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로열 패밀리 - 죄와 자기연민...

까칠부 2011. 4. 30. 15:02

공순호(김영애 분)는 변호사 김태혁(독고영재 분)을 앞에 두고 이렇게 입장을 토로한다.

 

"JK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토록 강하기만 한 공순호다. 거칠 것 없이 단호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인물이 다름아닌 공순호라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약한 부분은 있다. 고민하고 회의하고 갈등하며 때로 후회도 한다. 눈물도 흘린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말한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 역시 피해자다. 여성으로써, 엄마로써, 그리고 인간으로써, 그녀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남편 조경탁으로부터, 아들 조동호로부터. 온전히 딸 조현진(차예련 분)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JK라는 존재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힌다. 그녀 또한 JK에 잡아먹힌 희생자다.

 

물론 JK가 스스로 사고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을 테니 결국 그 모든 것은 공순호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터다. 하지만 그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순간에조차 JK에 기대며 JK로부터 이유를 찾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그녀가 공순호인 이유일 것이다. 가장 야비하고 악랄하며 잔인한 순간에조차 그녀는 당당하다. 한 점 거리낌이 없다. 회의하고 갈등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드는 순간 어느새 그녀는 JK의 총수로 돌아와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모든 가치의 위에 군림하며 다른 이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죄마저도 그녀의 앞에서 의미가 없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당위와 필연이. 그녀로 하여금 그리 내몬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조차 그녀는 자신의 죽음마저 이용해 김인숙을 죽이려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의무로써. 그것은 죄가 아닌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마지막 공순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헬리콥터에 올라 탈 때 김인숙(염정아 분)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그토록 기다려 오던 것이기도 했다. 징벌. 단죄. 죽음.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자기로 인한 것이 아닌 조니 헤이워드의 죽음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고 그토록 원망하며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려 한 이유와도 닿아 있다. 항상 그녀의 곁을 지켜주던 엄기도(전노민 분)에게 내뱉던 절규다.

 

"이 저주받을 운명이..."

 

그녀가 그러고자 해서가 아니다. 음모를 꾸며 시아주버니인 조동진(안내상 분)을 궁지로 몰고, 동서인 임윤서(전미선 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침내 속임수와 계략으로 JK클럽 사장과 마지막에는 공순호로부터 JK그룹의 회장자리까지 얻어낸다.

 

결코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단들이었다. 정의롭다거나 윤리적으로 떳떳하다거나 당당하게 내세워 말할 수 없는 방법들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녀는 그런 상황에조차 말한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인간으로서의 증명을 위해 끝내 그녀는 아들 조니 헤이워드를 부정하고 거부하며 조니 헤이워드로 하여금 자신을 찌르도록 만든다. 조니 헤이워드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을 때 아마 그녀가 보았던 것도 그런 상황으로 내몬 바로 그 저주받을 그녀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끝까지 자기가 조니 헤이워드를 죽였다며 죄를 뒤집어쓰고자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래야 괴로울 테니까. 그래야지만 고통스러울 테니까. 고통이야 말로 그녀의 죄가 그녀와 유리되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신의 죄로 인해 스스로 괴롭다. 자기로부터 비롯된 죄가 아니라 운명이 그리 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녀 또한 죄의 희생자다.

 

더욱 자기를 몰아세우며. 그녀의 JK와 공순호를 향한 음모와 야망은 그로부터 더욱 가속화된다. 그러려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면죄부가 주어진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것은 당연한 의무이며 책임이다.

 

자기연민이다. 자기를 불쌍하게 가련하게 여기는 것이다. 공순호가 그랬고, 김인숙이 그랬다. 조현진 또한 한지훈 앞에서 이렇게 한탄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JK라는 단어가 입력된 GPS야."

 

조동진이 잔혹해질 수 있었던 이유. 초반 있는 듯 없는 듯 어쩌면 가장 점잖은 캐릭터였던 조동진이 경솔하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캐릭터로 돌변하게 되는 것도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이다. 아내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분노다. 그것이 엄기도에게로 향하고 김인숙에게로 향하며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게 된다. 동생 조현진조차 더 이상 동생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을 악으로 내모는 주문인지도 모르겠다. 판도라의 상자에 모든 불행과 절망 가운데 마지막 남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단어이리라.

 

"어쩔 수 없었어."

 

자기연민이 주문이다. 죄를 짓는 그 순간에도 그 죄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악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그 악은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자기도 피해자다.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장 지독한 자기애다.

 

그래서 김인숙은 죽어야 했다. 그녀의 운명이 그리 시켰으니까. 공순호 역시 김인숙을 죽여야 했다. 그녀의 운명이 그리 시켰으니까. 김인숙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한지훈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과 함께 하려 했을 때 거부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기연민이란 지극한 자기애일 테니까. 도취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자기 자신에게마저. 그리고 그 곁에 운명처럼 한지훈이 있다.

 

어째서 김인숙은 한지훈 앞에서 위악의 가면을 벗어던졌는가? 위악이란 위선이니까. 스스로 옳다고 바르다고 잘못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사람은 위선의 가면을 쓰고 위악의 가면을 쓴다.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서. 스스로 당당하기 위해서. 그런데 한지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차라리 욕하고 침을 뱉었다면. 비난하고 돌을 던졌다면. 그러나 한지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철저히 비웃고 조롱했다. 그녀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죄의 뒤에 숨으려는 그녀 자신을 비난했다. 벌거벗은 알몸을 드러내 보인 채 희롱하려 들었다. 그것은 단죄보다 더한 부정이었다. 김인숙 자신이 조니 헤이워드를 부정했듯.

 

비극이 그녀를 내몬 것이다. 비극에 도취된 그녀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비극에 빠진 연기를 하도록 내몬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렇게 그녀는 다시 한 번 피해자가 되어 동정을 받고 관용을 구한다. 아들임을 인정해달라 스스로를 찔러야 했던 조니 헤이워드처럼 그녀 자신도 자기를 찌를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처벌도 단죄도 없이. 그렇게 그녀는 용서 아닌 용서를 받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죽어야 했다. 행복하기만 한 결말은 그녀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연민에 빠져 있기 위해서는 단죄가 필요했다. 응징이 필요했다. 다시 한 번 그녀를 절망으로 떨어뜨려야 했다. 그 또한 자기연민이며 자기애일 것이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악이며 죄가 바로 자기에 대한 거부이며 파괴다. 자살이다. 그 자살조차 공순호의 손을 빌고자 했던 것이 김인숙 나름의 미학이었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드라마는 김인숙과 공순호의 자기연민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내내 드라마를 채우고 있던 것도 그녀들의 자기변명들이었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자기 연민에 빠져 암호랑이의 가면을 쓰고 있는 공순호와 자기 연민 속에 자기를 학대하며 암호랑이의 먹이를 욕심내는 겁먹은 여우 김인숙과. 그녀들로 하여금 악으로 빠져들고 죄를 짓게 만드는 이유. 그녀들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게 만드는 원인에 대해서.

 

하기는 공순호와 김인숙 만일까? 엄기도가 JK와 공순호를 배반하고 김인숙을 싸고 도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임윤서가 김인숙에게 가혹했고 남편 조동진에게 단호할 수 있는 이유도 로열 패밀리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게 탓을 하고 이유를 대고 타협을 한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옳고 그르고는 나중의 문제다. 과연 양심에 떳떳한가? 그를 위해서.

 

조금 엉뚱하게 빠져버렸다. 처음에는 실존적 죄와 속죄에 대해 다루는 듯 싶더니. 18회에 들어 급작스런 분위기의 전환은 그 모든 것을 김인숙의 자기애적인 자기연민으로 바꾸고 말았다. 물론 어느새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공순호의 마지막 병상에 누운 모습도 한 몫 했을 것이다.원래 이것을 노린 것이었을까?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그런 운명과 필연에 대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바로 그런 것들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였을까? 인간의 나약함과 죄에 대해서.

 

과연 김인숙은 구원받았을까? 구원받았다. 입멸. 그녀의 죄로부터, 그녀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무엇보다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한결같이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한지훈이 있다. 그 이상이 있을까?

 

일본 소설 <인간의 증명>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단지 모티브만을 따왔을 뿐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의미하는 바도 다르고 이야기하고 있는 바도 다르다. 남는 것도 다르다. 과연 좋은 것일까? 안 좋을 것일까? 이때까지 숨가쁘게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만.

 

조금 더 여운을 즐기며 곱씹으려 한다. 그 시간들에 대해서. 그동안 들려왔던 이야기들에 대해서. 내면에서 들려오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재벌드라마라고 하지만 간만에 인간에 대해 제대로 탐구한 멋진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답이야 각자 나름대로. 엔딩처럼.

 

각자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재미있었는가? 의미있었는가? 무엇을 보았고 들었는가? 생각했는가? 그러나 그런 시간들이기에 의미가 있다. 제작진과 배우들에 감사한다. 훌륭한 값진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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