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계백 - 흰여우 군대부인 요녀 은고 나타나다!

까칠부 2011. 11. 9. 09:19

확실히 계백(이서진 분)도 봉건시대의 지휘관이 맞다. 국왕의 명을 받들어 싸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적을 맞아 싸운다. 그런 것 없다. 자기 싸움이다. 자신의 군사고, 자신의 싸움이며 그 승리 또한 자신의 전리품이다. 적의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래서 얼마든지 살려보낼 수 있다.

 

계백은 말한다. 왕이 아닌 백제의 백성들을 위해 싸운다. 그렇다면 백제의 백성들을 위해 그는 김유신(박성웅 분)을 죽였어야 했다. 비록 과거 그가 김유신으로 인해 목숨의 구함을 받은 바가 있다고는 하지만,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개인의 수치이고 위험한 적을 죽이는 것은 나라와 백성에 이익이 되는 것이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연계에 연전연패하며 궁지에 몰려 있던 신라를 군사적으로 겨우 지탱하고 있던 인물이 바로 김유신이었다. 그런데도 계백은 나라와 백성의 이익이 아닌 개인의 신의를 선택하고 만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재량이고 권한인 것처럼.

 

원래 봉건시대의 전쟁이 그러했다. 군이란 나라의 군도 왕의 군도 아니다. 다만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이 왕의 신하로써 나라에 속해 있을 뿐이었다. 장수는 왕명만을 따르고, 그 부하들은 다시 장수의 명령을 따른다. 그렇게 봉건시대의 군대는 쉽게 군벌화되고 있었다. 중세유럽의 봉건영주들이란 그렇게 군벌화된 기사들이었던 것이다. 싸움이란 그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행사였다. 역시 이 또한 그다지 세세하게 살펴 설정하고 쓴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역시 권력에 눈이 멀면 사람이 바보가 된다. 손에 쥔 먹을 것을 놓지 못해 사냥꾼에 잡히고 마는 원숭이처럼 너무 큰 이익을 앞에 두다 보니 다른 것은 생각 못하고 그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토록 영명하던 은고(송지효 분)가 단지 명분에 불과한 왕후와 태자의 자리를 탐내어 신라와 내통을 시도하다니. 내통을 시도하다 덜미를 잡혀서 백제에 해가 될 수 있는 첩자노릇을 강요당한다는 것 또한 이전의 은고라면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하기는 보통 일이 많았는가? 의자(조재현 분)의 계략에 의해 일족은 몰살당하고 자신은 사랑하지도 않는 의자의 품에 안겨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그러한 내막을 알게 되었을 때 의자가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왕후 연태연(한지우 분)에 의해 목숨의 위협까지 받고 있었다. 그때 계백과도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족도 사랑도 없이 남은 것이라고는 알량한 왕후라는 지위와 권력, 그리고 자신의 핏줄인 태자의 앞날 뿐이다. 바보가 될 만도 하다. 시야가 극단적으로 좁아진다.

 

이로서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한 흰 여우 군대부인이 은고로 확정되었다. 단지 국정을 농단하여 충신을 죽이고 왕으로 하여금 사치케 만드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예 임자의 배신까지 더해지며 그야말로 백제가 멸망하는 원흉이 되고 말았다. 백제의 기밀을 팔아넘기고, 충신인 성충(전노민 분)과 흥수(김유석 분)을 죽이고, 명장 계백을 위험에 빠뜨리고, 왕은 올바른 판단을 못한다. 하긴 고작 계백 하나 없다고 망하네 마네 하는 정도의 나라라면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리 몰아가려 한다. 백제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왕은 독선적인데다 의심만 많고, 신하들은 왕의 입장을 생각 않고 자기 입장만을 주장한다. 장수도 없다. 계백 말고 백제에는 전략을 논의할 참모도, 전술을 세울 지휘관도 없이 지리멸렬이다. 그 동안 김유신에게 연전연패하며 무수히 많은 병사가 죽어 남은 병력이라고는 고작 5만. 왕후는 사사로운 욕심에 나라의 기밀을 팔아 넘기고 있다. 이 쯤 되면 백제는 망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워낙 병사들이 많이 죽어 주력을 변경에 배치하다 보니 사비성이 신라군의 급습에 노출되었다는 설정이니 백제의 멸망은 이때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당시 백제에 진정 병력이라고는 5만 정도가 고작이었는가? 백제가 멸망하고 - 아니 정확히는 부여풍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와 백제의 마지막왕이 되어 나당연합군에 저항할 때도 백제는 여전히 수만의 병력을 동원하고 있었다. 황산벌에서 5천 결사대를 이끌고 김유신의 신라군을 맞아 싸운 계백 이외에도 백강에서 강을 거슬러 상륙해 오는 13만 당군을 맞아 싸우던 병력도 있었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전방의 성들을 무시하고 사비성을 직접 급습해 오는 나당연합군으로 인한 다급한 상황에서 동원된 병력이 그 정도였다.

 

당시 백제의 인구는 삼국 가운데 가장 많았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이 몇 차례나 백제를 패배시키고 심지어 그 왕까지 잡아 죽이면서도 끝내 백제를 멸망시키지 못한 이유였다. 성왕이 신라군에 죽은 지 불과 수십년만에 무왕과 의자왕대에 이르러 다시금 힘을 회복하여 신라를 몰아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호남은 지금도 한반도 최대의 곡창지대로 꼽힌다. 그 호남이 백제에 속해 있었다. 식량생산이 풍부하다는 것은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다는 뜻으로, 그 인구는 곧 징집되어 군사력으로 동원된다. 요즘처럼 상비군이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죽으면 죽은 만큼 다시 징집하여 전선으로 보내면 된다.

 

군사적으로 백제가 신라에 밀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당군이 고구려를 공격하다가 안시성에서 패퇴하는 사이 신라가 고구려의 뒤를 치려는 것을 의자왕이 절묘하게 그 기회를 노림으로써 도리어 서쪽의 성 일곱개를 빼앗기고 있던 터였다. 고구려와의 연계로 성 30여 개를 잃으며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니 신라도 어쩔 수 없이 굴욕적인 조건에 당나라군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신라군에 백제는 너무 어이없이 농락당한다. 김유신이 있어서 신라가 버틴 것이었는데, 계백이 있어서 백제가 버틴다. 의자왕의 공이었던 이전의 모든 군사적 성공은 물론 기록에도 없는 패배와 실패까지 모두 끌어안은 채.

 

연개소문이 그렇게 뛰어난 야전지휘관이었는가? 사실 연개소문은 동부대인 연태조의 아들로 상당히 명문에 속하는 집안의 자제였다. 한 마디로 귀족이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유력귀족의 아들로서 당연히 군사적 역량도 갖추어야 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의 무장으로서의 역량을 판단하기에 남은 기록은 전혀 없다. 하물며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고 난 다음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요한 고여전쟁에서조차 연개소문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당군과의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 과연 그런 연개소문이 계백과의 연계를 위해 직접 출전하여 김유신과 싸웠겠는가?

 

그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단순한 계산이었을 것이다. 계백도 나오고 김유신도 나온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연개소문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그로써 계백과 김유신의 라이벌 관계도 더욱 부각되는 효과를 얻는다. 아니 정확히 승자는 연개소문이었다. 정면으로 붙어 김유신이 연개소문에 패했는데, 계백은 김유신을 그렇게 이기지 못했으니. 아마 그다지 자세한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그런 장면이 있으면 재미있겠다.

 

의자왕의 변신도 너무 극적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면 어째서 그때는 그러했는가? 물론 나이를 먹으니 바뀌게 되는 것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사람이 바뀔 것이라면 - 12년이라는 시간이 그야말로 아무런 계기도 없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연속성 없는 장면들이 당황스러웠다. 계백은 고작 12년의 시간을 벌기 위해 그 어려움을 겪고 떠나야 했던 것인가?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와 장면들에 오히려 어리둥절하기만 할 뿐이다. 굳이 그랬어야 했던 것인가.

 

연신 신라를 몰아붙이고 있던 것은 백제였는데 그런 것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그러한 공세를 주도한 것도 다름아닌 의자왕이었건만 그조차 빠져 있고,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계백의, 계백을 위한, 계백에 의한, 역사를 빙자한 영웅판타지. 이제 성충도 흥수도 은고도 없다. 계백 뿐이다. 이제는 역사적 사실이 어떠했고보다 그저 어디까지 가려는가 한 가지만 궁금할 따름이다. 이렇게까지 철저히 역사를 무시하는 역사드라마도 신기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이다.

 

대사가 유치하다. 진심으로 유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연개소문과 계백이 만났을 때. 이것이 과연 한 나라의 군권을 쥔 최고지휘관들이 나눌 대화인가? 아무리 무장이기로서니 전혀 아무런 교양도 지적훈련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디테일이 없다. 바로 드라마의 한계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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