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이 왜 결심이겠습니까? 결심이 없는 소인은 더 이상 소인이 아니옵니다."
어째서 세종(한석규 분)과 강채윤(장혁 분)이라고 하는 전혀 다른 신분, 전혀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이 함께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고 있는가?
왕을 죽이려는 자와 왕으로서 살아가려는 자, 한낱 노비의 신분으로 한 사람은 왕을 죽이려 하고, 왕의 아들로 태어나 왕이 된 이는 왕으로서 살아가려 한다. 노비가 왕을 죽이는 것도 힘든 일이거니와 왕이 왕으로서 살아간다는 것도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왕이란 중심이다. 또한 정점이다. 모든 것이 왕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모든 것이 왕의 아래에 존재한다. 누군가는 단지 한 가지만 보면 충분하지만 왕은 그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아니 보려 하지 않아도 보지 않을 수 없다. 왕의 아래에 있는 모든 의지는 왕을 통하여 왕 자신에게 전달된다. 그것을 조율하는 것도 왕의 일이다. 죽이거나, 모략을 꾸미거나, 아니면 인내하거나.
어쩌면 태종이 닦아 놓은 길 위로 세종은 상당히 평탄하에 왕위를 지켜왔을 것이다. 비록 대신들이 자기 입장만을 내세워 세종에게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 또한 왕으로서 감당할 부분들일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건을 제시하고 논리로써 설득을 시도한다. 정치의 기본이다. 인내하여 용납하고자 한다면 힘들지만 못할 것은 없다. 단지 조금 더 피곤할 뿐이다.
하지만 세종 안에서도 그에 따른 균열이 일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째서 나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고민하고 이처럼 실천하려는데 신하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가.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만 된다면 더 좋아질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대신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반대만 일삼는가. 그들 또한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고, 무엇보다 충의로써 임금을 위하려 한다면 결코 좋은 뜻으로 하려는 일에 반대만 일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에 분노하고 만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회의일 것이다. 힘들 때마다.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마다. 번거로움에 지칠 때마다. 그러나 이제껏 애써 눌러오던 그같은 고민은 이내 밀본이라는 거대한 적을 만나 곪은 상처처럼 터져버리고 만다. 세종 자신을 위해 일하던 허담, 윤필, 장성수 등의 천지계원들이 밀본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세종 자신이 죽임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이대로 인내하여 화합하고 타협하며 정치를 하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인가?
불안한 것이다. 두려운 것이다. 처음으로 제대로 어려움을 맞아 세종의 굳은 결심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래도 좋을 것인가? 이대로 되어도 괜찮을 것인가? 아버지 태종의 죽음 앞에 그토록 당당히 외치던 자신의 다짐이 이대로도 옳을 것인가?
심마인 것이다. 역사상 수많은 군주들이 바로 이 심마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폐정을 저지르고 폭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다. 자기가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문제라 생각한다. 그들이 있어 제대로 바르게 되는 것이 없다. 그들이 있어 분명 옳은 방도임에도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독선에 빠지게 된다. 독선에 빠지며 함부로 의심하며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지난 7회에서 세종이 말한 사람을 죽이고 싶어지는 때다. 정확히는 자기 자신에 자신이 없다.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하려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고, 그러한 동요를 감추기 위해 더욱 난폭해질 수밖에 없다.
세종과 강채윤의 대화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분노했고, 그만큼 외로운 결심이었으니까요."
한 마디로 당위일 것이다. 당연히 그리 되어야 하는 것. 반드시 그리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래서 절박하고, 그래서 그러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며, 그래서 그것을 가슴에 새기는 순간이 더없이 두렵고 불안하고 외롭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오로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할 터이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오롯한 자기의 것이다.
복수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해 맡길 것인가? 더구나 왕을 죽이는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그의 도움을 구할 것인가? 왕의 자리를 대신하라는 것은 반역을 하라는 소리와 같다. 누군가 곁에서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결국 판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아버지인 태종조차도 세종과 왕으로서의 길에 대해 끝내 공감하지 못했다. 태종은 세종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세종은 태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태종의 신하인 조말생(이재용 분)또, 다른 관료들이나 집현전 학사들조차 서로가 생각하는 왕의 길이 각각 다르다. 누구의 길을 쫓을 것인가? 더 간절하고 더 분노하고 더 외로운 오롯한 그 길을 쫓을 수밖에 없다. 때로 두렵고 때로 불안하더라도,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해도 그 길은 누가 대신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서로 신분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지만, 그래서 세종과 강채윤은 정확히 대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왕으로써, 다른 한 사람은 그 왕을 죽이려는 암살자로써. 둘 다 추구하는 바가 왕이라는 한 가지에 있어서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것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하면서도 흉폭한 감당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세종의 가장 인간다운 면모일까? 비로소 왕으로서 갈림길을 맞았다. 밀본이라는 거대한 적을 맞아, 그리고 그에 협력하는 내부의 적들에 대해, 그들은 원래 세종 자신의 신하들이었을 터다. 밀본의 존재와 더불어 신하들의 반대는 세종에게 더욱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대로도 좋은가? 이대로도 괜찮을 것인가? 나는 옳은가? 여기에서 젊은 날 아버지 태종과 맞서던 당시의 자신(송중기 분)아 나타나 그를 비웃는다.
"이방원이 왜 이방원인가? 이도가 왜 이도인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이도인 게지!"
그것은 세종 이도의 이방원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감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 태종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 아버지 태종과는 다른 왕이 되어 다른 조선을 세우고 싶다. 그로써 아버지 태종에게 입증하고 싶다. 내가 옳다. 그 탐욕과 집착. 그같은 세종의 나약함이 밀본이라는 적을 만나며 모습을 드러내고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강채윤을 통해 전해진 화두가 '결심'이었다. 과연 그는 무슨 뜻으로 어떤 의도로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인가? 그 필연과 당위는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결심이란 곧 의지다. 의지란 동기다. 생각케 하고, 말하게 하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 이유이며 목적일 것이다. 잠드는 것조차 두렵던 강채윤이 세종에 대한 복수심에 다시 잠들 수 있게 되었듯, 소이(신세경 분) 역시 홀로 장성수가 죽은 삼각산 인근을 뒤지며 세종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수행한다. 비로소 책자를 찾아 불을 붙일 때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은 구원의 눈물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자기 때문에 모두가 죽였다고 하는 똘복이 시절의 강채윤의 말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를 몰아붙인다.
왕으로써, 왕이 되어 왕으로써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그는 과연 어떤 의도로, 어떤 이유에서, 무엇을 목적으로 그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가? 광평대군이 그 의도하는 바를 읽으려 했을 때 세종이 으르렁거리듯 경고하고 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왕의 동기인 때문이었다. 그것은 역린과 같은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왕이란. 그것은 그의 무력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뿌려진 비극의 잔재를 발견하는 자리에서 현실처럼 구체화되어 다가온다. 암살자는 암살자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자신을 죽이면 되는 것이고, 자신은 왕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다한다.
아무튼 밀본의 실체가 더욱 거대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유림의 거두인 혜강에서, 조정의 실세로 좌의정의 자리에 있는 이신적(안석환 분)까지. 이신적은 자신의 측근인 예조좌랑 장은성까지 끌어들인다. 세종의 정책에 반대하는 관료들과 결탁하여 이것은 세종에 대한 위협적인 움직임으로까지 발전하고 만다. 세종의 세졔개혁은 조선의 근간인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성리학이라는 자체가 원래 사회의 기본단위로서의 사대부를 전제한다. 물러나서는 선비로써 향촌을 지키고, 나아가서는 조정에서 벼슬을 받아 국정을 책임진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중앙의 조정이며, 그를 보좌하여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은 향촌사회의 유림 자신들이다. 왕도 어리석을 수 있고, 조정도 무능할 수 있다. 그래서 조정에 나가서는 관료가 되어 왕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이끌고, 물러나서는 향촌에 있으면서 조정을 감시하여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끈다. 백성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성리학적 가치가 사회 구석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대부의 경제기반 가운데 하나인 토지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리려 한다니.
수령고소금지법은 향촌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세력이 조정에서 파견한 지방관에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연분구등과 전분육등은 재정을 충분히 확보함과 동시에 왕에게 있어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조정의 재정이 풍족해지는 만큼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은 약화된다. 확실히 심종수(한상진 분)의 주장처럼 조선을 건국하면서 사대부들과 했던 합의를 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수령고소금지법을 폐지한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세종이 세운 세제개혁은 성종 대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조선 조정의 재정이 악화일로를 걷게 되는 계기였다. 상당히 날카로운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기에 심종수의 말은 조정의 대신들에게도 먹힐 수 있었던 것이다.
강채윤과 소이의 만남이 애잔하다. 물론 서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오래 되었다. 여전히 강채윤은 소이가 어렸을 적 그 소이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오히려 강채윤에게 큰 마음의 빚을 지고, 그것을 평생의 짐으로 짊어지고 살아왔던 소이이기에 강채윤의 말 몇 마디에서 그의 정체를 눈치채고 만다. 정체를 알지 못한 채로도 강채윤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이를 연민하게 되고, 연민을 넘어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마음에 품어 온 강채윤의 존재를 아레 된 소이의 이후의 행동 또한 달라지게 될 것이다. 비극일까? 그들은 이미 충분히 비극 속을 살아가고 있다.
성삼문(현우 분)이 등장하면 어쩐지 드라마가 밝아진다. 성삼문이 나중에 어떻게 죽었는가를 알고 있기에 그 밝음이 어쩐지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성삼문이 아니라면 짐짓 복면을 쓰고 강채윤을 납치하여 사실을 알아내려 협박하다가 도리어 얻어맞는 장면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강채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켰음을 알면서도 복면을 하고 습격할 생각을 하다니. 또 강채윤에게 한 방 얻어맞고서도 강채윤과 협력하여 사건을 추적해간다.
윤평(이수혁 분)과 강채윤의 승부는 너무 쉽게 결판나고 말았다. 역시 적전제자인 강채윤에 비해 그 배운 경로를 알 수 없는 윤평 쪽이 여러가지로 밀린다. 확실히 무협드라마였다면 여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부를 보지 못하고 다음을 이약하는 방식으로 묘사되었을 텐데, 역시나 역사스릴러이다 보니 승부보다는 윤평이 속한 밀본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다. 심종수 또한 무예가 예사롭지 않으니 그것이 변수로 작용할까? 다만 액션에서 동선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동작마더도 어딘가 어색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넌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그것은 자각이었을 것이다. 비로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깨닫는다. 물론 끝은 아닐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묻고, 계속 고민하고, 계속 회의하며, 답을 구하려 할 것이다. 아마 세종이 성군으로 남은 이유일 것이다. 픽션이지만 그것을 믿는다.
세종이라고 하는 역사상의 군주에 대해서. 그리고 왕이라고 하는 보편론을 통해서. 그것은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선 전기의 시대와 사람들이 오히려 허구를 통해 시청자 앞에 바짝 다가 앉는다. 21세기의 귀퉁이에 15세기의 사건과 옮겨 놓는다. 마치 실제 그러했던 것처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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