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생각났다. 깨끗함. 투스테이에 대한 인상이다. 무대는 참으로 밝고 신난다. 어떤 음습함이나 계산 없이 솔직하게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면 깨끗이 잊게 된다. 굳이 정의해 말하자면 도련님록? 그럴리는 없겠지만 걱정없이 사랑받으며 살아온 사람들만의 올곧음과 해맑음이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 아이돌노래를 부르는데도 전혀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리고 있는 듯. 계산없는 정직함이 듣는 이들마저 솔직하게 만들어 버린다. 장점이면서 한계일 듯. 체리필터는 그런 점에서 최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액시즈는 뭐랄까... 아직 애들? 어른이 된다는 건 힘을 빼는 방법도 알아간다는 것이다. 마냥 1등만 좋은 것이 아니다. 때로 2등도 좋고 꼴찌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모두가 같이 꼴찌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모두가 있는힘껏 내달리게 된다면 어느새 흐트러지고 만다. 주위를 보지 못하고 시야가 협소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 때는 마음껏 질러보는 것도 일단은 중요할 것이다. 짐짓 기를 감추며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것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무모한 자신감이야 말로 그들 나이또래에 어울리는 것이니. 멘토로써 쓰레기스트를 추천해주고 싶다. 어울리지 너무 어른스런 음악을 하려 하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당당해지기를. 실패하고 좌절하는 만큼 아이는 성장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톡식의 "나 어떡해"는 샌드페블즈와도 다르고 산울림과도 다르다. 샌드페블즈나 산울림이나 모두 70년대 특유의 좌절과 절망의 미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 어떡하냐 하면서도 이내 체념하고 만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따져묻다가도 바로 고개를 숙이며 받아들이고 만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사랑한다면 깨끗이 포기하고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지만 21세기란 그런 시대인가. 끓어오르는 속내를 감추지 않으며 바로 묻고 만다. 따지고 다그친다. 톡식의 사운드가 들려주는 격렬함은 단지 체념하고 자기 안으로 도피하려는 70년대의 "나 어떡해"가 아닌 당장의 격정을 감추지 않고 표출하는 2010년대의 "나 어떡해"였을 것이다. 음악은 판단불가. 다만 저러다 드럼치는 김슬옹 탈진해 죽겠다. 걱정이 앞선다.
브로큰발렌타인은 말한 것처럼 그냥 2인조 오케스트라다. 사운드도 과학이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작은 톡니바퀴가 거대한 산을 움직이고 있다. 도대체 저것이 다섯 명이서 내는 소리가 맞는 것인지. 하기는 맞서는 톡식 역시 단 두 명이서 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꺼풀 벗은 듯 자유롭게 내지르는 가운데 해방의 고고성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지나치게 정석적인 사운드는 가끔 재미가 없게 들리는 약점도 동시에 갖는다. 그냥 밴드란 이런 것이라는 교과서에 딸려 나온 교보재를 보는 느낌이다. 조금 더 벗고 조금 더 내지르는 쪽이 그들을 위해서도 좋겠다. 노브레인을 코치로 선택한 것이 현명했다 판단했다. 노브레인보다 더 그들을 자유롭게 해줄 코치는 없었으리라.
동어반복일까? 하지만 음원을 듣고 있자니 문득 쓰고 싶어서. 투스테이는 체리필터와 더불어 공중파에서 자주 보았으면 싶은 밴드이고, 브로큰발렌타인은 록페스티벌에서 수만의 관객을 앞도하며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톡식은 세계투어에 나서는 것이 어울리겠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액시즈가 있을 것이다. 액시즈 역시 한 꺼풀을 더 벗을 수 있다면 장래는 무궁무진하리라. 어쩌면 자기 안에 갇혀 있던 것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의 좌절은 큰 약이 되었으리라.
도대체 이런 밴드들이 무명으로 남아 있었다면 홍대에는 얼마나 대단한 밴드들이 있다는 소리인가. 평일의 스테이지에도 이런 훌륭한 밴드들이 서고 있다는 것일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평일의 홍대클럽을 찾아가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보물찾기일 것이다. 새삼 TOP밴드에 감사하게 된다.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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