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를 지켜라 - 재벌, 일상의 역설이 재미있다...

어쩌면 정상이라는 것도 하나의 역설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경영권을 가지고 다투고는 있지만 신숙희(차화연 분)와 차회장(박영규 분)의 관계가 어느 일반사람들처럼 격의없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하이힐로 발등을 밟는 것 정도는 서로 기분 나쁠 때 할 수 있는 심술 정도라고나 할까.

 

좋아하니까 좋아한다고 말하는 재벌3세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는 그의 사촌, 어머니의 도움에도 자기가 알아서 하겠노라며 직접 호신술까지 배우는 재벌가의 딸. 물론 그들은 특권층이다 그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재벌드라마에서와 뒤틀린 이상한 인간유형은 최소한 이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차지헌(지성 분)을 좋아한다고 직접 노은설(최강희 분)을 찾아가 직구승부를 거는 서나윤(왕지혜 분), 노은설을 만나고 나서도 뜻대로 풀리지 않자 차지헌의 아버지인 차회장을 찾아간다. 그렇다고 폼나게 찾아가서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보통의 여자처럼 쪼그리고 앉아 떼를 쓰고 조를 뿐이다. 하기는 그렇게 고민하는 서나윤에게 마음이 있을 때 자기에게 오라고 진심을 전하는 차무원(김재중 분)의 모습도 깔끔한 직구다. 그나마 서나윤의 어머니 황관장(김청 분) 정도나 노은설의 뒷조사를 하는 등 기존의 재벌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을 뿐.

 

차지헌의 고백을 들은 노은설의 반응 역시 매우 현실적이다. 당연한 것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에서야 돈 많은 대단한 남자 만나 팔자고치는 게 일상이라지만 현실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김재중의 말처럼 가진 것도 그만하고 누리는 것도 그만하면 이성을 사귀더라도 그런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처입는 것은 노은설 자신이 될 수 있다. 신데렐라의 뒷이야기를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과연 신분도 비천한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서 끝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물론 노은설의 친구 이명란(하재숙 분)은 속물적인 보통의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해주고 있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차지헌을 거절하는 노은설과 역시 현실적인 이유로 차지헌과의 관계를 밀어주고 있는 이명란. 대비가 괜찮다고나 할까? 특히 지극히 정상적인 노은설과 차지헌의 관계를 판타지로 만들어가려면 이명란과 같은 촉매가 필요할 것이다. 모두가 현실적이라면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성립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노은설이라는 현실적인 캐릭터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는 판타지 안에서 매우 독특한 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여튼 재벌이라는 자체가 워낙 별세계이다 보니. 그래서 생각한다. 재벌이란 상당히 우리와는 다른 존재가 아닐까. 그것을 아주 잘 묘사한 것이 올초 방영한 화제작 <로열패밀리>였다. 확실히 공순호를 비롯한 JK일가의 모습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에서 벗어난 비상한 것이었다. 그런데 <보스를 지켜라>는 그같은 일반의 기대를 깨버린다. 술에 취해 어머니에게 아들자랑에 여념없는 재벌회장과 그의 양말을 벗겨주는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게 상당히 정겨운 일상의 모습 아닌가 말이다. 단지 주인공 차지헌의 공황장애가 특별하게 다가올 뿐 전반적으로 재벌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저들도 같은 사람이다.

 

바로 그게 포인트다. 원래 재벌은 이런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일반인을 데려다 놓는다. 배경만 재벌이지 하는 것은 달동네 서민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배우들의 무르익은 코믹연기까지. 어쩌면 평범할 수 있음에도 특별한 배경이 있기에 그 장면들마저 특별하게 다가온다. 서나윤이 차회장에게 밀려 넘어질 때 그녀가 재벌가의 딸이란 설정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웃겼을까? 노은설에게 복수하기 위해 호신술을 배웠을 때도 재벌이 아니었다면 그다지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상식을 깬다. 코미디의 가장 큰 전제일 것이다.

 

정말 의외라는 것인데. 그러나 바로 그 의외라는 것이 코미디의 본질일 것이므로. 상식이 깨질 때 사람들은 놀라움과 당황과 더불어 웃음을 터뜨린다. 놀라고 당항하고 난 긴장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게 된다. 마치 철이 없는 어른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렇지 않아도 철이 없는 어른인데 그 대단한 재벌가의 회장님 사모님들이다 보니. 그 자식들이고.

 

아무튼 그래서 드라마가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미 초반에 벌써 차지헌은 노은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노은설 역시 그 감정을 이미 눈치챈 상태에서 그것을 거절하고, 그러나 기회를 노린 차지헌에 의해 노은설은 차지헌의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약속한다. 과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노은설의 엉뚱함과 계급의 차이에서 나오는 헤프닝, 여기에 서나윤과 차무원까지 가세하며 한 바탕 복잡한 러브코미디를 예상케 한다. 이미 서나윤은 차지헌과 노은설과 얽히며 그녀의 표현대로 바람빠진 축구공마냥 차이며 웃음을 만들어 보이고 있었다.

 

과연 지성의 사랑은 이루어질 것인가? 당연히 노은설은 신데렐라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답은 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이야기의 밀도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그만큼 개성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들이며 설정인 것이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전혀 다른 계급을 향해 다가가는 분투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물론 DN그룹을 둘러싼 차무원과 차지헌, 차회장과 신숙희의 갈등도 첨예화될 것이다. 역시나 일상의 코드로써.

 

딱 배경만 어느 재래식시장으로 바꾸어 놓으면 그대로 시트콤이 되어 버리는 것인데. 그러나 재벌이 갖는 독특함은 캐릭터와 설정의 평이함조차도 특별함으로 바꾸어 놓는다. 노은설의 눈으로 보는 재벌이 그럴 것이다. 일상조차도 신기하며 평범조차도 특별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결국 노은설은 차지헌의 주위를 맴돌며 돕는 조역의 역할로 만족하려는 듯하다. 차무원에 대한 동경과 다르지 않게. 계급적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그녀가 차지헌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노은설의 차지헌인간개조기를 기대해 본다. 잘 만든 코미디 드라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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