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4월 8일 <위대한 탄생> 생방송 첫회 출연자 가운데 가장 괄목할 성장을 보였던 것은 탈락한 권리세였다.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당히 또박한 발음과 무대를 즐길 줄 아는 여유, 노래실력도 한결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가장 방송용 코디가 어울린 출연자였다. 최고의 비주얼이었다. 그러나 떨어졌다.
손진영의 경우도 물론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었다. 꾸준히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비장함도 많이 사라지고, 오히려 시원시원하게 올라가는 특유의 고음이 매력으로 다가오며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을 나름대로 훌륭하게 소화해 들려주고 있었다. 단, 음정이라든가 박자라든가 불안한 모습이 이은미로부터 출연자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인 8.0점을 받으며 심사위원 점수에서 최저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권리세가 받은 점수가 35.4점, 하지만 손진영이 받은 점수는 이은미의 8.0점을 포함해 33.4점으로 최저점, 그러나 전체 출연자 가운데 6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은 권리세가 떨어지고 오히려 외모에서도 그다지 호감이지 못한 손진영이 붙었다. 심사위원점수와 시청자투표점수의 적용비율이 3:7인 데서 오는 또 하나의 반전이었다.
일단 권리세는 외모부터가 너무 뛰어나다. 아무리 실력이 일취월장했어도 미스코리아 일본 진 출신의 화려한 외모는 그녀의 성장을 가려버린다. 연예인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외모가 시청자들과의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꾸준히 제기되어 온 실력에 대한 문제들이 심지어 그녀가 생방송에 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부정하고 불순한 상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당연히 권리세는 생방송까지, 그것도 상당히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리라는 기대는 그만큼 방송과 시스템, 나아가 한국사회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인식이 그녀를 통해 투사되고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손진영은 이태권과 더불어 외모에서도 출연자 가운데 가장 하위권에 속한다. 외모부터가 비주류다. 그렇다고 대단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안환경이 유복한 것도 아니다. 네티즌이 찾아낸 사진들마저 비주류의 이미지에 더 가까운 것들이다. 같은 실력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그로 인해 멘토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어도, 멘토 김태원의 인성에 대한 비판은 있었어도 구조적인 부조리로까지 여겨지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다.
그것이 차이를 갈랐다. 주류적 이미지의 권리세와 비주류적 이미지의 손진영, 당연히 방송과 시스템에 의해 살아남아야 하고 당연히 위로 올라갔어야 할 권리세와 언제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손진영, 그리고 선택의 키는 시청자가 쥐고 있었다. 출연자들의 자신의 기대와 바람을 투사할 더 많은 시청자들에 의해 누가 살아남고가 결정되었을 터였다.
물론 이런 경우 시청자투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층이 여성시청자들이라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일단 권리세에게는 여성시청자들이 투표해야 할 어떤 확실한 이유도 없었다. 동경의 대상이 될 만큼 스타일이나 실력에서 탁월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것이 그 동안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꿀 정도는 더욱 아니었고, 그렇다고 동정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상당히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캐릭터였다.
의외의 깨끗한 고음에 신나는 무대, 그러나 심사위원들의 지나치게 짠 점수, 이제까지 힘들게 올라온 과정들이 더해지며 어느새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시청자들의 욕구를 자극해 버린 것이었다. 패자를 승자로 올리고 싶다. 약자를 강자로 만들고 싶다. 비주류를 주류로 올리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이 사회 수많은 비주류들의 욕망이고 바람이었을 것이다. 한때 손진영이 최저점을 받고 시청자투표에서 1위까지 했던 것은 그같은 바람의 투영이었다.
드라마를 바란다. 반전을 바란다. 당연히 올라가야 할 사람이 아닌, 전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위에 올라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싶다. 시청자의 반란이랄까? 비주류의 단호한 의지이고 명령이었을 것이다. 이대로 손진영을 떨어뜨릴 수 없다.
시청자들이 오디션프로그램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이제까지 <위대한 탄생>가운데 김태원 멘토스쿨편이 아직도 회자되는 최고의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는가? 당연하게 올라가는 사람은 싫다. 누구나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은 싫다. 하기는 영화에서도 반전이 없다면 상당히 지루할 수 있을 것이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고, 천덕꾸러기 오리새끼가 백조가 되어 비상하고. 그런 극적인 드라마를 기대하는 것이다. 리얼의 꾸며지지 않은 드라마를.
다만 아쉽다면 정작 프로그램 차원에서 그같은 드라마를 담아내는 데는 실패하지 않았는가. 손진영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의미부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최저점이었다. 가장 낮은 점수였다. 떨어질 위기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모른다.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그저 김태원 멘토팀 전원이 살아남았다. 이은미의 멘토팀에서 권리세가 떨어졌다. 한 사람 남았다.
개인이 아닌 멘토를 중심으로 결과발표를 하다 보니 출연자 개인의 개별적인 드라마가 모조리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개별적으로 이름이 불린 출연자들만이 겨우 자기 이야기를 꺼낼 기회를 얻었을 뿐이었다. 그조차도 멘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승자가 있어야 패자가 있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어야 탈락한 사람의 모습이 의미가 있다. 첫 생방송을 통과한 10명이 보이지 않는데 탈락한 2명이 보일 리 없다. 탈락자들의 눈물이 그다지 와닿지 않은 이유였다. 거리가 있었다.
차라리 개인의 이야기에 더 집중했다면. 멘토 단위로 결과를 발표하다 보니 결과발표에도 너무 시간을 끌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결과인데도. 더구나 새로울 것 없는 같은 말의 반복. 처음에는 그것이 자극이고 흥미였을 테지만 나중 가면 자극이 무덤덤해지며 지겨움과 짜증으로 바뀌고 말았다. 처음으로 채널이 돌아간 순간이었다. 결과에 대한 궁금함보다 반복되는 지루한 멘트에 대한 반감이 더 컸던 것이었다.
더불어 지나치게 후한 심사위원들의 점수도 문제였다. 심사평조차도 너무 후했다. 아무래도 출연자들과 그동안 쌓여 온 관계라는 게 있다 보니. 더구나 출연자에 대한 비판은 자칫 다른 멘토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패자부활전에서 손진영에 대해 신승훈이 지적했을 때 김태원이 급히 사과했던 것처럼. 시청자가 소외될 수 있다. 멘토와 멘티 사이의 이미 존재하는 강고한 관계의 틀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심사위원 점수보다 시청자투표의 비중을 더 크게 반영하기로 한 것은. 이미 심사위원들에 의해 선택되었다. 멘토의 이름으로 선택되고 가르침을 받았다. 여기에 심사위원의 점수를 더 높이 반영한다면 오로지 멘토들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기 쉬울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것도 좋았지만 바뀌어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시청자투표는 달리 멘토들에 대한 투표이기도 하다. 어떤 멘토가 어떤 멘티들을 적절히 선택하여 제대로 가르쳤는가? 시청자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다만 그럼에도 심사위원의 심사평이란 오디션 프로그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기에 그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보다 거침없이 심사평을 해 줄 심사위원의 존재가 필요하다. 기존의 심사위원들이 멘토가 되면서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생겨버렸기에 이들 이외의 다른 심사위원을 보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음주든, 아니면 그 다음 주든. 혹은 시청자로 이루어진 배심원단을 뽑아 그들로 하여금 심사평을 하게 하거나. 고려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착한 예능이 좋다고 해도 심사위원의 독설을 기대하는 시청자는 얼마든지 있다. 당장 출연자 자신을 위해서도 가차없는 지적은 필요할 것이다.
이은미의 멘토로서의 역량은 단연 최고였다. 권리세와 김혜리, 멘토스쿨까지 보았던 입장에서 이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성장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무대를 진심으로 즐기는 권리세의 모습에 심사위원들마저 흐뭇해 하는 것이 보였고, 김태원도 마침내 김혜리가 1급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신승훈의 멘티들은 멘토스쿨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평이함으로 묻히지 않았는가. 셰인의 경우 음색 이외에 다른 강점을 전혀 찾지 못했고, 조형우는 특유의 힘이 들어간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방시혁의 멘토 가운데 데이비드 오는 역시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보다는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어울릴 것 같고, 노지훈은 어느새 관록이랄 만한 것까지 느껴진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프로의 무대 같았다. 팔이 녹아버린 것 같다는 김윤아의 말처럼 정희주 역시 목소리에서 여유가 느껴지며, 백새은은 오히려 상당히 아담하고 귀여운 편인 주주클럽의 노래를 부르는데 있어 코디의 문제가 드러난 듯 보였다. 그리 체구가 작은 편이 아닌데 인형스런 스타일이 덩치가 더 커 보이게 만들었다. 주다인의 노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였다. 물론 노래는 훌륭했다.
손진영은 역시 비장함만 빼면 시원시원하게 뻗어 올라가는 목소리가 일품이다. 임재범과도 얼핏 닮은 긁는 듯한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물론 잘 소화는 하지 못했다. 이태권은 상당히 정체된 느낌이고, 그에 비하면 백청강 역시 많은 성장을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첫생방송이라 떨어서인지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훌륭한 무대였다.
역시 첫생방송이라서일까? 아무래도 기대보다 떨어지는 것이 있었고, 심사위원의 점수도 너무 후했다. 방송국 차원에서도 구성이 <슈퍼스타K>를 많이 의식하는 안이함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방향을 잡지 못한 어수선함이 있었다. 생방송 무대를 기대했던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실망스런 무대이고 방송이었다. 지루함을 채운 것은 참가자들의 노래. 하지만 그조차도 긴장으로 많이 부족했던 것 같고.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었던 것이 손진영이 최저점을 받았을 때 그를 살리겠노라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손진영을 살리겠다. 손진영이 살아나도록 하겠다. 이것도 또한 오디션프로그램의 묘미이기는 할 테지만 말이다. 마치 스포츠경기에서처럼 - 아니 스포츠경기에서와는 달리 시청자가 직접 참여하여 결과를 결정할 수 있다.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과연 <위대한 탄생>에 있어 장점이 될 것인가.
실망스런 방송이었다.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했었다. 더구나 <위대한 탄생>의 모델이 되었던 케이블방송의 <슈퍼스타K>와도 비교되면서 아쉬움도 많이 남겼다. 다음에는. 다음주에는. 이대로는 어려울 것이다. 발전된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대로는 절대 아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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