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안한데... 지헌이 놈 옆에 더 있어줘! 조련이어도 좋고 뭐라도 다 좋으니까 그냥 있어줘. 그래줬으면 좋겠다. 노비서가 고쳐줬으면 좋겠어."
결국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일 게다. 그렇게 아들에게서 떼어놓으려 하던 노은설(최강희 분)이건만, 그조차도 사실은 아들 차지헌(지성 분)을 위한 것이었다.
주책맞게 노은설 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차지헌 방에서 둘리인형을 안고 인형이 젖도록 눈물을 흘리며 울고. 다만 성격처럼 차봉만(박영규 분) 회장의 자식사랑은 거칠고 우악스럽다. 정작 그 사람을 받는 차지헌이 부담스러워 도망칠 정도로.
하나같이 누구나 부러워하는 재벌 3세이건만 딸 고생시킬까봐 차지헌과 차무원(김재중 분)에게 포기하라 다그치는 노은설의 아버지 노봉만(정규수 분)은 또 어떠한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쁜 법이다. 아무리 재벌 3세라도 곱게 기른 딸이 더 아깝다. 딸이 걱정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깟 돈이 다 무언가.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는 차봉만도 마음에 들지 않고, 혹시라도 너무 차이가 나는 결혼을 했다가 마음고생이라도 하게 되면 그게 더 걱정이다.
하기는 서울에서 무술도장하다가 말아먹고 시골에 내려가 한가롭게 농사를 짓는 처지니까. 세속의 이해와 동떨어져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주변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딸 노은설에 대해서만. 딸 노은설의 행복에 대해서만. 아무리 자식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부모 역시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지만 결국 부모의 마음이란 한결같은 것이다.
그래서 또 대비되는 것이 차지헌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고 송여사(김영옥 분)에게 알고 있지 않았느냐고 따져묻다가 눈물을 보이는 차봉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차봉만을 가만히 안아주는 송여사의 모습은 차봉만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뜻일 게다. 차봉만은 차지헌의 아버지이며 차봉만은 송여사의 아들이다.
하여튼 딸의 섣부른 반항에 경호원들을 시켜 잡으라 하면서도 혹시나 다칠까 안달하던 황관장(김청 분)의 모습까지. 이제까지가 자식들 이야기였다면 이번 회차는 부모들의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가출한 딸 서나윤(왕지혜 분)과 그녀를 찾아 그 가파른 계단을 올라 노은설의 집을 찾은 황관장.
그래서 서나윤은 여전히 아이같다. 부모의 과보호가 아이를 언제까지나 아이로 남게 만든다. 정작 반항을 하고 집을 나가서도 갈 곳 하나 없는 외로운 처지라는 것은. 가장 해 보고 싶었던 것이 친구집에서 자는 것이라 한다. 무의식중에 서나윤도 노은설을 친구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노은설과 차지헌이 키스를 했다는 사실에 목욕탕에 들어가 펑펑 울다가도 이내 찬물과 더운물이 제멋대로 나오는 수도꼭지에 분위기를 전환하고 어느새 도란도란 누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차지헌과 차무원 두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사랑을 받았던 선배로써 이런저런 소회를 털어놓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어느 정도 노은설과 그토록 진솔한 대화를 나눌 만큼 두 사람에 대한 마음의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친구란 그녀에게 차지헌과 차무원 뿐이다.
어쩌면 각인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서나윤의 세계에 존재하는 부모 이외의 두 남자. 아니 남자이기 이전에 친구다. 서나윤에게 있어 선택이란 둘 중 하나를 의미했다. 그런데 그 좁은 세계에 노은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한 적도 없는 동성의 친구로써. 노은설의 집에서 함께 밤을 지샘으로써 그녀의 좁은 세계도 조금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을까?
물론 차지헌도 마찬가지다. 차무원도 마찬가지다. 차지헌은 비로소 한 사람의 성인으로써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다. 차무원 역시 어머니로부터 독립하려 하고 있다. 차무원이 서나윤에게 하는 조언은 그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 보면 언젠가는 놔줄 것이다. 그렇게 부모는 자식을 걱정하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도망쳐간다. 그리고 그 한 쪽에 다른 세계로 연결해주는 노은설이라는 통로가 있다.
그래서 문득 해보는 발칙한 상상이다. 이제까지는 장화신은 고양이였다. 다른 세계에 사는 이질적 존재로써 아이들을 보살피는 역할이었다. 여기에서 아버지인 차봉만과 어머니인 노은설이 서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외로운 아이들과 아이들 만큼이나 외로운 아버지. 그렇게 되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막장일까?
아무튼 차봉만과 서나윤이 이 드라마의 두 축일 것이다. 주인공은 분명 노은설일 테지만 노은설의 반대편에서 드라마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차봉만과 서나윤 두 사람이다. 해맑고 순수하다. 전혀 그늘이라고는 없이 솔직하다. 때로 그 솔직한 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박영규야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이미 검증된 배우다. 진지한 여기에서부터 코믹연기까지 자연스럽다. 그에 비하면 왕지혜는 드라마가 재발견한 배우가 아닐까? 이렇게까지 천연덕스러울 수 있는 배우는 아마도 드물 것이다. 누가 재벌 딸 아니랄까봐 미운 소리도 곧잘 하는데도 오히려 그것이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없는 아가씨의 악의없는 행동이겠거니. 그 큰 눈과 어린아이같은 표정들에서 악의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냥 귀엽다.
과연 차지헌의 홀로서기는 성공할 것인가. 차지헌과 더욱 밀착해가는 노은설을 보는 차무원의 불편한 표정은 또다른 갈등을 야기하지는 않겠는가. 어머니 신숙희가 차봉만과 사이가 좋지 않고, 어린아이의 집착은 때로 악의없이도 다른 사람에게 악의를 품게 되기도 한다. 곤란케 한다.
근래 보기 드문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드라마일 것이다. 원래 아이와 동물과 미인은 누구나 좋아하는 보편적인 이야기의 소재일 것이다. 아이와 동물과 미인. 그리고 코미디. 재미있는 이유일까?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려니와 그들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대본에 더욱 주목해보는 바다. 어떻게 작가는 이 기분좋은 드라마를 기분좋게 끝까지 끌어갈 수 있겠는가. 기대하며 보게 된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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