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대로 했는데 떨어졌네요. 이제 우리 맘대로 할 거야!"
그게 바로 밴드다! 심지어 16강 진출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조차 코치와 대립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다는 바로 그것이. 단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뿐 누구의 지배도 간섭도 받지 않는다. 우리의 음악은 오로지 우리의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체리필터의 대답 또한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 줘. 알았지?"
체리필터 역시 밴드일 테니까. 코치로써 그들을 가르치고, 또한 심사를 하고 결정을 내릴 때는 그 역할에 충실하지만 그들 또한 밴드인 터다. 밴드란 자기 자신으로써, 그 음악으로써 증명된다. 지금 우월한 위치에서 심사하고 판단을 하지만 결코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밴드음악의 진정한 가치는 밴드 자신에게 있다. 그것을 보여달라.
차라리 체리필터가 보는 눈이 부족한 바보가 되는 쪽이 낫다. 결국 떨어진 진수성찬이나 이븐더스트가 어딘가 다른 무대에서 그들이 보지 못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면 그쪽이 훨씬 더 낫다. 단지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이 아니라, 심사하고 심사받는 처지여서가 아니라 대등한 음악인으로써. 역시 다른 오디션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하기는 정원영을 대신해서 정원영조의 코치를 대신 맡게 된 한상원은 심지어 톡식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즉석에서 잼을 갖고 있었다.
"그냥 궁금해요. 이 팀에 베이스가 들어가서 잼을 하면 어떤 사운드가 나올 지..."
잼이란 아무래도 배우는 학생보다는 자기가 인정하는 연주자를 만났을 때 하고 싶어지는 것일 터다. 아무말없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잼을 제의하고 즉석에서 연주를 갖고. 비록 코치를 맡아 가르치고는 있지만 그 이전에 음악을 하고 연주를 하는 같은 음악인이라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만큼 톡식의 연주는 훌륭한 것이었다.
아무튼 흥미로웠다. 체리필터가 자신의 조인 블루니어마더, 진수성찬, 2Stay, 이븐더스트를 만나 처음 주었던 즉석 자작곡 미션은 밴드가 곡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어진 80년대 히트곡을 어레인지하는 미션에서는 편곡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밴드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연주를 하며 멜로디를 만들고 즉석에서 가사도 붙여보고. 한 사람이 멜로디를 떠올리면 다른 사람이 아이디어를 더한다. 물론 체리필터의 기타리스트 정우진이 그러했듯이 그 대부분의 시간은 노닥거리는 시간이겠지만 말이다. 과거 넥스트의 신해철이 그같은 밴드음악의 낭만을 쫓으려다 현실로부터 배반당한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그렇게 한 데 모여 먹고 자면서 함께 연주도 하면서 곡도 가사도 함께 쓰고 앨범을 만들려 했건만.
편곡장면은 더 극적이다.
"우리는 되게 블루지한 그런 색깔을 나는 별로 버리고 싶지 않거든."
"하지만 저희가 지금까지 편곡한 게 전부 그렇게 나왔잖아요?"
"색깔을 엎자는 거야?"
"서로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어떨까요?"
"양보할 게 내가 빠지라?"
아마 곡쓰는 작업도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디테일하게 접근했다면 비슷한 양상을 보였을 게다. 역시 밴드의 낭만. 코드 하나, 키 하나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멱살잡이하고 때로 주먹까지 오간다. 멜로디 음 하나 바꾸는 것 가지고 결국 주먹다짐하고 싸우다 팀이 깨지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밴드만의 고유한 색깔이 나오는 것이니까.
신기했다. 조별경연에서도 진수성찬은 Queen의 I We will rock you를 그들만의 아주 독특한 색깔의 음악으로 편곡해 들려주고 있었다. 체리필터의 말처럼 그다지 연주력이 뛰어난 밴드도 아닌데 편곡에 대해서만큼은 2차예선 당시 그토록 엄격하고 점수까지 짰던 송홍섭 심사위원의 호평을 들었을 정도로 매우 개성적이고 참신한 것이었다. 어째서?
결국은 그렇게 서로 다른 개성들이 만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방송에서 보이듯 편곡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개성이 충돌하며 서로 자기 고집을 세우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 것처럼,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의 개성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싸우다가도 무대에 올라서는 서로 협력하여 최선을 다해 연주를 끝내고 내려와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미안해하며 고마워하며 다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린다. 밴드만이 갖는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아니 밴드만이 아니다. 결국 사람이란 개개인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른 만큼 오해도 생기고 갈등도 빚어진다. 그렇다고 마냥 피하려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딪혀야 한다. 때로 목소리도 높이고 욕설도 하면서, 멱살도 잡고 주먹다짐도 하면서, 그러면서 더욱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게 되는 만큼 그 이상의 가능성이 생겨나게 된다. 그것이 인류가 발전해 온 과정이었다. 민주주의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일 터다. 밴드가 추구하는 자유와 독립, 그 이전에 화합. 그것은 자기를 버리는 화합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서로 싸우면서 넓혀가는 이해일 터다.
다만 원래 그녀들이 하던 음악의 색깔과 사뭇 다른 스타일의 음악에 조금은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기는 원래 빈 곳이 많던 밴드였다. 그만큼 음악에 아쉬움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예선과는 달리 하드록에 어울리는 어쩐지 불량스러워보이는 모습이 한결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전의 귀여운 모습도 좋지만 이런 어두운 느낌도 좋다. 아무래도 필자가 남성이고 현재 24강 안에 유일하게 남은 여성밴드인 때문일까? 사랑스럽다.
하여튼 여성보컬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리카밴드의 백지연, 하누비아주의 김뽐므, 라이밴드의 이지혜, 시크의 남주희, WMA의 손승연, 보컬이 주목받는 밴드 가운데 번아웃하우스의 오경석을 제외하고 모두가 여성들이다. 더구나 손승연은 이제 고3. 손스타가 왜 2차예선 당시 나이를 속이지 않았는가 물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토마스 쿡의 말처럼 연습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타고난 무언가를 가진 천부적 보컬이랄까? 노래면 노래, 랩이면 랩, 더구나 압도적인 무대매너까지.
시크와 WMA는 그래서 사실 밴드의 선봉장이라 할 수 있는 보컬만으로는 결코 우열을 가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크의 남주희에게 세포단위에서 뿜어지는 섹시한 매력이 있었다면, 손승연에게는 타고난 노련함과 에너지가 있었다. 다만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남주희가 조금 더 우세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이루어진 WMA에 비해 시크의 연주가 훨씬 탄탄하고 안정적이었다. 레드 제플린의 "Black Dog"을 그런 식으로 편곡할 수 있다니. 블루스와 가까운 고전적인 록큰롤을 블루지하게 자기만의 색깔을 섞어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WMA는 보컬 손승연을 제하면 상당히 아쉬움이 있었달까?
2Stay와 이븐더스트는 사실상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밴드들이었고, 굳이 말하자면 2Stay가 조금 더 깔끔했던 대신 심심했다면 이븐더스트의 경우는 약간 거칠고 촌스러운 느낌이었다. 대신 에너지는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이븐더스트 스타일을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2Stay역시 16강에 어울리는 훌륭한 팀이었을 것이다. 라떼라떼의 경우는 필자의 경우 그다지 이렇다 할 만한 매력이 느껴지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역시 음악도 캐릭터일 것이다. 각인시킬 수 있어야 한다.
블루니어마더는 기타리스트 한준희씨 덕분에 아예 <TOP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웃음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아마 생방송토너먼트에서 이 팀이 떨어지고 나면 많은 시청자들이 실망하여 돌아서고 말리라. 도대체가 어떻게 편곡했느냐고 체리필터가 물으니 편곡에 대한 스트레스로 술을 마시고 합주실 가서 연습하던 도중,
"오~! 오~~! 오~~!! 오오오오~~!!!"
역시 밴드음악 - 아니 밴드음악만이 아닌 모든 음악 전반에 존재하는 하나의 판타지일 것이다. 그렇게 고민해도 나오지 않던 음악이 어느날 술 마시고 생각없이 기타줄 퉁기다 보니까 순식간에 나오더라. 하나의 아디이어에 또다른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역시 한준희씨의 입담이 아니었다면.
역시나 올드한 스타일이지만 그러나 특유의 진지함이 음악 곳곳에서 묻어나는 듯하다. 한준희씨의 기타는 그의 입담 만큼이나 쫄깃쫄깃하고. 제대로 필을 느끼며 치는 기타에, 그 표정에서부터 벌써 그의 연주가 들려오는 듯하다. 기타리스트는 몸으로 기타를 친다. 물론 음악 역시 나쁘지 않았다. 비공인 <TOP밴드>의 예능전담 밴드일 것이다.
톡식에 대해서는 굳이 부연할 것이 없을 것이다. 단촐한 사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순하면서도 압도적인 파워가 느껴지는 연주는 절로 상체를 들썩이게 만든다. 어떤 음악도 톡식의 스타일로 해석되고 마는 이미 완성되어 가고 있는 밴드다. 잘 생겼고, 거칠고 힘있는 그들의 음악은 대중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TOP밴드>의 남자아이돌이다. 실력까지 겸비한. 기대 만큼 들려주었고 기대했던 만큼 16강에 안착하고 있었다.
편집이 날이 갈수록 발전해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에는 조별예선에 참가하는 팀들의 예선에서의 모습을 따로 보여주거나 하는 일이 없어 아무래도 각 팀에 대해 제대로 서사적으로 이해하고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1차예선과 2차예선 모두 편집되지 않고 보여졌던 팀이 몇 팀 안 되기에. 상당수 팀들이 예선을 통해 자기의 얼굴이나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조선정공연에서야 처음으로 자신들의 모습과 음악을 대중에 보이게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라떼라떼라든가 이븐터스트, 2Stay. 진수성찬, WMA, 시크, 등 거의 대부분의 팀들이 그랬다. 예선 없이 본선만으로 겨루려 했다면 과연 그런 것들이 가능했을까?
말했지만 오디션이란 캐릭터 싸움이다.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로써 대중에 어필하는가? 캐릭터란 서사로부터 나온다. 서사는 그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지만 예선에서의 모습들은 더욱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아, 이들은 이런 음악들로 이런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올라왔구나. 여기에 적절히 코치로부터 트레이닝을 받고, 서로가 고민하며 편곡하는 과정까지 집어넣음으로써 각 출전자들의 서사를 완성해간다. 김도균, 노브레인조에 비하면 그야말로 괄목상대라 할 것이다. 한 번 보게 되면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하게 되는. 다음주가 그렇게 기다려진다.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싶어. 부디.
흥미로운 것이다. 신대철은 블루스를, 남궁연은 70년대 사랑과 평화의 히트곡을, 정원영은 70년대 음악을, 체리필터는 80년대 음악을, 김도균과 노브레인을 제외한 코치 네 명이 모두 자신이 맡은 조를 가르치면서 강조하는 것이 대동소이하다고나 할까? 정원영이 WMA의 기타리스트에게 제프백에 대해 물어보고 잘 모른다 할 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바로 그것.
그냥 하는 음악이라면 물론 굳이 기초를 그렇게 따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라면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 기초이고 기본이다. 뿌리를 튼튼히 해야 줄기가 튼튼해지고 가지도 무성해진다. 결국 최신사조의 음악들도 바로 그러한 기초와 기본에서 다 나왔을 것이니.
70년대, 80년대 명곡들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것을 다시 지금 활동하고 있는 현역밴드들에 의해 편곡되어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들리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진심으로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고 열정을 잃지 않는 음악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사람 맨날 없는 곳에서 하다가 이렇게 모아주시니까 확실히 재미있네."
사실 그렇게 많은 관객도 아니었는데. 이번 체리필터조의 무대만이 아니었다. S1도, 하누비아주도, <TOP밴드>에 출연하는 밴드들이 하나같이 관객과 소통하는 설레임에 기꺼워하고 있었다. 감격하고 있었다. 단지 무대에 서서 대중과 소통하며 음악을 한다는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다. 16강이니 우승이니 하는 것은 이미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없었지 않을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고 혹은 아쉬움에, 혹은 기쁨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린다. 과연 나는 저렇게까지 눈물까지 흘려가며 감격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한 적이 있었을까?
좋은 밴드들이었다. 연주수준도 높았다. 못해서라기보다는 더 잘해서. 못한 것을 찾기보다는 더 잘한 것을 찾기가 쉬울 것이다. 토요일의 즐거움이다. 비록 공연장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방송을 통해서라도 <TOP밴드>를 보고 무대를 보는 것이야 말로 주말 저녁의 큰 즐거움일 것이다. 그저 이번에도 지나는 시간만이 그저 야속할 뿐이었다.
다음주 패자부활전에서 드디어 마왕 신해철이 나선다. 한 팀이라도 더 데려가려고. 이미 24강까지 올라온 자체가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일 게다. 그리고 오늘 잠시 쪽집게 과외를 해주었던 한상원도 역시. 드디어 본격적인 생방송 경연이다. 벌써부터 설렌다. 일주일이 다시 행복하다. 기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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