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극중 인물들이 그 본질을 꿰뚫고 있다. 아버지 박창주(임채무 분)도, 어머니 강수정(김해숙 분)도, 친구인 장재민(이상우 분)도, 무엇보다 이서연(수애 분) 자신이. 모르는 것은 오로지 박지형이라는 인간에 대한 맹목적 애정을 보이고 있는 노향기(정유미 분) 정도일까?
변명이다.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선택한 것이다. 단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싶을 뿐이다. 좋은 남자인 척 하지 말라. 구원자 컴플렉스라도 앓고 있는 것인가? 솔직한 말로 박지형이 노향기 앉혀 놓고 다른 여자 있어서 결혼 못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만일 필자가 아는 누군가의 남자친구가 저런다면 아마 그대로 웃으며 보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기왕에 결혼을 취소할 것이면 그 전에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하던가. 친구들도 만나고, 친척들에게도 다 인사를 하고, 여러 주위 사람들에게 청첩장까지 다 돌렸는데 이제 와 파혼이라니. 노향기의 아버지 노홍길(박영규 분)의 말처럼 한국사회에서 그와 같은 경우 여자 쪽에 더 타격이 크다. 거의 일방적으로 노향기만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비겁하다. 그는 단 한 순간도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비겁한 에고덩어리다. 그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기왕에 그렇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그의 선택이었다. 그가 선택했고 그래서 모든 것이 거기까지 갔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했다. 진정 사랑하는 이를 놔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면서 평생 후회하고 아파하는 것도 그가 치러야 할 댓가 가운데 하나다. 병을 앓고 있다면 그 병으로 인한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자체가 그가 치러야 하는 댓가일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로부터 결혼 전날 파혼통보를 받은 노향기는 어찌 되는가? 노향기가 파혼통보를 받고 비극이 주인공이 된다면 이서연의 처지는 어떻게 될까? 그러나 오로지 자기 뿐이니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였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또다른 후회와 미련을 남긴다. 그런 상황에서도 박지형을 위해 엄마 오현아(이미숙 분)으로부터 온갖 소리를 들으면서도 끝끝내 박지형만을 위하려 드는 노향기다. 그러나 그는 이서연에게도, 노향기에게도, 누구에게도 그와 같은 배려를 보인 적이 없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 기분, 자기 감정이다. 그 이상은 감당이 되지 않는다.
과연 얼마나 욕을 먹게 될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역대 김래원이 먹었던 욕 그 이상을 이 드라마를 통해서 먹게 될 것 같다. 그만큼 박지형이라는 캐릭터는 시쳇말로 재수가 없다. 우유부단한 정도가 아니라 비겁하다. 비겁한 것을 넘어 무책임하다. 그런 주제에 자기연민까지 한다. 오로지 자기만 피해자다. 온갖 사과와 반성의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결국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이런 저런 변명으로 그는 자기의 원래 뜻이 아니었음을 애써 항변하며 피해자이기를 원한다. 화가 나는 이유다.
하기는 이런 것이 선택에 의한 비극이다. 악의에 의해서가 아니다. 단지 선택했을 뿐이다. 단지 주어진 안에서 선택했을 뿐인데 그것이 이와 같은 비극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연민할 수 있는 이유다. 모든 것은 박지형의 선택이고, 전혀 악의없는 선택이었건만 모두가 불행에 빠지고 말았다. 노향기는 물론 노향기와 박지형 자신의 부모까지. 아마도 아들의 선택의 이유를 알게 된 박지형의 부모로 인해 이서연부터도 곤란한 처지는 이어질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노향기와 부모를 포기했고, 이서연을 위해 노향기와 부모를 포기했다. 무엇이 옳은가?
아무튼 심각하다. 필자 역시 노인성이기는 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다 원래 그런 분이 아니었다고 했다. 알츠하이머로 기억과 더불어 성격까지 바뀌게 된 경우라고.ㅁ 무척 폭력적이었다. 말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는데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보였다. 자식들마저 당황하고 있었다. 과연 내 어머니인가? 단지 아직 밤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려는 동생 이문권(박유환 분)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조짐을 본다. 자제력을 잃고 통제를 상실해간다. 그로 인해 바로 생명을 잃기도 한다. 그런 과정들은 어떻게 묘사될까? 단순히 기억만 잃는 것이 아닌 인격 그 자체마저 잃게 되병인 것이다. 점차 바뀌어가는 모습에 이서연이나 그 주위에서나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하지만 역시 지금 당장 궁금한 것은 노향기는 어찌할 것인가? 20년 넘게 박지형만을 보아 온, 결혼이 파토나려는 상황에조차 박지형만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고 마는 그녀다. 남자의 변심으로 차이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그것이 지금으로서 전부라는 것이 걸리기 하지만. 이제 임신까지 하게 되면 박지형의 선택은 몇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가? 재미없다. 정유미에게도 이것은 기회일 것이다. 그녀의 모습이 매력적일수록 극적 비극은 더욱 깊어져간다.
솔직히 조금 고풍스러운 드라마다. 상당히 진부한 부분이 몇몇 눈에 뜨인다. 설정이며 어투며 전반적인 것이 화면만 요즘의 HD일 뿐 고전적인 멜로의 답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다. 지난 수십년 간 인간은 충분한 진화를 거치지 못했다. 아쉬움일 것이다. 재미있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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