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은 않겠어요 - 윤수일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운줄 알았다면
차라리 당신만을 만나지나 말~것~을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그 추억이 또다시 온다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그 추억이 또다시 온다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
가사 출처 : Daum뮤직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트로트를 부를 때의 윤수일의 목소리는 배호를 닮았다.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기교없이 담백하고 간결한 목소리에 깊은 감정을 담아낸다.
딱 멜로디가 트로트다. 그런데 그 뒤로 둥둥둥 흥겹게 퉁기는 베이스의 리듬이 있다. 드럼의 비트도 힘있게 경쾌하다. 정교한 밴드 사운드에 실린 정겨운 트로트의 멜로디. 트로트고고다.
1975년 대마초파동이 일어나고 가요계정화운동이라는 것이 시작되면서 겨우 싹을 틔워가던 한국의 록과 포크는 일대 철퇴를 맞게 된다. 신중현을 비롯 많은 음악인들이 약쟁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채 무대로부터 퇴출되었고, 남은 이들도 갈 곳을 잃은 채 표류하기 시작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암흑기였다.
한국땅을 떠나거나, 음악을 등지거나, 아니면 시류에 영합하거나. 더 이상 희망을 잃은 음악인들은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타협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밴드를 하며 세련된 팝과 록을 연주하고 부르던 음악인들이 통속적인 트로트를 부르고 연주하게 된 것이었다.
하기는 워낙에 음반도 안 나가고 음원수입도 알량하고 하니 행사수입이나 노려보자고 얼마전부터도 트로트가 대세가 된 적이 있었다. 음악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 결국 음악인들은 통속성에 기대게 된다. 다만 차이라면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다는 것. 뉴트로트 트로트고고의 등장이었다.
스탠다드나 록을 연상케 하는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창법과 밤무대를 통해 단련된 튼실한 밴드사운드, 멜로디는 전형적인 트로트의 그것이었지만 양식적으로 한결 진일보한 형태의 음악이었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트로트를 불러야 하겠지만 밴드 사운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타협의 산물이며 고집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것은 트로트의 진화이기도 했다.
'사랑만은 않겠어요'도 그런 노래였다. 윤수일의 음악적 뿌리 또한 다름아닌 밴드에 있었다. 골든그래입스의 기타리스트로 처음 무대에 올랐고,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부를 때도 윤수일이라는 개인이 아닌 윤수일과 솜사탕이라는 밴드의 이름으로였다. 하필이면 밴드 이름이 솜사탕인 이유는 밴드 이름에 영어를 쓸 수 없다는 당시의 정책 때문에. 참 어이없는 일들이 당연하게 일어나던 때였다.
참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돈과 인기를 얻기에는 당시 이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아직 록의 저변이 생기기도 전에 그런 일이 있었기에 그것은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윤수일도 트로트를 불러야 했었다. 트로트가 나쁘다거나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노래가 좋았고 윤수일의 노래가 훌륭했기에 '사랑만은 않겠어요'는 큰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윤수일은 바라던대로 명성을 얻었고 돈을 벌 수 있었다. 차이라면 그대로 트로트에 안주하고 만 다른 많은 선배나 동료들과는 달리 윤수일은 조용필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얻은 부와 인기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음악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것일 게다.
조용필에 많이 가리기는 했지만 윤수일이 밴드음악인으로써 한국의 대중음악사에 남긴 발자취는 매우 크다. 주류무대에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하드한 밴드사운드를 들려주었고, '아름다워'나 '환상의 섬'같은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도 대중적으로 성공시키고 있었다. 오히려 트로트가수라는 이미지가 그 음악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듯한 저평가된 음악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가 이룬 음악적 성과를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트로트를 부르는 윤수일이란 가치가 없는가?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랑만은 않겠어요'도 무척 훌륭한 노래다. 트로트를 부르는 윤수일의 목소리는 유현상만큼이나 독특한 매력이 있고 사람을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때로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듣고 곧잘 따라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록커 윤수일도 좋지만 트로트가수 윤수일도 좋다. 노래 또한 좋다. 다만 그의 음악적 지향이 밴드에 있었고 밴드음악인으로서의 업적이 더 커 보인다는 것 뿐이다.
아무튼 들을수록 맛이 나는 노래다. 그리고 목소리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했더니만. 내가 또 배호의 목소리를 그리 좋아한다. 하기는 탄탄한 보컬의 뒷받침 없이 그의 음악이 그렇게 크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보컬리스트로서도 그는 탁월하다. 보컬리스트로서만 보았을 때 조용필보다도 위라고 본다.
문득 떠오르는 노래. 하여튼 가끔씩 윤수일의 노래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역시 내 음악적 취향은 조용필보다는 윤수일에 가깝다. 들을수록 맛이 나고. 그래서 즐겁고.
오래도록 음악을 하며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한 번은 동갑내기 친구인 유현상과도 함께 록콘서트를 열어보아도 좋을 테고. 위대한 탄생도 함께 하면 너무 커질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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