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주의 남자 - 부수다 만 한 쌍의 옥가락지, 김승유와 세령의 운명...

까칠부 2011. 9. 1. 08:23

김승유(박시후 분)는 끝내 마지막 가락지 하나를 부수지 못한다. 하필 그 순간 세령(문채원 분)에게 들켜 그녀의 진심을 들어버린 탓이다. 김승유가 세령을 납치하기로 한 것은 과연 세령을 인질로 삼고자 해서일까? 아니면 단지 세령의 결혼을 막기 위해서일까?

 

시대의 비극이며 김승유 개인의 비극일 것이다. 그의 이성, 즉 의무동기는 말한다. 어디서 짐승의 밥이 되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와 형, 그리고 가엾게도 원수인 온녕군(윤승원 분)의 노비로 갔다가 불행하게 죽임을 당한 형수와 아강이를 위해서라도 복수를 해야 한다고. 세령은 단지 그 복수의 대상인 수양대군(김영철 분)의 딸이라고. 그녀를 납치해서라도, 인질로 삼아서라도,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김승유의 의무다.

 

하지만 그런 한 편으로 그의 감정, 즉 충동동기는 그런 그를 옭죈다. 단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여리에서 이세령으로. 신분 역시 궁녀에서 수양대군의 딸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그 여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보다 먼저, 형수와 조카보다도 먼저, 그래서 김승유는 원수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세령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인지 수양대군의 집을 찾아 신면과 함께 있는 그녀를 보고 만다.

 

그러니까 공교로운 것이다. 하필 조석주(김뢰하 분)를 찾아 빙옥관을 습격한 공칠구 일당에 대해 김승유가 거침없이 칼을 휘두른 이유가 과연 아버지 김종서의 비참한 말로에 대한 분노였는지, 그도 아니면 이세령이 역시 원수이며 친구인 신면의 정혼자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데 따른 체념과 절망이었는지. 공칠구가 빙옥관의 주인인 초희(추소영 분)를 인질로 조석주를 협박했다는 말에 김승유는 복수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그로부터 찾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자신의 세령에 대한 마음을 억지로 감추고 숨기며 추구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던 것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세령을 붙잡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 김승유 자신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복수를 위해 세령을 납치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그녀가 신면과 혼례를 치르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를 납치하고 있는 것인지. 그의 내면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복수에 대한 갈망과 사랑하는 이에 대한 열망. 원수의 딸이며 수양대군에게 복수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는 이성적 판단과 그리고 여전히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는 그녀에 대한 미련까지. 마치 옥가락지처럼. 그래서 부수고 싶었던 것이지만 끝내 부수지 못하고 말았다. 부숴야 했지만 부수지 못했다.

 

원래 사람이란 그렇다. 머리가 시키는 일과 가슴이 시키는 일이 다르다. 머리로 사고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전혀 다르다. 머리로 사고할 것인가? 가슴으로 느낄 것인가? 머리로써 판단할 것인가? 가슴이 시키는대로 이끌릴 것인가. 둘이 일치할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다. 이성인가? 감정인가? 의무인가? 충동인가? 설사 그것이 가족을 몰살시킨 원수의 딸을 사랑하는 것이라 할 지라도. 세상 일이란 그렇게 객관식 시험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논리로 따지고 들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로맨스다. 그것은 가슴으로 쫓아야 한다. 로맨스를 이성으로 이해하려 들 때 파탄이 일어난다. 가끔 드라마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고 있는 김승유와 이세령의 사랑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느끼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머리로써 사고하는 것이다. 이것은 로맨스물이고 두 사람의 사랑이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다. 바로 그러한 비논리성이야 말로 두 사람이 놓인 운명의 비극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전혀 문제없는 사랑이라면 그것이 어째서 비극일 것이며 그것을 굳이 드라마로 만들 까닭이 어디 있는가?

 

정종(이민우 분)과 경혜공주(홍수현 분)의 관계가 그것을 보여준다. 경혜공주가 의외로 쉽게 정종에게 마음을 허락함으로써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드라마는 없어 보인다. 아마 정종을 기다리고 있는 불행한 죽음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 사이에는 이제 알콩달콩 사는 삶만이 앞으로 남아 있을 뿐인 것이다. 머리를 알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그리고 고민해야 한다. 현실의 조건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명령과. 그것이 드라마다.

 

아무튼 신면은 그야말로 사람이 타락하는 과정을 그대로 그린 듯 보여주고 있다.

 

"어차피 나는 누구에게는 죄인 아니냐?"

 

사람이 타락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어쩔 수 없다며 먼저 본능이 시키는대로 유혹에 굴복한다. 이때 흔히 쓰이는 핑계가 바로 운명이다. 운명은 현실 앞에, 그리고 본능의 유혹 앞에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때, 아니 그러고자 했을 때 그를 정당화시키는 핑계가 바로 운명인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현실 앞에 굴복했다. 현실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임을 인정하고 말았다. 자기 자신의 욕심과 충동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었노라고.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는 위선을 부여잡는다. 위선이란 선에 대한 경의다. 정확히는 이 경우에는 미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실제 그것이 운명이었노라고, 진정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싶다. 신면이 세령에게 집착하는 이유일 것이다. 세령의 앞에서 짐짓 좋은 친구인 척, 그래도 마지막 양심은 남아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마는 이유인 것이다. 김승유에게 운명이라 했으니 세령에게서는 그 불가피함을 인정받고 싶다. 세령에게 인정받을 수 있으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의 내면을 지배하는 것은 저같은 위악의 감정이다. 위악이란 악에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어쩌겠는가? 도저히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머리 좋은 사람일수록 쉽게 악에 물드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은 너무 잘 안다. 그리고 쉽게 합리화한다. 김승유에게 지은 죄를 그가 사랑하던 여인을 평생 아껴줌으로써 보답하겠다. 말이 안 되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순간 신면은 어차피 그래봐야 어쩌겠느냐 말한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 신숙주(이효정 분)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어쩌면 바로 그러한 타락이야 말로 신면의 가장 큰 비극일 것이다. 그 자신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란.

 

그런 점에서 수양대군은 철저한 악인이다. 사료에는 사실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안평대군이야 원래 김종서 등과 손잡고 자신을 위협하던 대상이니 어쩔 수 없이 그 며느리와 손녀까지 공신에게 노비로 주고 있었다 하더라도, 금성대군은 어찌되었든간에 그와 같은 어머니를 둔 친형제였다. 단종에 대해서조차 그다지 죽이려는 마음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하물며 금성대군이야. 자신을 죽이려다 유배를 간 상황에서도 그를 잘 대우하라 지방관들에게 당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 금성대군과 단종을 죽이도록 그의 등을 떠민 것이 양녕대군과 공신들. 신숙주가 비난을 듣는 이유다. 어쩌면 그것도 위선이었을 테지만.

 

그러나 드라마에서 수양대군은 절대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려들지 않는다. 세령의 비난에 잠시 상처입은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는 철저히 자신의 야심에 충실한다. 한 마디로 그는 신면과 같이 타락한 존재가 아니다. 악 그 자체다. 그는 사명에 의해 움직인다. 자기는 왕이 되어야 하고 왕이 되어 조선을 다스려야 한다. 집안을 위해서라도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을 쫓아내고 왕이 되어 가장 고귀한 자리에 올라야 한다. 그에게 후회한 없다. 목표를 이루는 그 순간까지. 다만 과연 사료에서처럼 드라마속의 수양대군은 나중에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 마음 깊이 후회하게 될까.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엔딩이 있다. 이시애의 난으로 신면이 죽고 죽음에 임박해 마침내 김승유가 세조를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 대면한 자리에서 세조는 김승유가 죽이기 전에 천수를 다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그 과정에서 김승유와 세조 사이에 한 바탕 논쟁이 벌어지면 좋겠지. 김승유는 복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또한 세령을 위해서도 그의 아버지를 죽이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 과연 마지막 순간 세조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경혜공주가 세령에게 건낸 옥가락지야 말로 8월 31일 <공주의 남자> 13회차의 주제였을 것이다. 경혜공주는 그 옥가락지를 세령에게 건냄으로써 김승유에 대한 모든 미련을 접기로 한다. 그것은 경혜공주에게 있어서도 잘못 건네어진 김승유의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옥가락지는 다시 김승유에게 돌아가 산산이 부숴지게 된다. 단, 한 쌍으로 이루어진 가락지 가운데 하나만. 역시 그것은 김승유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의무와 충동 속에, 이성과 감정 속에 미처 드러내지 못한 그의 솔직한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부수려 해도 다 부수지 못했다.

 

아마 상당기간 그렇게 드라마는 진행될 것이다. 솔직할 수 없는 김승유와 그런 김승유를 인내해야 하는 세령의. 마음은 서로에게 가 있어도 스스로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가련한 한 쌍의 이야기가. 비극은 슬프기에 그래서 더 아름답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그래서 더욱 처절하도록 아름답기에 그것을 비극이라 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한 무대다. 그들을 위해 왜곡된 시간과 사건들, 그리고 인물들. 오로지 그들을 위해서만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슬아슬하여 어찌 제대로 이어질 수나 있을까. 패배하고 도망쳐 숨으려는 운명이 아닌 의지로 이겨내는 운명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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