑아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도 경쟁의 한 방법인 것이다. 떨어진다고 하는 두려움이나 불안이 아닌 보다 높은 자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탐욕이다. 결코 음습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갖는 당연한 욕구인 것이다. 오히려 낫지 않을까? 굴욕보다는 명예를. 해방보다는 영광을.
물론 만의 하나 단지 방송출연만을 노리고 무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가수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방송출연횟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대안을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한 사람의 가수가 출연할 수 있는 총횟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7위를 해서가 아니라 1위를 하지 못했기에 물갈이된다. 그것은 계속 같은 얼굴만을 보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 1위는 졸업일 수 있는 것이다. 1위를 하지 못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회 안에 1위를 노리고 졸업하게 되는 것이다.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못해서 떨어지는 굴욕의 무대가 아닌 잘하기에 졸업하게 되는 영예로운 무대로써. 압박감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가장 훌륭한 무대를 보여줬다는 명예를 안고서. 안타까움보다는 기쁨이. 아쉬움보다는 축하와 부러움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세부적으로 보다 디테일하게 가다듬을 필요는 있겠지만 전혀 다른 색깔과 모습이라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한 달. <나는 가수다>에 주어진 시간이다. 과연 얼마나 달라진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올 것인가? <나는 가수다>를 좋아하기에. <나는 가수다>의 무대와 음악에 항상 감탄하고 감동하고 있기에. 허튼 바람이지만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부디 이랬으면. 기대하는 바일 것이다. 혹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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