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균전제가 아닌 정전제였던 것일까? 정전제는 멀리 중국의 주나라에서 채택한 토지제도였다. 실제 실시되었는가의 여부조차 불확실하고, 무엇보다 중국의 주나라에서 백제의 사이에는 무려 천 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당시 이미 중국에서는 북위 이래 균전제가 실시되고 있었고, 신라에서도 불과 수십년의 차이를 두고 8세기 성덕왕 대에 균전제의 영향을 받은 정전(丁田)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성인남성에게 땅을 고루 나누어주어 경작케 하고 세금을 거둔다. 물론 특권적인 신분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경제적인 이익을 보장해준다. 천 년도 전에 실시된 정전제에 비해 한층 더 간결하고 효율적인 제도였다. 그런데 왜? 흥수(김유석 분)은 중국에서 균전제가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하기는 민의를 수렴하는 정사암회의라는 부분에서는 더 이상 할 말 자체가 없어진다. 유럽의 의회민주주의라는 것이 몇몇 선지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던가? 아니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어진다고 해서 제대로 운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이후 일방적으로 의회민주주의가 시작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예속되어 있던 국민들이 자신의 표를 헐값에 팔아버리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금품과 선동에도 쉽사리 유권자는 휩쓸리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역사상 과연 민의를 수렴하여 반영하려는 시도가 아주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것들이 오래가지 못한 것은 그것을 유지할만한 역량이 아직 그들 사회에 축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선지자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민의 자각이 필요하다. 시민혁명이 바로 그들 시민계급에 의해 주도된 이유일 것이다. 시민혁명 이후 만들어진 최초의 의회 역시 노동자와 농민이 배제된 도시의 상공업자로 이루어진 시민들의 의회였다.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충분한 교육을 통해 의식 또한 성장했다. 기존의 귀족과 겨룰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 어째서 생쥬스트는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의 인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려 했던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를 떠올려 보면 되겠다. 왕안석의 변법은 분명 농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였지만 정작 농민들의 반발로 실패하고 말았다. 하기는 흥수 역시 그같은 흔한 낭만적 개혁가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상을 믿고 사람을 믿는다.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을 믿는다. 그래서 황후인 연태연(한지우 분)을 오판하여 부여태를 태자로 세우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믿는다. 자기 머리를 믿고, 자기 이상을 믿고, 그로 인한 결과를 믿는다. 조금은 납득이 간달까?
실패가 예견된 개혁이었다. 오히려 같은 귀족일 조정의 관료들이 흥수의 계획에 대해 그다지 반발하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로 그래서다. 어차피 실패할 것이다. 땅을 나누어준다고 해도 그것을 지킬 힘이 없고, 정사암회의에 출석한다 해서 제대로 국가의 큰 일을 이해하고 자기 의견을 낼만한 식견도 의지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런 정도야 중앙 정계에서 닳고 달은 귀족의 노회함과 여전한 힘으로 얼마든지 자기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다. 상당히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지방에 가면 몇몇 토호에 의해 모든 것이 주도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는 현실이다. 이상은 현실을 추구하기에 이상이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필자가 왕이더라도 성충(전노민 분)과 흥수와 같은 머리만 있는 인간들은 그다지 중요한 자리에 오래 놔두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항상 사고만 치고 그 뒷수습은 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비관이 있어야 그 뒷일에 대한 대비도 함께 세울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지나치게 믿고 낙관하니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닥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 만다. 연태연의 변신에 당황하여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한심한 모습이 그것이다. 연태연을 달래려 오랜 동지이며, 이상을 위해 스스로 버리기까지 했던 은고(송지효 분)를 포기한다. 의자가 깨어나 상황이 뒤바뀔 것을 전혀 예견하지 못한다. 한심하다.
결국은 현대의 관점으로 그 시대의 이야기를 쓰려 하기에 생겨나는 문제일 것이다. 백성들에 이익이 되는 정치. 백성들의 뜻을 반영한 정치. 뜻은 좋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역사상 비로소 안정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과연 언제이던가. 그러기 위해 과연 어떠한 것들이 필요하고 준비되어 있었던가. 국민국가가 처음 나타나게 된 것이 18세기 이후다.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의 정의로써 그 시대의 정의로 삼으려 하니 나타나는 모순이다. 아니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대에 그런 것들을 배치함으로써 조롱하려는 의도이던가. 확실히 흥수의 계획대로만 추진되었다면 시청자들은 공중파 드라마를 통해 지금 그들이 당연한 상식으로 여기고 있는 것들이 시대적 한계로 인해 엉망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을 것이다. 때로는 민주주의란 이렇게 우스워지기도 한다. 한심하다.
말하지만 이 드라마는 역사드라마가 아니다. 단지 백제라고 하는 실재했던 역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다. 현재의 관점을 투사하여 보여주려는 판타지 드라마다. 이미 그렇게 선언하지 않았던가. 대야성을 공격하는데 정작 윤충이 참여하지 않았다. 이미 고구려의 국정을 연개소문이 장악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나서 이제 다시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했다고 말하고 있다.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국정을 장악한 것은 그가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즉위시키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였다. 그 전에는 동부의 귀족으로써 중앙의 귀족들의 견제를 받아 천리장성의 축조에 매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야성이 함락당한 당시라면 연개소문은 이미 고구려의 실권자였다. 그런 드라마다.
어쨌거나 참 은고의 처지가 불쌍하다. 어쩔 수 없이 의자와 결혼하여, 그러나 계백(이서진 분)을 끝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계백은 대장군이라는 자신의 위치와 왕의 후비라는 은고의 신분으로 인해 그녀를 거부한다. 갈 곳이 없어진 은고는 원망하면서도 의자에 매달리게 된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팔자라는 것일까? 그래도 사택왕후는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타개하기는 했었는데. 그녀가 당하는 굴욕과 위협이 꼭 계백에 대한 그녀의 원망을 더욱 키워주는 듯하다. 자기 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이 오로지 의자에게만 기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게 비극일 터다. 아이러니. 한 나라의 대장군으로서 올바른 선택이 그러나 결국 한 여자에게 한을 심어주게 된다. 한 나라의 왕의 후비로서 당연한 선택일 터이건만 거기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 원한은 깊지만 살기 위해서는 그를 기대고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상당히 재미있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러나 전반적인 어수선한 분위기가 그 깊이를 떨어뜨린다. 살기 위해 연태연과 부여태를 죽이려 하고, 그것이 들통나자 다시 계백에게 사정하며 매달리는 은고의 모습은 가련하지만 그 뿐. 비장함이 없다. 한계다.
요소요소 재미있을만한 부분들이 눈에 뜨인다. 특히 계백과 은고 사이의 미묘한 갈등은 상당히 몰입감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너무 감당할 수 없이 큰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탓에 산만하여 완성도가 떨어진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것이야 사실 모르고 보는 사람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드라마로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분발하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 하필 한지우가 비중도 작지 않은 연태연으로 캐스팅된 것도 그나마 문제를 더 키우는 요소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드라마가 그녀에게로 가면 더 어수선해진다. 안타까운 부분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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