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한국 경찰드라마에 대해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더불어 무척 아쉬워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범죄자는 결코 공권력 앞에 적이 될 수 없다. 단지 체포하여 처벌받도록 해야 할 죄인에 불과할 뿐이다. 멋있을 이유도 대단할 이유도 없다.
그 대단한 흑사회의 보스다. 사실상 흑사회 최고 우두머리다. 그러나 마침내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은 얼마나 초라한가? 부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정도영(정호빈 분) 혼자서 김선우(최시원 분)와 이수윤(이시영 분)을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볼썽사납게 제압당하고, 더구나 그것을 저지하려던 흑사히의 위원장 유영국(장용 분) 역시 권정률(이성재 분)에 의해 체포당하고 만다. 물론 그 사이 오용갑의 개입이 있기는 하지만 그 대단한 흑사회의 보스치고는 초라한 말로였다.
결국 흑사회란 없었던 것이었다. 최희곤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범죄조직은 물론 해양경찰마저 마음대로 쥐고 흔들던 흑사회와 최희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그조차 고작 열 명도 채 안 되는 수사 9과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어떻게 손을 쓸 여지조차 없이 무력하게 경찰에 체포되어 법 앞에 그 초라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해양경찰만 있을 뿐이다. 흑사회라고 하는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법과 정의의 수호자 해양경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그래서 아쉬운 마무리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범죄조직따위 어떻게 해도 공권력 앞에 적이거나 경쟁자일 수 없다. 도전자일 수도 없다. 그들은 범죄자다. 사회의 악이다. 공권력은 바로 그럴한 존재들로부터 이 사회와 구성원을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지고한 권력을 그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런데 그러한 지고한 공권력 앞에 범죄조직 따위가 적으로서 존재한다? 위협을 하고 긴장케 한다? 얼마나 사회가 썩어 있고 스스로 그러한 오류조차 바로잡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있다는 의미이겠는가? 말기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모습이다. 결코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드라마의 장르가 다름아닌 '스릴러'라는 것이다. 스릴러란 곧 공포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흉폭한 '적'에 대한 공포에서 오는 긴장이 곧 스릴러의 이유인 셈이다. 두려워하고 긴장하고 분노하며 증오한다. 그러한 격정이 한 순간 표출되었을 때 그로부터 짜릿한 이완의 순간이 찾아온다. 스릴러의 카타르시스다. 결코 깔끔할 수만은 없는 장르인 셈이다.
마지막까지 두려움이 남아 있어야 한다.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증오와 원망이 남아 있어야 한다. 허탈함이다. 너무 강한 적을 힘겹게 이기고 난 뒤의 감정적 탈진상태. 그만큼 적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격정이 드라마 내내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범죄조직은 단지 범죄자에 불과하지만 경찰이 주인공이라면 범죄조직 역시 경찰의 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전혀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그 존재를 의식하고 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긴장을 유지하며 그것을 한 순간에 분출한다. 그런데 없었다.
내내 지적해 온 부분이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차라리 권정률이 오용갑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 순간까지 감추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오용갑이 배신자인 것을 시청자는 모두 아는데 오로지 권정률을 비롯한 수사 9과만 그 사실을 모른다. 긴장하게 된다. 오용갑으로 인해 또 어떤 피해가 있을까? 어떤 희생자가 나오게 될까? 정덕수(김준배 분)마저 교도소 안에서 흑사회 조직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작 오용갑은 이수윤을 구하기 위해 위원장과 대립하고, 그 시점에 오용갑을 추적한 권정률이 나타난다. 그런 쪽이 흑사회의 보스 유영국과 수사 9과의 김선우와 이수윤, 흑사회의 배신자 오용갑이 서로 얽히는 과정에서 더욱 긴장을 높이고 보다 극적으로 그 긴장을 해소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너무 흘렸다. 채 무르익기도 전에 너무 미리 흘려버렸다. 지난 15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원탁이 죽는 과정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더 참고 눌렀으면 보다 극적으로 격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분노와 공포, 원망과 증오, 충격과 갈등, 그러나 지레 설익은 감정을 흘려버림으로써 정작 필요한 순간 격정을 흐트러 버렸다. 짜릿하다기보다는 허탈했다. 허탈하다기보다는 허무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지겨움 끝에 기다린 상황이 온 데 따른 반가움일까?
스릴러와는 맞지 않았다. 차라리 경찰물 가운데 몇 회 분량의 조금 긴 에피소드로 족했을 것이다. 단지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 뿐이라면. 단지 시민으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공권력으로서 범죄자를 쫓아 체포하는 것 뿐이라면. 그러나 장르는 스릴러였고 내용은 단지 일반적인 경찰수사물에 불과했다. 나머지를 채워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이 부족한데 나머지는 오히려 긴장을 풀어버리는 역할을 맡았다.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흑사회로 인해 긴장한 적이 없다. 배려일 것이다. 공중파 드라마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인데 드라마 보고 놀라거나 해서야 곤란하지 않은가.
차라리 수사 9과가 처음 만들어진 목적처럼 미제사건을 해결하며 띄엄띄엄 흑사회를 쫓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해양경찰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미처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가운데서는 분명 흑사회와 관련이 있는 사건들도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굳이 억지로 긴장을 조성하지 않으면서도 해양경찰에 의한 흑사회 추적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충실히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민혁(한정수 분)과 이충식(정운택 분)의 만담 역시 불필요한 사족으로만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대성(박성광 분)까지 더해지며 더 복잡해진 홍지아(김윤서 분) 쟁탈전도 깨알같은 재미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긴장은 흑사회를 쫓는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은 선택과 집중의 실패였다. 선택했어야 했다. 흑사회라고 하는 거대범죄조지을 쫓는 해양경찰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면, 과연 어떠한 요소로써 그것을 스릴러로 완성할 것인가? 흑사회에 대한 공포인가? 흑사회를 쫓는 과정에서의 긴장인가? 당연히 전자에는 후자가 따라온다. 그러나 후자는 반드시 전자를 전제하지는 않는다. 후자의 경우는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다시 선택을 통해 극적 긴장을 고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이 단지 늘어만 놓고 있었다. 이것저것 잔뜩 늘어 놓고 있다 보니 정작 팔고자 하는 물건은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값비싼 골동품이 보세물품 가운데 섞여 같이 보세로 보인다.
하나면 족하다. 넷보다 둘이 낫고, 둘보다 하나가 낫다. 나름대로 마무리는 필자의 가치관에 걸맞는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드라마로서 완성도를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아쉬움이 무척 크다. 16회나 끌 이야기가 아니었다. 6회 정도면 적당했을 것을. 4회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역시 선택과 집중의 문제였다. 장르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튼 범죄자는 단지 범죄자일 뿐. 제아무리 대단한 흑사회의 보스라도 그것은 다르지 않다. 나중에 후회하고 마음을 돌렸어도 이미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상당히 무른 마무리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훌륭했다. 오용갑도 살아남았고, 강주민(장동직 분)도 살아남았다. 역시 한국 경찰드라마는 조금은 무른 마무리 쪽이 어울린다. 대한민국 사회가 그렇게 막장은 아니지 않은가.
기대가 컸다. 그런 만큼 실망도 컸다. 더 나은 대단한 드라마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장르가 주는 기본적인 재미는 있었다. 필자는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더 실망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아쉽다. 그래도 좋았다. 미묘하다. 조금은.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50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백 - 흰여우 군대부인 요녀 은고 나타나다! (0) | 2011.11.09 |
---|---|
천일의 사랑 - 박지형의 에고에서 비극을 예감하다! (0) | 2011.11.09 |
계백 - 죽여야 하는 이유와 죽일 수 없는 사정... (0) | 2011.11.08 |
천일의 약속 - 박지형의 에고와 자기연민, 비극을 사랑하다! (0) | 2011.11.08 |
포세이돈 - 마침내 드러난 배신자의 정체와 그러나 맥빠지는 반전... (0) | 201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