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서재명(손창민 분)의 동기를 이해할 수 없다. 과거 그가 그토록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었는가? 아니면 그의 부모가 운전기사라서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었는가? 과연 그토록 오만하고 거친 사람이 어차피 고용인인 회사원과 운전기사를 구분할 까닭이 무엇일까?
기업이라고 하면 많은 일자리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원을 할 것이다. 이력서를 내고,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본다. 대학은 어느 정도 개인의 성실성과 기존의 질서에 대한 순응도를 볼 수 있으니 의미가 있다. 물론 실력도 있다. 하지만 부모의 직업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그것을 회사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게 떠든다는 것은 어떤 양식인 것일까?
하긴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치부를 아는 김인배에 대한 경계이며 반감이었을 수도 있다. 운전기사의 아들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서재명이 지은 죄를 알고 그에 동참했던 김인배에 대한 혐오이고 경멸이었을 것이다. 실제 서재명이 친구인 윤일구를 배신하는 죄를 짓게 된 것도 김인배의 거짓말이었다. 혼자서 피해자인 양 하고 있는 김인배의 모습이 과연 보기 좋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에서 모두가 보고 있는데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비서이기도 한 김경주(김연주 분)를 모욕주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영광(천정명 분)에게 시비를 걸고, 한 기업의 오너라는 사람이 그같은 행동을 보였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떻겠는가? 품위없고 경솔한 그같은 행동이 과연 서재명의 독선과 오만에 부합하는 것일까? 회사와 회사와 관련한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
설명이 부족하다. 한 마디로 디테일이 부족하다. 도식적이다. 평면적이다. 돈이 많으니 탐욕스럽고, 지위가 높으니 독선적이다. 자기보다 가난하고 지위도 낮은 사람에게 함부로 대한다. 그것은 졸부의 방식이다. 아들을 때렸다는 이유로 먼저 손부터 나가고 보는 임정옥(김선경 분) 역시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그렇게 결국 부자를 악당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부자란 이렇게 인간성이 바닥이라고.
바로 그것이 필자가 이 드라마를 그토록 불편해하는 이유일 것이다. 김영광의 당당함은 당당함이라기보다는 사실 자격지심에 불과한 것이다. 어째서 당장 먹고 살 길이 보이지 않는데도 거대상사의 입사제의를 단번에 거절하고 있었는가? 거대상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거대상사따위 필요한 돈만 벌고 그만두겠다. 하기는 윤재인(박민영 분) 덕분에 그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서재명에게 물건을 팔 마음을 먹는다. 자존심을 접고. 존엄을 포기하고.
박군자(최명길 분)의 억척스러움도 지나치게 리얼하다. 가난하지만 여유가 있다. 없이 살지만 인정이 있다. 거짓말이다. 가난하기에 악착같고, 없이 살기에 독해진다. 박군자가 윤재일을 대하는 것이나, 가게 보증금을 올려달라는데 악다구니로 대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것은 김영광의 자격지심과도 닿아 있다. 김인배가 자신의 죄의 값이라며 받아온 돈과도 관계가 있다. 가난이라는 것이 면죄부가 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한 말에 따르면,
"가난이 벼슬이라도 되느냐?"
돈과 권력은 있지만 인성은 없는 상대와 돈도 없고 권력도 없지만 그 대신 인성만은 갖춘 주인공, 그런데 그 인성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러하니 나쁜 놈이고 저러하니 주인공이다. 뻔한 구성인데 전혀 뻔하지 않다. 그것이 어떤 파격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안이하고 불친절한 설정 때문이다. 윤재인의 밝고 성실한 모습 역시 그래서 때로 답답하게만 여겨진다. 그녀는 도대체 이 드라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윤재인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성실할 필요가 있다. 하기는 서재명은 병을 앓고 있으니 언제 죽을 지 모른다. 하지만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죽음이 응징이고 징벌이라는 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스스로 굴복하여 자존심을 꺾고 모욕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서인철(박성웅 분)을 잠시 감동시켰던 것처럼 서재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서재명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연 김영광이나 윤재인이나 어떤 수단으로 서재명을 상대하고 그를 굴복시킬 것인가?
아무튼 전반적으로 품위가 없다. 멋이 없다. 악당인 서재명도, 주인공인 김영광도. 구질구질하다. 구차하다. 하는 말이며 행동이며, 그 이면에 깔린 감정의 흐름이며,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하다. 하기는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입사시험인 것이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음으로 나가는 것이 없다 보니 항상 그 자리에서 주저거리고 만다. 모든 감정을 다 발산하고서야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모양인데, 그때까지 보는 입장에서 기다리기 힘들다.
사실 매우 뻔한 드라마였다. 윤재인의 캐릭터를 보는 순간 순식간에 드라마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서재명과 서인우(이장우 분)와 김영광의 캐릭터를 보는 순간 이 드라마는 어떤 드라마이겠구나 보이는 것이 있었다. 다만 그보다 더 나쁘다. 더 지분거리고, 더 질척거리고, 더 구차하다.
자기가 속한 팀의 4번타자이고, 자기가 들어가려는 회사의 오너의 아들이다. 하기는 그래봐야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려는 한때 운전기사의 아들에 불과하다. 넘치는 감정이 지저분하게 얽히며 찌꺼기를 만든다. 그렇다고 김영광의 그러한 자존심이 멋있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무능하다. 서재명의 독선조차 자신과 타인에 대한 오기로만 보인다. 서인우는 비굴하고 윤재인은 아예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뻔하게 만들어진 꿈속에 사는데 관객의 입장에서 철저히 그들과 유리된다. 답답함을 느낀다.
지겨우려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한참 더 나쁘다. 윤재인만 모르는 출생의 비밀. 박군자마저 그것을 알아버렸다. 서인철에, 서인우에, 김경주에, 이제는 박군자까지. 그래서야 비밀이랄 것이 있는가. 비밀이 비밀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밝혀지기까지의 긴장 때문일 텐데. 원래 이렇다. 벌써 모둥게 알려지고 나면, 그조차 관객들에게 알려지고 난 뒤라면 여전히 모르고 있는 윤재인만 농락당하는 것 아닌가? 김영광은 그런 윤재인에게 동생이라 알고 있으면서도 키스하려 하고 있다.
김영광의 캐릭터가 보다 힘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서재명의 캐릭터에도 보다 입체적으로 생명이 불어넣어져야 한다. 다행히 김영광의 캐릭터는 프로야구단 축하연을 계기로 보다 명확해지려는 것이 보인다. 서재명이 중요하다. 벌써 한참을 지나왔지만. 보기가 안타깝다.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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