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화면이 휑하다. 분명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매 장면이 그저 휑하니 비어 있다. 꽉 채우는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절박함이다.
절박함이란 다름 아닌 서사다. 필연이다. 반드시 그리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반드시 그리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겉돈다. 진심이 없다. 살의도, 야심도, 분노도, 증오도 그저 공허할 뿐이다. 마치 텅 비어 있는 연극무대에서 독백하는 배우처럼.
문제는 이것이 연극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극도 아니거니와 연극처럼 보여서도 안된다. 이것은 역사의 중요한 한 장면이다. 지난 역사의 중요한 한 장면일 터다. 무왕, 의자왕, 사택왕후, 은고, 임자, 성충, 계백, 알천, 김유신, 은상, 윤충... 모두 사료에 나오는 이름들이다. 그들이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 대화를 나누고 행동을 하고 하는데 그것이 연극이어서야 될까.
결국은 질감일 것이다. 질감이란 안을 채우는 것이다. 연기란 겉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연기를 사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 안을 채우는 질감이다. 배우 자신이 표현해내는 질감이기도 할 테지만 연출을 통해 보여지는 질감이기도 할 터다. 바로 그 서사적 질감이 부족하다. 아무리 배우의 연기가 탁월해도 그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것. 중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없다. 사실 드라마 <계백>에서 인물들간의 갈등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사택왕후와 무왕, 그리고 사택왕후와 의자왕, 그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점층을 이루는 인물도 없다. 또한 그 주위에서 양감을 채워주는 인물도 없다. 마치 가잠성의 정황을 살피겠다며 혼자서 내관 하나 데리고 위험한 전장을 헤매던 의자(조재현 분)처럼. 아무리 그래도 왕자인데 내관 하나 데리고 적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전장을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김유신(박성웅 분)과 교기(진태현 분)과의 싸움 역시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왕자의 싸움인데 주위를 지키는 사람조차 하나도 없다. 바로 뒤에는 가잠성의 성벽이 보이고 서로 부딪히는 평지는 시골의 조금 마당 넓은 집 마당 정도다. 말을 타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갑주를 걸치고 맨몸으로 부딪혀 싸운다. 한 나라의 왕자씩이나 되어 적장과 거친 말을 나누고 칼을 휘두른다? 그나마 의자와 계백(이서진 분)이 맞붙을 때는 윤충과 은상 등 주위에서 개입하며 그럴싸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주위가 채워지니 전장도 채워진다.
그런 식이다. 설마 사택왕후(오연수 분) 쯤 되는데 주위에 의견을 나누는 측근이 하나 없을까. 하기는 그래서 사택왕후는 외롭다며 은고(송지효 분)에게 아우가 되어달라 부탁하고 있기도 했다. 그만큼 사태왕후가 나타나는 장면도 외롭다. 사택왕후가 교기나 사택적덕와 만나도 쓸쓸하고, 무왕과 만나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도 허전하다. 그렇다고 그 빈 자리에 감정이 이입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율 브리너가 주연했던 영화 <이색지대>에서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던 로봇들과도 닮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서사도 없다. 다른 어떤 필연도 없다. 당연히 우연도 없다. 복잡한 관계 없이 단지 정해진 동선을 따라 기계처럼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단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의 감흥 뿐 그 이상의 어떤 공감도 그로부터 이끌어내지 못한다.
무척 심각하다. 그런데 왜 심각한지 모른다. 무척 비장하고 진지하다. 그런데 어째서 그토록 비장하고 진지한지 모른다. 필자의 리뷰 스타일상 이런 식으로 겉도는 이야기만 계속 나오기도 사실 힘든 것이다. 극 안으로 들어가 각 인물들과 교감하며 그들의 말이며 행동 하나하나를 직접 마주하고 이해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리뷰를 쓴다.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가도 푸석한 마치 CG의 껍질과도 같은 외면만이 보일 뿐 그 안을 채우는 질감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한꺼풀 벗기고 나면 실제 CG처럼 텅 빈 공간만이 보일 뿐이다.
답은 사실 간단하다. 불필요한 대화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관계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말이며 행동이 필요하다. 의미없이 채우는 것이다. 모든 나무가 곧고 제자리에 있다면 그것은 분명 세트일 테지만 다만 몇 그루라도 제자리에서 벗어나 마르고 뒤틀린 모습을 보인다면 마치 실제의 숲처럼 보일 것이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발 아래로 토끼가 바스락거리며 돌아다니고, 멀리 고라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극의 진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숲의 느낌을 더욱 사실적으로 살린다. 묘사에 있어 그같은 사소한 요소들이 사실성을 높인다면 서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보다 장면과 장면 사이를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겠다. 사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다 실감할 수 있는 무엇이. 그것이 이야기의 질감이다. 곰인형은 바람을 머금은 솜이 안을 채우고 있어 폭신하니 정겹다.
차라리 텅 비어 있는 장면과 장면 사이를 나레이션으로라도 채우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유도 없고 사연도 없고 과정도 없고 결론도 없다. 그냥 배치되어 있다. 차라리 다큐멘터리이면 모르겠는데 드라마니까. 이미 있는 이야기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거의가 허구다. 전혀 없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그 배경이나 사이들에 대한 설명이 영 부실하다. 솜이 빠진 곰인형이다.
하긴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 사극은 거의 충실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기에 굳이 대본이나 연출로써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것으로 알아서 시청자가 이해하며 볼 수 있다. 하지만 고려 이전의 시대들은 사료가 부족하여 그 나머지 부분을 시청자가 알아서 채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일반적인 정설을 따르며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만큼 더 친절한 설명과 묘사가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너무 기존의 사극만을 답습하지 않는가.
더구나 부족한 사료에 따른 사상력을 발휘하는데 있어서도 너무 기존의 다른 이야기에 빚을 지는 경우가 많다. <계백>을 두고 전작인 <선덕여왕>과의 유사성 논란이 불거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초반 무진(차인표 분)과 사택왕후, 무왕(최종환 분)의 갈등은 확실히 무협에서 가져온 코드가 상당했다. 그나마 지금은 무협보다는 역사드라마에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진부하다.
갑옷은 아무래도 장수 갑옷보다는 병사들 갑옷이 더 고증이 잘 되어 있는 듯하다. 기본적인 찰갑에, 수당의 영향을 받은 듯 명광개로의 진화가 엿보인다. 갑옷으로서의 질감도 훌륭하고. 역시 드라마가 갖는 한계일 것이다. 이렇게 고증을 잘 하고서도 괜하게 욕심을 부려 장수들에게는 허황된 비닐갑옷을 입혀 버린다. 물론 그것도 상당히 고증이 잘 된 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어쩐지 역사시대를 다룬 드라마치고는 붕 떠 보이지 않는가.
보다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보다 상상력을 키워 볼 필요가 있다. 망상을 하며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서. 직접 사택왕후와, 의자와, 계백과, 은고와 대화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관계를 가지고, 어떤 감정들을 느끼며. 그들의 주위에는.
더욱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느껴보고 싶다. 공감하며 극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려 보고도 싶다. 그것이 안 되고 있다는 것. 필자는 여전히 구경꾼일 뿐이다.
아쉽다. 백제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드물다. 이렇게 고증에 신경을 쓴 드라마도 드물다. 그러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라는 것이다. 그것이 안타깝다. 항상 느끼는 것이다.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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