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나는 가수다 - 악성 스포일러의 이유...

까칠부 2011. 5. 27. 20:32

음모론이란 믿고 싶은 진실과 믿고 싶지 않은 사실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자위적 노력이다. 한 마디로 마스터베이션이다. 상대 없이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만족해 버리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때 사람들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아닐 거야. 그런 건 아닐 거야. 논리를 만들고 그 논리로써 근거를 만들고 만들어진 근거로 다시 논리를 만들고 점차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다시 말해 최근 불거지고 있는 MBC의 예능프로그램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와 관련한 수많은 의혹과 논란들은 단지 그러기를 바라는 대중의 프로그램 길들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절대적인 당위는 그것에 도덕적 의무를 부여한다. 도덕적 의무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죄가 되고 악이 된다. 단죄해야 한다.

 

먼저 타겟을 정한다. 공격을 시작한다. 그런데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공격에 힘을 더하고자 주위를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혹은 실제 그렇게 믿는다. 모두가 동참해 자신들이 바라는 바대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처음에는 사실을 파헤치다가 그것으로 부족하게 되면 사실을 만들어내게 된다. 사소한 것들까지 끌어들여 이유로 삼다가, 그 이유를 위해 사실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목적은 때로 수단을 정당화한다. 거짓말 또한 당연한 정의를 위한 훌륭한 수단일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

 

결국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와 관련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와 관련한 어떠한 도덕적 당위를 관철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실천적 명제는 도덕적 당위가 된다. 정의가 된다.

 

아마도 그것은 <나는 가수다>의 홍보가 가져온 부작용이기도 할 것이다. 가창력 있는 가수가 대우받아야 한다. 그것은 실천을 위한 명제다. 하지만 그것이 도덕적 당위로 여겨지게 된다면? 가창력 있는 가수가 반드시 대우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 현실과 대비되며 정의는 더욱 절대적 당위가 된다.

 

<나는 가수다>의 방영을 계기로 부쩍 거세진 아이돌을 비롯한 비주얼형 가수들에 대한 비난과, 심지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게 되었고 그 후보로 거론된 가수들에 대한 단정적 평가와 인신공격, 더불어 <나는 가수다>에 대한 당연한 자기 의견조차 여론이 무서워 감히 입밖에 내놓지 못하도록 하는 강압적 폭력성.

 

그래서 그들의 정의는 그들이 내세운 기준에 미치는 옥주현을 비난하게 되는 것이고, 그들의 정의를 상징하는 것 같은 임재범을 희생양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그 원인을 제공한 프로그램과 제작진에 그 책임이 돌아가게 된다. 더구나 PD가 그들의 정의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방송에서 함으로써 불을 붙였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폭력적 수단을 통해서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집에서,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체화한 정의일 것이다. 더구나 프로그램이 내세운 실천적 명제를 도덕적 당위로 - 정의로 받아들이면서.

 

그래서 말을 만들고 말을 근거로 논리를 만들고 그 논리를 근거로 세력을 만들고. 대중은 실체화되고 폭력으로써 구체화된다. 너무 사랑하기에 부수고 만다. 슬픈 현실일 것이다.

 

과연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아끼기 때문인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인가? 그보다는 그런 자신을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때문인가?

 

유아적 단계에서 사람은 나와 남이 다른 것을 안다. 나와 남이 다르고, 서로 유기적이면서도 별개의 존재임을 알고, 그리고 별개로 존재하는 법을 알게 된다. <나는 가수다>도, 아니 그 어떤 것도 항상 내 뜻과 온전히 일치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것이 반드시 같기 때문은 아니며, 아낀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해서임이 아님을 알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런 사랑의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

 

보면서 사람들이 애처롭다고 여기는 것은 그래서다. 저들은 저것이 사랑인 줄 안다. 정의라고 착각한다. 그렇게 믿고 부끄러움이 없다. 보는 사람이 오히려 부끄럽다.

 

유명세라 생각하면 되겠다. 너무 관심이 과열되었다. <나는 가수다>가 홍보를 위한 명제가 당위가 되어 믿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열기를 가라앉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JK김동욱이나 옥주현의 출현에도 그런 의도가 섞여 있는지 모르겠다. 대중의 반발은 그만큼 그같은 사실이 받아들여질 때 한결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통과의례라 생각한다. 단지 상당히 성가신 통과의례다. 성장통이라고나 할까? <나는 가수다>가 오래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어쨌거나 대중은 결국 존재하는 사실이 아닌 믿고 싶은 진실을 쫓는다. 확인하게 된 한 예라 하겠다. 언론도 한 몫 하기는 했지만. 결국 따져보면 시작은 아닐지 몰라도 진원지는 언론이다. 항상 비판받으면서도 항상 문제는 언론에게서 비롯된다.

 

한 걸음 떨어져서. 조금은 냉정하게. 재미없으면 그냥 보지 않으면 된다. 시청율은 시청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제수단 가운데 하나다. 거리는 중요하다. 그것을 알 필요가 있겠다. 안타깝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