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로맨스코미디의 모범이라 할 것이다. 우연과 오해와 갈등, 사랑이란 우연처럼 찾아와서 어느새 필연처럼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스파이명월>이 이랬으면 어땠을까? 뜬금없겠지만 <난폭한 로맨스>를 보면서 가장 처음 받은 인상이 어쩌면 <스파이명월>이란 이 드라마를 위한 파일럿이었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너무 다른 남녀, 오히려 여자쪽이 물리력에서 더 우세하고 그래서 남자를 보호하는 위치에 서 있다. 그다지 행실이 좋지 못한 남자와 그다지 성격이 좋은 편이 못되는 여자가 만나 어쩔 수 없이 동거하며 부대끼며 서로에게 길들여져간다. 다만 <스파이명월>에서 그것을 자본주의의 총아인 인기스타 강우와 사회주의국가에서 온 명월의 체제간의 갈등으로 풀어냈다면, <난폭한 로맨스>에서는 보다 직관적이며 진지하지 않는 프로야구선수와 팬의 관계로 풀어가고 있다.
사실 이것도 판타지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자신의 팀의 승리에 목숨을 거는 광적인 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노래방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자신의 팀을 지게 만든 상대팀 선수라고 멱살을 잡고, 업어치기를 하고, 심지어 사인회를 하는데 달걀까지 던지고 있다. 경호원이라면서 달걀이 날아오는 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서 맞게 만들고 그것을 가족들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있다. 의거라 부르며 오랜만에 파티가지 벌인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래서 즐겁다. 사실 진지하려 하면 박무열(이동욱 분)은 몰라도 윤은재(이시영 분)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아무리 자기팀의 우승을 저지한 상대팀 선수라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자기팀 에이스가 퇴장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노래방에서 만나자마자 그를 메다꽂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랑스러워까지 하는가? 경호를 맡았는데 난입한 안티가 던진 달걀에 맞는 것을 오히려 방조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온당하게 보이는가? 더구나 집에 돌아와서는 박무열의 안티가 되어 악플이나 달아대고 있는 주제일 것이다. 과연 그것을 웃으며 지켜볼 수 있을까?
하지만 과장된 상황과 연출들이 그조차도 그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로 만들어 버린다. 자기가 직접 겪으면 공포다. 과연 박무열의 입장에서 악플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더구나 온갖 비난을 듣고 멱살까지 잡히고 메다꽂히기까지 했다. 심지어 사인회장에서는 달걀세례까지 당했다. 당사자로서는 공포일 테고 그것을 제켜보는 지인의 입장에서는 안쓰러운 비극일 터다. 그러면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구경꾼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과장된 상황과 연출은 그렇게 시청자를 멀리 떼어놓기 위한 장치다. 심각해지지 말라. 진지해지지 말라. 그저 보고 즐기라. 열기에 들떠 절로 흥분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보고 즐긴다. 어처구니 없는 우연한 만남과 오해랄 것도 없는 예정된 충돌, 그리고 부대낌, 윤은재와 박무열이 서로에게 보이는 악의마저 그래서 유쾌하기만 하다. 마치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에서 나오는 뿅망치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때려도 치명적이지 않다. 아무리 세게 작심하고 내려쳐도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그것이 코미디다. 때리고 맞고 자빠지고 부서져도 소리만 요란할 뿐 누구도 다치는 사람도 상처입는 사람도 없다.
그나저나 흥미롭다. 한때 프로야구 팬으로써 손동률은 아마도 선동렬 감독의 오마주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윤은재와 그녀의 가족이 응원하고 있는 블루 시걸즈의 유니폼은 삼성 라이온즈를 떠올리게 만든다. 12년만에 우승을 노리고 있다는 절박한 사연과 갈매기의 상징은 롯데 자이언츠를 연상시킨다. 그러고 보면 박무열이 속해 있는 레드 드리머즈의 유니폼은 현재 기아 타이거스, 예전 해태 타이거스다. 유니폼 바지가 검은색이었다면 딱이었을 텐데.
그러고 보면 삼성 라이온즈도 해태 타이거스에 막혀 번번이 한국시리즈 우승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했었다. 해태 타이거스의 감독이던 김응룡 감독이 오랜 숙원을 풀어주기까지 85년의 전후기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명문이라 자부하는 구단으로서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경험이 없는 굴욕의 기록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블루 시걸즈는 롯데 자이언츠의 갈매기의 이미지만을 가져다 붙인 삼성 라이온즈였을 것이다. 작가가 삼성 라이온즈의 오랜 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 해태 타이거스의 전성기에 삼성 라이온즈를 좌절시키던 기억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때는 필자 역시 해태 타이거스의 팬이었다.
아무튼 로맨틱 코미디란 바로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코미디란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무례하고 개념없다. 요란하고 산만하다. 그러나 코미디이기에 허용된다. 웃기면 된다. 재미있으면 된다. 어처구니 없고 말이 안 되도 재미마 있으면 모두 허락된다. 그리고 드라마는 충분히 재미있다. 이시영의 어색하게 과장된 연기마저 드라마에 녹아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역시 <스파이명월>이 아쉽다. 그래서 <스파이명월>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인데. 그러나 에릭 문정혁은 이동욱이 아니었다. 이동욱처럼 정면으로 한예슬과 맞부딪히지 못했다. 부서지고 깨진다. 깨지고 망가진다. 그 파편이 웃음이다. 멀쩡하게 망가지는 재주가 있다. 워낙 진지하게 망가지니 이시영의 어색함마저 그대로 부조화의 웃음으로 승화된다. 문정혁과 한예슬이 그랬어야 했다. <스파이명월>이 그랬어야 했다.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까? 냄새가 비슷하다.
재미있다. 그건 확실하다. 다만 언제까지 재미잇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껏 비일상의 놀라움으로 짜릿한 웃음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유효기간이 있다. 들떴으면 가라앉아야 한다. 웃다 보면 숨을 돌려야 할 때도 있다. 예고편은 그 시기가 의외로 빠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얼마나 차분하게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겠는가. 그 위상차에 드라마의 성패가 달려있다. 진지할 때는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코믹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코믹할 때는 확실하게 코믹하게 그러면서도 진지함과 위화감이 없어야 한다. 70분이란 긴 시간이다. 한 주에 그것도 두 회 방영이다. 그만큼 드라마는 드라마틱해야 한다. 승부가 바로 오늘이다.
기대가 크다. 이같은 뻔뻔한 드라마를 좋아한다. 유쾌하고 즐겁다. 낙천과 긍정이 있다. 아직 캐릭터의 매력은 다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웃고 재미있어하는 중이다.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합격이다.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일상의 청량제와도 같다. 즐겁다. 기분이 좋아지는 드라마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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