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PPL의 <TOP밴드>는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방의 큰 PPL을 날리고 만다.
"아... 아... TOP밴드 시즌2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예 대놓고 자기프로 PPL이다. 부디 시즌2를 이룰 수 있기를. 필자 역시 간절히 바라는 바다.
신해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여러 명이 나와 하는 집단경연과 일 대 일로 겨루는 토너먼트는 그 특성이 전혀 다르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올라 경연을 펼칠 때면 남들보다 못하지만 않으면 된다. 지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기는 것이 된다. 그러나 토너먼트에서는 확실하게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확실하게 지고 만다. 다른 팀은 몰라도 눈앞의 상대보다는 더 나아야 한다.
208개의 팀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경연을 펼치는 동안에는 괜찮닸다. 워낙 많은 팀들이 있다 보니 그 판단의 기준은 심사위원 개인의 추상적 관념으로써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만하면 좋다. 그만하면 훌륭하다. 편곡의 아이디어와 앙상블이 매우 뛰어나다. 그것은 200개가 넘는 팀 가운데 S1이 선택될 수 있었던 가장 큰 강점이었다. 그러나 과연 토너먼트에서 눈앞의 라떼라떼를 상대하려 할 때 그같은 앙상블과 편곡은 S1의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겠는가.
패자부활전에서 신해철도 이미 확인한 바 있었다. 라떼라떼가 앙상블에 있어 S1이 확실한 자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실용음악 전공자답게 기본기도 탄탄하고,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앙상블 역시 뛰어난 팀이었다. 무엇보다 라틴음악이 갖는 에너지 자체가 너무 대단해서 자칫 이대로 분위기에 휩쓸려 버릴 위험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아마추어밴드답게 매우 얌전하고 조심스러운 음악을 하고 있던 S1이었다. 어찌 보면 소심하기도 했다.
이대로면 필패다. 그래서 신해철도 결단을 내린 것이다. 먼저 경연장의 분위기를 S1의 편으로 가져오자. 만일 S1의 가장 큰 강점인 앙상블만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면 한 꺼풀 벗어던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S1을 통해서 심사위원의 헛점을 노려 볼 수 있다. 분명 직장인밴드라는 점도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가산점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신해철이 인터뷰에서 밝힌 '직장인밴드에 대한 멸시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는 부분은 그같은 기대를 반영한 발언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보다시피 그렇지 않아도 연주도 버거운데 익숙지도 않은 안무까지 곁들이려 하다 보니 그동안 S1이 보여 왔던 가장 큰 강점인 앙상블마저 사라진 지리멸렬한 무대가 되고 말았다. 흥겹기는 흥겨웠다. 즐겁기도 즐거웠다. 그러나 자기들끼리만 즐거운 것이었다. 워낙 즐거워하니 휩쓸리며 함께 즐거워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평가하거나 인정할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그같은 시도라도 하지 않았다면 S1에게는 승산이 있었겠는가?
이 역시 토너먼트만의 특징일 것이다. 98대 2로 떨어지든, 52대 48로 떨어지든,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붙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누가 몇 점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기느냐? 지느냐? 여기에서 신해철은 애매하게 단지 이제까지 들어 왔던 칭찬을 반복해 들으며 떨어지기보다, 더 큰 실패를 각오하고서라도 크게 한 방을 노리는 도박에 걸어보았던 것이었다. 아마 번아웃하우스와의 갈등의 원인이었던 '미스터'도 같은 맥락 아니었을까. 어설프게 선전하고 지는 것보다, 크게 깨지더라도 한 번 역전을 노려보는 승부수로 도박을 걸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혀 다른 S1의 색다른 무대를 볼 수 있었던 것 아니던가. 직장인 수준의 가벼운 율동이나 곁들이던 무대에서 보다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퍼포먼스를 곁들인 무대로써. 비록 기본기의 부족으로 결국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한 꺼풀 벗을 수 있었다는 또다른 가능성을 남길 수 있었다. 언젠가 S1이 그 끈끈한 팀워크와 음악에 대한 끝없는 애정으로 이번에는 결국 실패했던 'Dancing Queen'을 완성해 낸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멋진 모습이겠는가.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S1은 라떼라떼에게 패했고, 16강 토너먼트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었을 텐데. 굳이 S1의 보컬 신홍선씨가 인터뷰에서 말하지 않았어도 직장인으로써 당당히 프로급 현역밴드들과 겨루어 2차예선에서 1위까지 올랐었던 S1의 위엄은 가히 직장인들의 자존심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자신들은 굳이 직장인밴드로 불리기를 꺼려하기는 하지만 블루니어마더의 경우도 있고 해서, 굳이 어렵게 여기고 꺼리거나 두려워하기만 할 것만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 깨져보고 한 번 자신들도 TOP밴드를 노려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았다. 더구나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신해철 자신도 직장인밴드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다. 이태원 엘리트밴드도, 언더그라운드 메탈밴드에도, 인디씬에서도, 대학가의 스쿨밴드에도, 우리나라 밴드계보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러나 더 넓어지고 커져야 할 저변에 대해서. 직장인밴드는 미래다.
그저 그런 고만한 무대를 보여주고 좋은 평가를 듣고 떨어지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노리고 과감하게 도전했다가 장렬히 산화하는 쪽이 그래서 필자로서도 더 멋있게 보았다. 신대철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런 때는 나 이런 놈이라며 당당히 보여주고 장렬히 산화하는 것도 좋다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무대였지만 그 또한 S1의 숨겨져 있던 본질이었을 것이다. 힘겨운 다이어트에, 익숙지 않은 안무까지 소화해가며 이루어내었던. 다시 한 번 경의를 보낸다. 신해철에게도.
제이파워밴드에 대해서는 사실 이번에 조금 실망하는 게 있었다. 기타의 피치가 많이 불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타가 프론트맨이 되어 전면에 나서 있는데 기타의 피치가 불안해지니 상당히 듣기에 거슬렸다. 나중에는 드럼과 베이스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제이파워밴드가 이럴 리가 없을 텐데. 방송을 탓하고, 혹은 내 귀를 탓했지만, 그러나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들으며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구나. 아마 김도균 코치의 말처럼 너무 긴장해서 의욕이 넘친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불안하다는 것이 훌륭한 가운데 약간 거슬린다는 정도지 그들이 훌륭한 밴드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하비누아주는 조금 억울한 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가한다. 하비누아주는 보컬이 전부라고. 보컬만 드러나는 밴드같지도 않은 밴드라는 극단적인 평가마저 들린다. 아마 신대철 코치가 느낀 어떤 불만이었을 테지만. 그러나 기타와 보컬이, 보컬과 베이스가, 베이스와 피아노가, 피아노와 기타가, 그리고 야무지게 그 뒤를 받쳐주고 있는 드럼은 어떤가. 그 수다가 들리지 않는가. 마치 숲속의 새소리처럼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악기들의 수다였다. 그것이 조용히 숲속의 공주처럼 보컬 뽐므를 감싼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그녀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호응해 주는 다른 악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행복한 구름이었던가? 밴드 이름같은 그런 음악이었다.
문제라면 너무 뻔히 보이는 선곡이었다. 아이씨사이다의 '꿍따리샤바라'를 듣는 느낌이었다. 하비누아주의 원래 색깔이 그래서일수도 있겠지만 김광석의 노래가 갖는 어떤 투명한 처연함이 하비누아주의 보컬 뽐무와 너무 잘 어울린다. 아마 그것을 의식해서 굳이 멜로디를 바꾸고 편곡에 많은 공을 기울인 것 같은데, 그러나 너무 산만했다. 하비누아주는 놀래키는 밴드가 아니라 스며들게 만드는 밴드다. 조별경연에서처럼 어느새 살랑이는 강바람과 같은 그런 밴드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쩌면 하비누아주의 음악색깔과는 경연이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지 않은가.
차라리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그런 식으로 편곡했다면 어땠을까? 조별경연에서 화제를 불러모았던 '봄'의 경우처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하비누아주만의 색깔로 소화할 수 있었다면? 이 부분에서는 신대철의 코칭 미스가 아니었을런지. 오히려 더 강하고 빠른 노래를 자기 식으로 소화했을 때 더 강점이 드러나며 심사위원들에 어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 언제고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은 따뜻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투명한 음악을 하는 팀인 것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객관적으로는 제이파워의 승리였지만 주관적으로 하비누아주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미인이 많아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
라떼라떼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은 원곡과 너무 달라 오히려 신선했다. 차라리 어느 정도 눈치를 보고 하는 게 보였다면 원곡을 그렇게 망쳐놓았는가 야단을 쳤을 텐데, 그런 것 없이 마음껏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노는 여유와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원곡자가 누구이든 지금 이 무대에서 이 노래를 연주하고 있는 것은 라떼라떼 자신이다.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멋진 앙상블이 S1이 최선의 전력으로 부딪혔어도 쉽지 않았을 것임을 말해준다.
확실히 밴드경연이라는 게 이래서 무리다. 혼자서 노래부르고 마는 것이면 단지 자기 혼자서 창법을 바꾸든 해서 적응하면 된다. 그러나 단순히 뒤에서 반주를 해 주는 밴드도 아니고, 각자가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는 밴드에서 서로의 합을 짧은 시간 안에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편곡까지 그 기간 안에 마쳐야 한다. 실력이 부족한 밴드들이 아님에도 지적사항이 나오고 마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밴드가 완성되는 것은 술이 익는 것과도 같기에. 술과 같이 밴드 역시 묵을수록 맛이 난다. 하지만 그래서 역시 <TOP밴드>였을 것이다. 서바이벌이고 오디션이다.
아무튼 확실히 신해철은 이슈메이커일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이슈의 중심에 놓일 것인가를 안다.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상당부분 계산된 행동일 테지만, 덕분에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신해철이 칭찬받기보다 욕을 먹을 때 사람들은 더 즐거워한다.
"우리의 인생이란 항해하는 배와도 같다."
"결국 타이타닉은 침몰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사랑이 살아남았다.
김도균의 멋진 명언을 기억하며. 누군가 그를 도인이라 평가한 것을 들었는데. 거장의 풍모가 느껴진다. 약간의 4차원과 더불어.
멋진 16강 토너먼트 마지막 경연이었다. 이제 다음주부터 8강이다. 기대가 크다. 훌륭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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