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왕따와 악플러 - 인터넷의 정의...

까칠부 2012. 1. 13. 17:37

예를 들어 송지선씨가 자살했을 때도 네티즌들은 말했다.

 

"우리가 무슨 죄냐? 네티즌을 악플러로 몰지 마라!"

 

최진실씨가 자살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다."

 

타블로 때는 더 뻔뻔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그랬다. 타블로도 잘못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왕따를 저지르는 아이들이 하는 말도 그것이다.

 

"그게 잘못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당한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나는 왕따의 가해자를 어떻게 하라고 감정을 배설하는 네티즌이나 왕따의 가해자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왕따를 하는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왜 그랬느냐고?

 

"재수가 없어서."

 

그 말을 요약하면 '비호감'이 된다. 네티즌이 이른바 유명인이나 혹은 일반인을 비난하며 내세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깔 만하니까. 그렇다고 그 까는 행위가 당사자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가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껌이 되라던 슈스케3에서의 이승철의 말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환호하는 이른바 네티즌들을 보면서 결국은 그런 수준이로구나.

 

싫어서 깐다. 싫어서 욕한다. 싫어서 악플을 단다. 싫어서 괴롭힌다. 사실 왕따를 하는 입장에서도 그다지 괴롭힌다는 자체에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상대를 동등한 인격으로 여기고서야 괴롭힌다는 행위도 현실감을 갖는다. 현실의 괴롭힘과 인터넷상의 괴롭힘의 차이는 사실 그다지 없다. 인터넷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요즘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는 테러 역시 현실에서의 테러와 크게 차이 없이 당사자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때로 죽는 사람도 나온다.

 

그저 싫으니까 어떻게 하라. 죽이라. 살리라. 감옥에 쳐넣으라. 엄벌에 처하라. 그런 즉물적인 감정적 반응들이 바로 그 아이들이 왕따를 저지르는 이유라는 것이다. 싫으니까. 마음에 안 드니까. 그러고 싶으니까. 그 아이들이라고 정의감이 없을까? 그러나 그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그것처럼.

 

과연 아이들을 누가 저렇게 만들었는가?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을까? 세상에 그보다 편한 논리는 없다. 그러면 태어나면서 인성검사해서 범죄자가 될 싹은 아예 감옥에서 기르도록 할까? 봐서 범죄자가 될 것 같은 아이는 유전자 레벨에서 추려내어 아예 사회와 격리시킬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연구와 보고로 밝혀지고 있는 터인데도. 사이코패스란 그런 예외로서 참 편리하게 쓰이고 있기도 하다. 아무나 사이코패스고 따라서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자기들은 아무런 책임도 걱정도 없이 말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지금 인터넷에서 날뛰는 그들 역시 보아온 어른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이다. 철학이 사라지고, 정의가 사라지고, 이성이 사라진. 무엇이 옳은가도 모른 채 감정이 정의를 대신한다. 슬픈 일이다.

 

왕따도 문제지만 아무런 고민없이 가해자만 처벌하고 끝내려는 생각없음도 문제기는 하다. 아니 오히려 거기에 더 큰 근본적 문제가 있다. 이유없는 결과는 없다. 악은 때로 슬픈 것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말하지만 스스로 악의를 가지고 왕따를 하는 경우란 그다지 없다. 악플러라 스스로 생각하고 악플을 다는 경우가 그다지 없는 것과 같다. 모두는 정의롭다. 그리고 선량하다. 항상 그게 문제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