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었을 때 농담인가 했다. '너를 위해'가 실린 임재범의 4집 앨범 'Story of two Years'가 발표된 것이 2000년 5월 16일, 딱 11년 전이다. 그 동안 아예 묻혀 있던 노래도 아니었고 영화 '동감'의 OST등으로 대중에 널리 들리고 불려졌던 노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뮤직뱅크 1위 후보.
물론 그 동안에도 그런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말한 '너를 위해'만 하더라도 임재범이 워낙 방송활동이라는 것을 거의 하지 않는 타입이다 보니 그대로 묻혔다가 영화 '동감'에 OST로 삽입되면서 뒤늦게 히트했던 노래였다. 영화나 드라마의 OST로 쓰이면서, 혹은 다른 이유로 이슈가 되면서 묻혔던 노래가 다시 발굴되고 재평가되는 경우가 해외에서도 종종 있어왔었다. 다만 그렇더라도 이런 식으로 11년 전 노래가 새삼스럽게 차트에서 수위를 다투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았을까. 초유의 사태일 것이다.
어쩌면 서글픈 현실일 것이다. 과거 오히려 그보다 더 크게 이슈가 되었던 노래들도 대개는 잠시 차트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지 이내 찻잔속의 태풍으로 사그라든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대중음악의 저변이 넓고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신곡이 나오고 그 신곡이 소비되고 있었다. 그런 신곡을 소비하는 대중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이슈로 인해 바람이 분다고 그것을 버텨낼 토양이 튼튼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의 현주소는 어떤가.
시대를 뛰어넘기에 명곡이라 하는 것일 테지만 사실 노래라는 것은 시간을 많이 탄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정서와 언어가 있다. 노래는 바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정서이고 언어일 것이다. 아무리 레드 제플린이 전설적인 록밴드라고 지금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이 60년대, 70년대 당시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듣던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틀스에게는 비틀스의 시대가 있고, 너바나에게는 너바나의 시대가 있고, 오아시스에게는 오아시스의 시대가 있다. 마돈나는 여전히 건재하여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역시 지금의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인 것이다. 조용필이 아무리 가왕이라 불리고 있어도 서태지의 시대에는 서태지가 맞고, 소녀시대의 시대에는 소녀시대가 더 와 닿는 것이다. 과거의 명곡이고 명가수라 할지라도 새로운 시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새 시대에는 새 노래와 새 가수가. 그 시대의 정서와 언어를 대신할 수 있는 음악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일단 한 번 음악이 발표되고 나면 누군가는 그 음악을 듣고 부르게 될 것이다. '너를 위해'만 하더라도 도대체 얼마를 들었던가.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섰을 때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두고 비판하던 것도 바로 임재범 자신이 부른 '너를 위해'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2000년 그가 부른 '너를 위해'와 비교해서 지금의 무대는 어떻다. 그렇게 계속해서 듣고 부르고 있었다면 새삼 이슈가 되었다고 마치 신곡을 대하듯 그렇게 소비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새삼스레 관심을 가지더라도 완만하고 느슨하게 반응이 올 것이다.
그래서다. 대부분의 때늦은 이슈들이, 심지어 리메이크 앨범들마저 그다지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마는 것은. 음악에 담긴 시간이 다르고, 그 동안에 음악과의 누적된 관계와 기억이 있다. 고작 잠깐의 이슈로 흔들리기에는 그 뿌리가 깊고 굳건하다. 그만큼 대중음악시장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대중이 항상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자기 음악을 늘 가까이에 두고 있다는 뜻일 테니. 굳이 잠깐의 이슈에 일희일비하며 그에 편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은 그런 대중들에 맡기면 된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니까. 당장 음원사이트에 돈을 지불하고 가입한 사람들의 수가 고작 250만 명 정도다. 김건모가 한때 250만장의 음반을 팔아치우기도 했었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흔들리고 마는 대중의 수가 과거와 같다는 전제에서 기 비중과 역할이 비교할 수 없이 커지고 만 것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 직접 여론을 주도하고 차트의 순위를 결정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는 더 적을 것이다. 외풍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박재범이 음반판매량만으로 디지털음원이며 방송점수며 시청자선호도까지 다 낮은 점수를 받아놓고서도 1위를 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워낙에 사람들이 음악을 듣지 않으니까. 직접 돈을 주고 음악을 사서 소비하지 않으니까. 협소한 시장에서 팬덤의 화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조차도 더 이상 아이돌이 팬덤에 의존해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돌 시장마저 위축된 상황에서 그렇다. 아이돌만이 겨우 살아남게 된 현실인 것이다.
결국은 임재범이 11년 전 노래로 뒤늦게 <뮤직뱅크>라고 하는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1위후보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나는 가수다>라고 하는 예능프로그램의 위력도 위력이겠지만, <나는 가수다>라고 하는 예능프로그램 하나에 휘둘릴 정도로 가요계 전반의 체력이 약해졌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예전에도 이슈를 쫓아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만큼 전반적으로 대중음악의 환경이 악화된 증거인 셈이다. 안타깝다고나 할까?
정말이지 좋아했던 가수이기 때문에. 그는 전설이며 신이었다. 아마 필자의 또래, 혹은 필자의 또래를 전후해서 많이들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정말 특별했었다. 그의 노래들이 좋았고 그가 부르는 노래가 좋았었다. '너를 위해'도 필자가 좋아하고 즐겨 듣는 노래 가운데 하나다. 노래방에서도 어설픈 솜씨도 곧잘 부른다. 그런데도 이번 <뮤직뱅크> 1위 후보를 그저 반갑게만 대할 수 없는 이유. 그것이 비정상이기 때문에. 오래된 노래가 이슈가 되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1위후보까지 갈 수 있는 현실이 너무 기괴하기 때문에. 이것이 한국 대중음악의 현주소다.
물론 그런 건 있겠다. 현재 <뮤직뱅크>에서 1위를 하고 있는 박재범의 종합점수가 역대 <뮤직뱅크> 1위 가운데서도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화력 좋은 인기아이돌, 가수들은 최근 거의 활동은 안하고 있다. 아마 그런 것도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아마 인기있는 아이돌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안이라면 이런 결과까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결과는 결과니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11년 전 노래가 지금 한창 활동중인 노래가 1위를 다툰다는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유효기간도 한참 지난 노래가 한창 새로 발표해서 활동하고 있는 노래가 1위를 다투고, 그나마 다른 노래들은 한참 순위에서 밀려 있다. 정상일까? 바로 이런 것들이 소수 팬덤에 의해 가요계가 좌지우지되는, 팬덤을 확보한 아이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 아니겠는가.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 이유없는 결과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대중음악으로부터 유리되기 시작한 대중들. 스스로 지갑을 열고 음악을 구매하지 않게 된 사이 대중음악의 시장은 축소되고 척박해지며 더욱 대중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척박해진 만큼 더욱 좁아지고 얕아진 대중음악의 저변은 외부의 충격에 취약해지게 되었다.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아이돌 팬덤에 의해 지금의 대중음악시장이 지탱되어지고 있는 이유인 셈이다. 과거의 임재범과 지금의 박재범 두 재범이 각각 <나는 가수다>라는 예능프로그램과 팬덤을 등에 업고 1위를 다투고 있는 현실인 것일 테고 말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 대중음악의 현주소다.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터다.
물론 하지만 그런 것이야 대중음악 시장이 그런 것이고 가수 개인으로서는 어찌되었거나 1위후보까지 하게 된 것일 게다. 아마 가수인생 가운데 처음으로 공중파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1위후보까지 해보고 2위에 올라보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축하의 말을 건넨다. 앞으로도, 아니 임재범 말고도 중견과 원로 가운데서도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도 1위후보도 많이 나왔으면. 바람일 뿐이지만 말이다.
입맛이 쓰다. 좋으면서 한 편으로는 불편하다. 좋아하는 가수가 1위후보가 되었는데. 좋아하는 노래가 이제라도 인정받고 2위에까지 올랐는데.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에 대해서. 현실에 대해서. 비애일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을까. 안타까운 것이다.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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