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한국 대중음악과 뽕끼...

까칠부 2011. 6. 14. 15:24

솔직히 이런 글 쓰는 거 귀찮은데... 괜한 시간과 노력만 들고 생기는 건 없이 읽는 사람도 없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상태도 안 좋은데.

 

아무튼 정리하자면, 흔히 말한다. 한국의 대중음악에는 뽕이 있다. 뽕짝 할 때 그 뽕이다. 그런데 트로트야 말로 한국 대중음악에 흐르는 정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 지금도 어디 가면 모여서 노래 부를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트로트다. 가장 생명력이 긴 것도 트로트고. 그러면 무언가?

 

일단 뽕이라 하면 가장 널리 쓰이는게 어떤 특정한 멜로디나 코드를 뜻한다. 소녀시대의 "Gee"에도 바로 이 뽕이 있다.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게 티아라일 테고. 아, 애프터스쿨의 유닛그룹 오렌지 카라멜도 바로 이 뽕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노골적으로 쓰이는가. 아니면 적절히 숨겨서 쓰는가.

 

그리고 또 하나가 목소리에 담긴 뽕일 것이다. 장윤정이 그랬지. 댄스곡 부르고 있는데 와서는 목소리에 뽕이 있다며 트로트 해보지 않겠느냐고. 여기서의 뽕이란 장윤적 특유의 콧소리였을 테지만. 여기에는 비브라토라든가, 발성이라든가, 음색이라든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정점에 있는 게 "구성지다." 나는 이 구성지다의 극점을 임재범으로 놓는다.

 

어째서 뽕과 성량은 관계가 있는가? 성량은 이후 고음이 되었다. 이를테면 어른들이 노래 잘 하는 사람을 두고 흔히 하는 "목청이 좋다."와 관계가 있다. 목청이 좋다는 건 울림통이 좋다는 것이다. 크고 우렁차다. 그리고 이것이 위로 솟구쳤을 때 고음이 된다. 대략 80년대 이전에는 성량이었고 90년대 이후부터는 고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한 가지 목청이 좋은 한 가지로 수렴된다.

 

그러면 목청이 좋은 것이 어째서 뽕과 이어지는가?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것이다. 아니 이승철 버전과 비교해 보면 안다. 후렴의 "사랑해"에 대해 두 노래에서 어떤 느낌을 받는가? 전자는 그만큼 처절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절규에 가깝다. 후자는 그에 비해 노래같다. 전에도 아마 이야기했을 것이다. 고음이 곧 감정표현이다. 성량이 곧 감정표현이다.

 

감정이 고조되는 어쩌는가? 소리를 지른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또 커진다. 울음소리를 닮으려면 꺾임이 있어야 한다. 속으로 삼키려면 굴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성과 비브라토와도 이어지는데, 비브라토가 좋으려면 또 성량이 좋아야 한다. 성량이 딸리는 비브라토는 가녀리다. 충분히 감정을 실어 전하려면 성량은 기본으로 받쳐주어야 한다. 고음이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다만 80년대 이전 노래를 듣던 사람들 가운데는 이후의 고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역시 중저음에서 깊이 있는 소리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구성지다는 게 그런 것이다. 일단 성량이 좋아야 하고, 떨림이 좋아야 하고, 적당한 비성으로 기름칠이 되야 하며, 꺾임 등의 기교가 필요하다. 일단 목청이 좋아야 구성지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후련하게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는 고음. 결국은 소리로써 감정을 표현한다. 이를테면 가사전달력이 좋은 밥 딜런 같은 타입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잘 하는 노래가 아닌 셈.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있는 해외의 팝가수나 노래들을 들어봐도 그런 경향은 뚜렷하다. 예를 들어 스틸하트의 "쉬스곤"같은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나 인기가 있다.

 

물론 그것이 우리만의 성향이냐? 단지 우선해 좋아하는 것 뿐이다. 그렇지 않은 노래나 가수도 히트한 적 많고, 해외에도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노래나 가수들이 얼마든지 있다. 일반적인 성향이란 그러한 무수한 다른 다양성을 배제한 그 가운데 일관할 수 있는 특정한 어느 것이다.

 

과연 김광석의 그 거친 비브라토가 아니었다면 김광석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불려졌겠는가. 김광석이 원래는 매우 미성으로 데뷔하려 했었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하마트면 전설 하나를 잃을 뻔했구나. 물론 미성에도 뽕은 있을 수 있다. 결국은 어떤 특정한 하나가 아니라 그러한 비슷한 성향일 테니까.

 

자세한 내용은 아마 찾아보면 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은 것을 많이 보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상은 초과노동이므로 생략. 어째서 조용필과 윤수일의 록은 듣는데 이후의 다른 록을 사람들은 안 들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하는데. 그렇다는 거다.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