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작가가 지금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혹시 조금 특별했던 학생 기억나는 것 없어요?”
“아 왜 좀 섬뜩하다거나 지독하게 불우한 환경에 있던 학생이요.”
무려 초등학교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군대에서나 취직해서 어떤 일이 있었을 줄 알고. 초등학교 때 어떠했더라는 것이 과연 성장해서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까?
더구나 편견이라는 게, 섬뜩하다는 것은 단지 인상이고 불우하다는 것은 그 놓인 환경에 불과하다. 범죄자를 수사하는데 교사가 본 인상과 놓인 환경을 묻는다? 다른 정황이나 단서 없이 그 한 가지로 묻고 대답을 듣는다. 그리고 범인을 찾아낸다. 마치 그러한 인상과 환경이 범죄사실을 결정짓는 마냥.
하긴 말 그대로다. 다른 것 하나 없었다. 어떤 특징적인 증거라든가 증언을 확보한 것도 아니었다. 네모 모양의 “참 잘했어요.”도장이 어느 초등학교에서 쓰이던 것이라는 단서만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가 물은 것이 저 한 마디. 그리고 선생님은 그 특별했던 학생을 떠올리고, 그것을 단서로 범인을 찾아낸다. 임경은(김선경 분)의 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단서가 된다는 듯이.
실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이 질이 안 좋다. 결손가정이라거나 - 하긴 결손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에서 쓰이는 말이다. 집안이 가난하다거나, 어떤 사정이 있다거나, 아이의 인상에 대해서. 그래서 아예 자기 아이들에게 얼씬도 못하도록 배제하고 격리시키려는 시도들이 심심찮게 뉴스를 타기도 했었다.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것 같지 않은가. 보라. 저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어른이 되겠는가? 물론 정일도(이종혁 분)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여전히 느끼는 것은 사건을 잇는 선이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시청자가 이입하며 볼 수 있도록 이어주는 선이 배제되어 있다. 역시나 작가가 수사물은 처음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남태식(성지루 분)의 첫사수였던 순직한 경찰의 딸 이유리의 죽음에 대해 남태식은 그리 오열하지만 오히려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담담한 것을 넘어서 지루하기까지 했던 것이 그래서였다. 도대체 남태식은 왜 저렇게 분노하며, 이성을 잃고 좌충우돌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가? 납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을 텐데.
그런 때 쓰이는 기법이 있다. 이를테면 이번 사건이 13, 14회이니 11, 12회 쯤에서 이유리를 먼저 등장시켜 시청자로 하여금 얼굴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충분히 남태식과의 사이에 관계를 만들고 시청자에게도 익숙해진 상태에서 비로소 사건의 피해자로서 보여지도록 하는 것이다. 남태식이 놀랄 때 함께 놀라고 남태식만큼은 아니더라도 슬퍼하고 분노하고, 최소한 남태식의 행동에 공감할 수 있도록.
그런데 정작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 조민주(송지효 분)의 친구가 실종된 사건에서부터, 그리고 이유리의 경우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남태식과 얼굴이나 익히는 정도였다. 첫사수의 딸이라고 해봐야 남태식에게나 의미가 있지 시청자들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텍스트처럼 한 번 읊조리고 지나간 관계 따위 아무리 울고 화내고 해봐야 그다지 와닿는 것이 없다.
그렇게 연기가 서툰 배우들은 아닐 것이다. 송지효와 김준(신동진 역)는 몰라도 송일국(박세혁 역)이나 성지루나, 김선경이나, 이종혁이나, 나름대로 연기가 되는 배우들이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그렇게 연기가 어색할 수 없다. 왜 그렇게 소리지르고 오버하고 맥을 끊는 연기를 보여주는가? 결국은 그것 아닐까? 배우들 자신도 감정의 선을 잡기가 힘들다. 사전제작도 아니고, 촬영 직전에야 대본이 오는데 그 대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니.
전혀 상관도 없는, 그것도 조민주의 친구의 친구인 서혜란의 실종에서부터 시작된 사건은, 그저 스치듯 이유리에까지 이르더니 남태식을 폭주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친구의 친구라는 인연이 있음에도 조민주와 서혜란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다. 역시나 어떤 관계도 서사도 없이 그저 납치되었다가 도망쳐나와서 입원했다가 다시 납치되어 죽을 뻔한 것을 살린다. 이유리 역시 남태식을 폭주하게 만들었을 뿐 사건해결에 있어 아무런 단서나 유기적 고리 역할도 하지 못한다. 모두가 따로따로 흩어져 있고 개별적으로만 존재하며 사건의 해결이라는 것도 우연과 편견에서 비롯된 증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가운데 감정의 흐름을 잡아 연기하는 것이 쉬울까?
더구나 문제가 13화를 보면서 어느 순간 범인이 누구인가를 이미 알아채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비슷한 내용의 만화가 있었다. 일본의 추리만화 <사이코메트러 에지>에서 역시나 피해자들을 안심시키는 경찰 연쇄살인범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피해자들을 찾아 죽이는 방식이 <사이코메트러 에지>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작가의 스타일도 도입부에서 이미 한 번 범인을 보여주고 반전 아닌 반전을 시도하는 방식이기에 읽기가 쉬웠다. 아무래도 여성들이 밤늦은 시간에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란 달리 없지 않겠는가. 다만 그럼에도 그와 관련한 유기적 구조가 없다는 것은 <강력반>이 갖는 고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표절이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작가가 안이하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가. 오죽하면 지영호와 피해자 사이의 유기적 관계마저 설정해 놓고 있지 않다. 실제 사건에서도 최초로 피해자를 선택해 죽이는 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났고 어떻게 사건이 여기까지 진행되었는가? 정작 텐프로, 텐프로, 노래를 부르면서도 왜 텐프로인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최소한 <사이코메트러 에지>에서는 왜 그래야 했고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보고 나서 남는 것은 그저 지영호는 사이코패스일 뿐이다. 그리고 조민주가 쓴 ‘불우한 어린 시절이 지영호를 사이코패스로 만들었나’와 같은 뜬금없는 주제의식 뿐. 안이한데 차라리 평범하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무리한 욕심으로 그마저도 남아있지 않다.
항상 느끼는 것이다. 추리라는 것은 증거와 증거를 잇는 것이다. 증인과 증인을 잇는 것이다. 논리라는 것은 객체와 객체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개연성이며 그것이 구조다. 따로따로 떨어져서는 그건 조각에 불과하다. 조각은 그 자체로는 몰라도 단순히 모아놓고서는 작품이 될 수 없다. 그렇게 조각들을 이어가는 것이 추리물이고 수사물일 것이다. 스릴러라고도 한다. 그런데 <강력반>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강력반>의 이야기들을 엮어주고 이어주고 있는가? 캐릭터들은?
아니 심지어 드라마의 또 다른 한 축이던 - 아니 오히려 중심을 이루던 박세혁과 허은영의 갈등마저 어느샌가 풀어져 허은영의 눈물나는 신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해였다고 다시금 미련을 끄집어내는 허은영에 대해 박세혁은 영영 이별을 선언하고. 그런데 거기서 이별을 선언해봐야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제 정일도와 허은영 사이에도 계기가 생길까? 캐릭터 사이의 밀고 당기고 서로 부딪히고 하는 부분이 사라지고 나니 이게 과연 멜로이기는 한가. 또 한 축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상당히 흥미로울 뻔한 소재였다. 잘만 만들었다면 꽤나 시청자를 놀라게 만들만한 그런 설정이었다. 불우한 과거로 인해 사이코패스가 된 범죄자가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런데 연쇄살인 자체도 그다지 충격적일 것이 없었던 데다가 그것을 밝혀내는 과정마저 ‘사이코메트리’라는 초능력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다. 설득력 없이 우연에 의존해 밝혀낸 사실들은 전혀 현실과 닿는 접점 없이 붕 떠 있을 뿐이고. 그런 상황에 또 작가는 괜한 욕심을 부리느라 지영호에게 5년 전 사건의 비밀의 열쇠를 들려준다. 정일도와 박세혁 앞에서 그것을 말하도록. 정작 원래의 사건보다는 이게 더 커 보일 정도다.
조금은 더 타이트하게 조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있으면 조금 더 타이트하게 조여서 압축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시청자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밀도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잇는 것인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미 준비된 재료들을 충실히 사용하는 기술도 필요할 것이다. 부분부분은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데 모아 놓고 보면 축구공을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다고 그것이 하나의 구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위태하고 불안하다.
어쨌거나 정말 최악이었다. 조민주의 입을 빌어 흘러나온 저 대사는. 보기에 섬뜩하지 않았느냐며 인상을 묻고, 혹시라도 집안이 지독하게 불우했던 학생이 없었느냐며 편견을 확인시켜준다. 그런 아이들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고, 범죄자일 가능성도 높을 것이라고. 그것을 굳이 초등학교까지 찾아가서 묻고 그것으로 범인을 잡아내는 작가의 센스에 그저 감탄할 뿐. 놀라울 뿐이다.
마치 어디서 본 듯한 뻔한 설정과 구성에, 그러나 전혀 어떤 치밀함이나 정교함도 보이지 않는 허술함, 그리고 그로 인해 조각조각 쪼개진 채 표류하는 구조까지. <강력반>이라는 드라마가 갖는 문제들을 그대로 압축해 보여주는 듯했다. 그것이 주제였을까?
아직도 나는 이 드라마의 성격을 모르겠다. 수사드라마라기에는 수사의 비중이 너무 작고, 멜로드라마라기에는 그마저도 이제 비중이 거의 사라졌다. 과연 지금 뭐가 남았을까?
다음주에도 또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 이제는 화가 나려 한다. 지켜 봐 온 시간들이 아까워지려 하고 있다. 상식적인 걸 욕하는 것뿐이다. 기본이다. 참으로 슬퍼지는 드라마다. 안타깝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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