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캐릭터를 가져야 한다."
예선에서 방시혁이 박지연과 데이비드 오에게 한 말이다. 그들의 무성의하고 몰개성한 복장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라고.
음악이란 결국 대화다. 언어이며 기호다. 말로 다 하지 못할 것이 있을 때 사람은 노래로서 그것을 전하고자 한다. 노래에 기억을 담고, 노래에 사연을 담는다. 노래를 들으며 노래에 간직한 지난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며 듣는다.
어떤 노래인가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누가 부르는가도 중요하다. 그 캐릭터를 통해서 비로소 음악인은 대중과 소통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과거 김경호가 핑클의 'NOW'를 리메이크해서 불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경악하며 심지어 그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동안 김경호가 해 오던 음악이 있다. 그가 부르던 노래들이 있다. 무대에서 그가 연출해 보이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머리를 자르고 나와 심지어 춤까지 추고 있으니. <라디오스타>에서 박완규가 그 일로 김경호를 비난하다가 주먹다짐까지 했더라는 이야기가 괜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어울리는 노래를 불렀을 때는 환호를 받는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불렀을 때는 자칫 팬들이 전부 등을 돌리고 외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중과 마주하는 얼굴. 대중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그 모습이 캐릭터인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곡을 써서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만이 아닌 무대에서 관객을 마주하는 가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멘토 가운데서도 신승훈에게는 신승훈만의 캐릭터가, 김윤아에게는 김윤아만의 캐릭터가, 이은미에게도 '맨발의 디바'라는 수식어가 무대에서의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음악을 전제하듯 말이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어제 4월 11일 발표된 4월 8일자 생방송 <위대한 탄생>의 최종순위표에서 손진영이 시청자투표 2위에, 전체 2위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것은 정작 심사위원 점수에서 최저점을 받은 다음 얻어진 결과이기에 더 놀랍다. 백청강이야 당연히 우승후보이고, 셰인은 특유의 미성이 강점인 미소년이고, 이태권 역시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출연자다.
아니 그러고 보면 1위에서 4위까지 가운데, 즉 전체 4강 가운데 김태원 멘토스쿨 출신이 세 사람이나 포진해 있다. 심사위원 점수도 점수려니와 하나같이 시청자투표 점수가 높다. 하긴 심사위원 점수와 시청자투표점수의 비율이 3:7로 시청자투표의 비율이 압도적이니 당연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손진영은 심사위원 점수에서 최하점을 받고도 시청자투표에서 최고점을 받아 2위에 오른 경우였다.
결국은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노래였다. 4월 8일 첫생방송에서 선곡으로 이익을 본 참가자는 대략 셋 정도였다. 특유의 상큼한 매력을 한껏 살려 보여주었던 권리세의 '헤이헤이헤이'와 역시 김태원 멘토스쿨의 이태권, 손진영, 백청강이 각각 부른 '오늘 같은 밤이면', '이 밤이 지나면', '슬픈 인연'이었다. 하나같이 이들 세 출연자의 장점을 살려주면서 그들의 캐릭터를 돋보이는 선곡이었다.
물론 박정운이 부른 관조하는 듯 절제된 섬세한 감정의 선을 이태권이 살려 부르기에는 사실 아직 무리다. 실제 무대에서도 그다지 감정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이태권이니까. 묘하게 달관한 듯한 특유의 감성이 그의 목소리와 어우러지며 마치 자기 노래인 듯 노래를 살려 부르고 있었다. 이건 또 이렇게도 들릴 수 있구나. 장차 이태권이 스스로 노래에 감정을 실어 들려줄 수 있을 때 다시 부르는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백청강 역시 그 애처롭도록 가녀린 미성이 '슬픈인연'이 갖는 가는 선의 섬세한 비장미와 너무 잘 어울린다. 단점으로 지적된 콧소리조차도 여기서는 더 이상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보호해주고 싶은. 그리고 감싸주고 싶은. 사연이 줄줄 흘러넘친다. 백청강에게 붙여진 '앙까'라는 별명은 어쩐지 고기를 사주고 싶어지는 위대한 캠프에서의 순박하면서도 안쓰러운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고난 보컬도 보컬이려니와 백청강이 갖는 매력을 극대화한 선곡은 탁월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캐릭터와 선곡의 도움을 받은 것은 다름아닌 손진영이었다. 손진영이 최저점을 받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진영이 최저점을 받는 순간 다른 출연자에게 투표하려 대기하던 사람들까지 움직이며 그에게 표를 주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것은 김태원의 주문에서 시작되었다.
"미라클 맨"
기적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들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믿게 되었다.
김윤아가 확인해 주었다.
"아무래도 김태원 멘토님의 멘티들은 모두 다 정말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라클맨이라는 호칭을 저도 인정하겠습니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출연자였다. 심지어 그를 끝까지 믿고 이끌어준 김태원에 대해서조차, 그의 인성에 대해서마저 비판과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고 있었다. 누구도 믿지 않았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마저 부조리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생방송무대에서 최고의 가능성과 실력을 보여준 다른 11명의 출연자들과 함께 대등하게 겨루고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한결 성장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적이었다.
사소한 음정의 문제란 그 앞에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리듬감이 부족하고, 박자를 못 찾고. 노래의 맛을 제대로 못 살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시원했다. 후련했다. 손진영 특유의 지르는 목소리가 노래와 너무 잘 어울렸다. 잔잔한 노래들 일색인 무대에서 손진영의 무대는 돋보였고, 손진영의 강점이 유감없이 드러나 보였다. 손진영이 갖는 매력이 제대로 전달되었다. 손진영이 가지고 있는 3을 노래를 통해 5로 늘려주었고, 그것을 다시 미라클맨이라는 캐릭터에 실어 7로 8로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마법과도 같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손진영이 2위.
김태원의 솜씨다. 이태권도 마찬가지고, 백청강도 마찬가지고, 하긴 이태권의 노래를 선곡해 줄 때에도 김태원은 굳이 이태권의 눈썹을 언급한다. 눈썹이 자란 것 같다며, 눈썹이 자라는 것은 기적을 예고한다며. 다만 이태권이 심사위원 모두가 인정하는 노래실력에도 불구하고 시청자투표에서 손진영에게 뒤진 이유는 그만큼 캐릭터가 부족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와닿는 것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김태원이 염두에 두고 고려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기적은 만들어졌다. 그동안의 한결같은 믿음을 통해서, 그리고 김태원 멘토스쿨의 드라마를 통해서, 패자부활전에서의 환골탈태한 변신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은 김태원의 '미라클맨'이라는 주문과 어우러지며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심사위원점수 최하위. 그러나 시청자투표 2위. 그것도 그동안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한 몸에 받던 손진영이 말이다.
확실히 밴드의 리더라는 게 이렇게 다르다. 김태원은 기타리스트로서 부활이라는 팀의 리더이기도 하며 작곡가이고 또한 프로듀서다. 앨범 하나당 거의 보컬이 한 명 바뀌는 부활이라는 팀에서 항상 새로운 보컬을 찾고 그 보컬에 어울리는 노래를 다시 찾아 안겨주는 일을 해 온 사람이다. 무대에서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를까? 단순히 목소리만이 아닌 그의 전반적인 캐릭터까지 고려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면 어울리겠다.
그가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다른 출연자에 대해서 때로 날카롭게 비평하고 비유하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놀라고 마는 것도 마찬가지다. 굴곡이 많았던 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음악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함께 간다. 그것이 김태원 멘토스쿨이라는 전설을 일구었고, 손진영이라는 기적을 일구었다. 아니 세 명의 멘티 모두가 다음 생방송무대에 진출하는 리더십을 보이고 있었다.
철저히 파악하고 그에 맞게 그림을 그려준다. 캐릭터를 만들어주고 그에 맞는 곡을 들려주고. 어딘가 쪼고 깎아서 자기입맛에 맞는 모양으로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그 위에 그 가진 개성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오히려 손진영이 아닌 김태원에게 더 감탄하게 된달까?
멘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에 어울리는 곡을 선곡해주고, 그들에게 맞는 캐릭터를 부여해주고, 아마 김태원 멘토스쿨이 가장 먼저 방송되지 않았다면 시청자 투표의 결과는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리라. 김태원 자신이 기적이다. <위대산 탄생>이 거둔 최대의 행운이다.
아무튼 놀랍다. 손진영의 변신이. 하나같이 자신에 맞는 노래를 무기로 더욱 화려하게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는 멘티들이. 그래서 결과를 발표할 때도 멘토별로 묶어서 발표하는 것일 테지만. 이것은 멘티의 도전이기도 하지만 멘토의 도전이기도 하다. 멘티를 통해 음악인으로서의 자신의 역량과 자존심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을 대중도 평가하려 한다.
흥미롭다. 이번주에는 어떤 곡을 선곡할 것인가? 어떤 캐릭터로서 대중에 선보일 것인가? 어떻게 지금보다 발전된 모습을 대중에 보여줄 것인가? 그 어느 팀보다 기대되는 팀일 것이다. 김태원과 외인구단. 공포의 외인구단이 그러했듯 그들도 기적을 보여주기를.
심사위원 점수 최하점, 그러나 시청자투표 2위, 그렇게 호감이 가는 외모이던가. 그렇게 탁월한 실력을 보였던가. 노래는 수학이 아니다. 음악은 공식이 아니다. 그것을 보여준다. 이번주 <위대한 탄생>을 기대한다. 미라클맨 손진영을 기대한다. 또 한 번의 기적을. 흥분된다.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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