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이런 것은 어떨까?
"한국에서는 함께 밥이나 술을 먹으면 윗사람이 돈을 낸다."
그러면 윗사람에 대한 모욕?
직장상사일수도 있다. 학교선배일수도 있다. 집안의 어른일수도 있다. 그래서 저 말이 호구취급하는 말이 되는가?
이때도 뒷말은 따라붙는다.
"안 그러면 안 좋은 소리를 듣는다."
당연히 윗사람에게 바이바이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결국은 희화화이고 과장이다. 그만큼 별로다.
어차피 매너라는 것이 그렇다. 날이 추우니 자켓을 벗어 걸쳐준다. 차가 다니는 차도쪽으로는 남자가 선다. 자리가 생기면 여자에게 먼저 양보한다. 다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며 상대를 위한다. 그것이 사람의 격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인내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가. 거기에 단지 데이트비용이며 가방들어주기 같은 것들이 더해진 것 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싫으면 선언하면 된다. 왜 그래야 하는데? 그것이 어째서 문제인가 공공연히 공론화된 적도 없다.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왔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비난의 이유로 삼는다. 그렇게 여겨져 왔기에 그리 말한 것을, 더구나 한국 남자들 매너가 좋다는 의미로 말한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아니면 아니라 말하면 그 뿐이다. 내가 아니면 아니면 그만이다. 직접 여성들에 대놓고 말하라.
하여튼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같은 이유로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 남성들 매너 좋다고 했을 때는 그리 기분좋아 하더라는 것이다. 외국인 여성이 칭찬하니 기분이 좋고 같은 한국인 여성이 말하니 손해보는 것 같고. 그러니 바이바이라 한다. 돈 안 쓰고 가방 안 들어줘서가 아니라 사람이 잘고 작아서다. 남자라도 싫겠다.
정히 아니다 싶으면 먼저 이유를 말하고 동의를 구한다.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이쪽에서 바이바이한다. 먼저 발끈할 필요 없다. 그런 것을 통념이라 부른다.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전제하는 것. 아니라 싶으면 스스로 그것을 깨면 된다. 그것을 말하는 자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저 배설의 꺼리와 상대만을 찾으려 할 뿐이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2년 전 일을 이제 와서 기사로 내놓는 언론이나, 그것 가지고 좋다고 한 소리 하는 점잖고 정의로운 대중들이나. 그렇게 한가한가? 나는 감기로 누워있기도 힘들다. 기운들도 넘친다.
별 일도 아니다. 그저 그런 것이 당연한가? 그런 일들이 온당한가? 먼저 논의를 해 본다. 그리고 다시 합의를 구한다. 카라가 그러도록 선동한 것도 아니다. 시킨 것도 아니다.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너무 기운들이 넘친다. 더 누워 있어야겠다. 죽겠다. 별 일에 다 난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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